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미팅을 했다. 미팅은 처음이라 은근히 긴장이 됐던 걸로 기억난다. 그런데 너무 긴장을 해서일까. 약속 시간에 30분이나 지각하고 말았다. 황당했던 건 상대‘녀’가 나보다 1시간 30분을 더 늦게 나왔다는 사실! 씩씩거리며 이유를 묻자 ‘차가 막혀서’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집이랑 같은 동네였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거기서 뛰어도 왕복으로 두 번은 왔다갔겠네요.”
그게 인연이었나보다. 그 후론 두세 번을 더 만났다. 친해질 만할 때 그 여자는 대학에 들어가고 난 2군에서 ‘뺑뺑이’를 돌았다. 힘든 나날들의 연속이었지만 그녀가 있기에 참을 수 있었다. 6개월 만에 연락을 했고 기분 좋은 데이트를 기대하며 약속 장소에 나갔다.
대학생 티가 물씬한 경쾌한 옷차림으로 내 앞에 나타난 그녀에게 다시 만나자고 했더니 자기를 만난 뒤 야구를 못하는 것 같아 안 만난다는 엄청난 대답을 토해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존심이 사정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 반박도 못한 채 고이 그녀를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차인 것이었다. 이별을 하면 유행가 가사가 모두 자기를 빗댄 것처럼 들린다 하더라. 절감했다. 내가 딱 그 꼴이었다.
그후론 이를 악물고 운동에만 집중했다. ‘가시나’에게 휩쓸리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을 하면서. 5년 전, 내 나이 열아홉 살 때의 얘기다.
[영]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