폭력예방 한다더니 피해학생 두 번 울려
날로 증가하고 있는 학교폭력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제도가 부실 운영으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이 적지 않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피해 학생의 어떠한 말로 인하여 그렇게 화가 났는지?’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서울 강서구 A 고등학교 회의록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가해학생에게 묻는 질문이다. 문건을 넘긴 학부모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 운영 실태를 고발하고 싶다고 침착하게 말했다.
학폭위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구다.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 및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등 학교폭력 관련 분쟁을 조정한다. 교사와 경찰, 학부모 등 5인 이상 10인 이하로 구성된다. 하지만 다수 학교가 규정을 무시한 채 제각각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4년 11월 가해학생 C 군이 배식을 하고 있던 피해학생 B 군에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얼굴에 던져 눈 주위에 상처를 입히고 급식으로 나왔던 순두부를 투척했다. 고기반찬을 더 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C 군은 이전에도 B 군을 폭행한 전력이 있었으나 당시 B 군 어머니의 선처로 학폭위는 열리지 않았다.
B 군 어머니는 2차 폭행을 당한 후 117에 신고했다. 하지만 학폭위가 열리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게 B 군 어머니의 주장이다. B 군 어머니는 “1차 폭행 때도 우리 아이 외에 다른 아이를 폭행한 전력이 있어 또다시 학폭위가 열리면 대학 진학에 문제가 있을 거란 말에 선처했다”며 “하지만 2차 폭행 후 사과하러 집에 찾아 와 우리 애 누나에게까지 폭언과 협박까지 했다. 내가 바란 것은 가해학생의 전학뿐이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가해학생 편만 들며 학급 교체를 시켰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 측과 학폭위 위원 사이에 사전 접촉이 있었다. 학교와 학교전담경찰관의 관계도 의심스럽다”며 “목격자 진술서, 사건 진술서, 피해학생 진술서, 가해학생 진술서 등의 원본이 첨부가 되지 않았다. 줄여서 회의록에 첨부했는데 고의적으로 피해학생의 진술서는 다른 진술서보다 작게 첨부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피해학생 B 군은 “어른들을 못 믿겠다”며 한국을 떠났다. B 군의 부모는 지난 1월 서울시교육청에 학폭위 심의 의결 과정에 대한 종합 감사를 요청했지만 지난 2월 11일 해당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에 지난 12일 B 군의 어머니는 ‘교육감에게 바랍니다’ 등에 또 민원을 넣었고 결국 강서교육청 사안처리점검단에서 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됐다(B 군 어머니는 이와는 별개로 학교와 교육청을 상대로 한 소송도 준비 중이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정말 답답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회의 전 과정을 녹음해 녹취록까지 만들어 놓았다. 관련 법 상 민간에 공개할 순 없지만 재심, 감사 등 때마다 해당 기관에 제출했다”며 “학교는 이번 사건을 엄중하게 처리했다. 1호 서면 사과, 2호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5호 특별교육 이수 5일과 심리치료, 6호 출석정지 5일, 7호 학급 교체와 9항에 따른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10시간을 명했다.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학폭위를 둘러싼 논란으로 피해학생들은 또다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다. 피해자들은 이런 행태를 ‘학폭위 갑질’이라고 주장한다. (사)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피해자가족협의회) 이송화 대구지부장은 “학폭위 위원이 ‘피해학생이 훈육이 잘못돼서 이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며 피해 학부모를 나무란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피해자가족협의회는 언어폭력뿐만 아니라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수위도 낮게 책정한다고 주장한다. 이 지부장은 “처벌 규정으로 봤을 때 4호(사회봉사)로 나와야 하는 것도 1호(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정도로 가볍게 처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위원과 가해학생과 친분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해학생 학부모와 위원이 학폭위 관련해 서로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위원끼리 마음이 맞는 경우는 ‘가지 말자’고 담합해 학폭위 일정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맘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학교에 있다. 교사들은 학폭위에 모든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에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결국 피해학생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구조다. 학교 측이 학폭위에 관련사건 자료를 넘겨주는 시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지부장은 “학폭위 위원들이 자료를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없다. 어떤 학교는 3시간 전에 사건일지를 주고 어떤 학교는 30분 전에 주기 때문에 사건을 숙지할 시간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지부장은 “교사들이 ‘장난으로 한 거지’ ‘때린 건 아니지’라는 등의 말을 유도한다”고 교사들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학교 측이 학폭위 문제에 대해 왜 방조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지부장은 “교장과 교감은 관리감독 소홀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며 “학교 측에서 뽑으니 결국 학교 임원직을 맡고 있는 학부모들이 위원을 맡게 된다. 때문에 학폭위 위원들도 학교 측 눈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피해자가족협의회는 2009년 법을 개정할 때와 취지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피해자가족협의회 조정실 회장과 배은희 위원은 학폭위 구성원을 ‘학부모’로 구성하자고 논의했다. △학부모를 과반수 참석시킬 것 △학교끼리 학폭위를 바꿔서 열게 할 것이란 단서를 넣었다. 학교 자체적으로 실시하면 문제가 생길 것을 고려한 사항이지만 학교끼리 바꿔 소집하자는 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 회장은 “역할만 잘했다면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제도에 대한 교육의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학폭위 연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아 처벌 조항도 모르고 우왕좌왕한다는 것. 이 지부장은 “학폭위에 필요한 실질적인 교육보단 ‘시간 때우기식’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신입 위원 한 명만 대표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특별시교육청 관계자는 “연수 교육 참석률은 매우 높다”며 “현재 학폭위 연수 교육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2회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족협의회 조 회장은 학교전담경찰관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들은 범죄자를 잡다보니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학교’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범죄자처럼 학생들을 다룬다. 비행 청소년을 다루던 경찰들은 피해 아이들의 입장이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어떤 경찰은 피해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진 않은지 의심하며 피해 사실에 대해 원인 제공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 아이는 ‘덩치도 큰데 왜 작은애한테 돈을 빼앗기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피해 아이들은 경찰들을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피해학생들은 유순하고 심성이 약한 성향을 갖고 있기에 피해자 부모들이 볼 때도 속이 상할 때가 많다”며 “학폭위 위원들은 피해자들에게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공적인 역할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회장은 “현재 정책을 해외 사례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문화와 가정환경을 고려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피해자 부모들에게서 대책을 찾는 것이 제일 좋다. 그들은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현재 가장 위험한 부분은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안전망을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현재 법안은 내용만 있을 뿐 속 알맹이가 없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피해학생 쉼터 ‘해맑음센터’ 아시나요 숙식하며 심리치료·학업보충까지 학폭위 조치에 대해 이의가 있을 경우 재심, 재심 결정에 이의가 있을 경우 행정심판까지 가게 된다. 그동안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은 한 공간에서 함께 있어야 한다는 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그 기간이 길게는 몇 개월이다. 결국 피해학생은 가해학생을 피하기 위해 등교를 거부하게 된다. 2013년 개관한 해맑음센터는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이 머물며 심리치료는 물론 기초 교과 학습까지 할 수 있는 쉼터다. 해맑음센터는 2013년 7월에 개관한 학교 폭력 피해 학생 및 학부모를 위한 전국 단위의 기숙형 위탁 교육 기관이다. 교육부에서 지원하고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운영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엔 해맑음센터를 제외한 31개의 학교폭력 피해자 전담 기구가 있다. 하지만 기숙을 할 수 있는 곳은 해맑음센터가 유일하다. 3개월 정도 교육을 하며 기숙할 수 있는 ‘위스쿨’이란 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차 부장은 “그곳은 피해 학생은 물론 가해학생, 부적응 학생까지 함께 있기 때문에 피해 학생들의 적응이 무척이나 어렵다”며 “피해 학생들은 거기서도 못 견디고 나온다”고 설명했다. 부적응 학생이란 비행 청소년이나 입시 등 스트레스를 받는 등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을 일컫는다. 해맑음센터 교육 프로그램은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기초교과, 예술치유 프로그램, 전문교육 프로그램, 체험활동 프로그램, 심리상담 프로그램 등이다. 기초교과는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으로 일주일에 2시간씩 공식적으로 편성해뒀다. 학업보단 심리적 안정을 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해맑음센터를 거쳐 간 학생들은 2013년도에 167명, 2014년도엔 209명, 2015년엔 199명이다. 80% 이상 학생이 수료를 한다. 차 부장은 “복교한 학생 대부분은 학교에 잘 적응한다”며 “한 학생은 고등학교 때 왔다 복교 후 현재는 대학을 사회복지과로 진학했다. 대전에 있는 대학에 진학 후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 부장은 “전국에 있는 피해자 전담기구를 20여 군데 가봤다. 그 가운데 2013년과 2014년엔 예산을 줬다가 2015년엔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한 곳이나 예산을 보류한 곳도 있었다. 예산이 없으니 실제론 운영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경상북도는 2014년 4명의 상담사로 이뤄진 전담 기구가 경북 전 지역을 케어하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2015년부턴 예산이 줄어 1명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맑음센터는 피해 학생만 오롯이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입소 절차도 까다롭고 입소 후에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가해 학생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실제 가해 학생을 골라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청소년이기 때문에 기 싸움 같은 잡음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친구들에게 상처 받은 기억들이 있기 때문에 ‘마지노선’은 지켜준다. 서로 공감을 많이 해주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피해학생의 원적교와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에 “학생 수 대비 교사들이 많다. 또한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바로 자치회의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 많은 것이 가장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