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수 감독(왼쪽)과 고정운 코치. 감독의 진퇴 여부에 코치 운명이 좌우되는 현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높다. | ||
프로축구감독은 계약기간이 끝나거나 성적이 부진할 경우 중간에 경질된다. 이장수 전남 감독처럼 애매한 사유로 옷을 벗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상당히 예외적이다. 하지만 팬들과 언론의 관심이 감독의 거취에 집중되는 사이 남모르게 아픔을 삭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감독과 함께 운명이 결정나는 코치들이다. 감독은 새로 부임할 때 코칭스태프를 새롭게 구성한다. 그러니 감독의 운명은 바로 코치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올 시즌 K-리그는 어느 때보다 감독들의 사퇴가 줄을 잇고 있다. 차경복 성남 감독, 조광래 서울 감독, 이장수 전남 감독, 최순호 포항 감독 등이 여러 이유로 야인으로 물러섰다. 이럴 경우 바로 밑의 수석코치가 감독직을 승계할 수 있지만 이는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된다.
성남 차경복 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쌓은 김학범 코치는 감독직을 승계했지만 다른 팀 코치들의 사정은 여의치 않다. 일단 감독이 야인으로 돌아가면 이들도 하루아침에 백수로 전락하기 때문.
이장수 전남 감독도 “내가 잘리는 것은 괜찮지만 나를 믿고 전남에 온 코치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인간적인 아쉬움을 표했다. 3년 계약을 했는데 1년 만에 현장을 떠나게 만든 데 대한 괴로움을 빗댄 내용이다. 실제로 이 감독의 부탁으로 선문대 감독을 그만두고 전남으로 자리를 옮긴 고정운 코치는 허정무 감독이 데리고 온 코치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떠날 수밖에 없게 됐다.
코치들의 연봉은 보통 1억원 내외다. 적게는 8천만원에서 1억2천만원 선이다. 일반인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인 고액 연봉자들이지만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많은 금액이 아니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한 구단의 A코치는 “사실 프로 구단에서 모든 고생을 감수하고라도 코치로 생활하는 이유는 나도 감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코치는 “하지만 고생은 죽도록 해도 낙하산 인사로 감독이 결정되면 힘이 빠진다”며 코치의 애환을 털어놨다. 일단 감독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니면 코치직을 수행하기 힘들다는 것.
현재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쉬고 있는 전직 코치 B씨는 “현장을 떠나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많다. 감독으로 갈 만한 사람의 대소사에는 모두 참석하고 계속 인간관계를 맺어 두는 게 중요하다”며 감독과 코치의 관계를 ‘작은 정치판’으로 빗댔다. 학연이나 지연으로 엮이지 않을 경우는 얼굴을 자주 보이고 신뢰관계를 쌓는 것밖에 더 있냐는 설명이다.
프로 감독을 역임한 C감독은 “대단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면 지도자 수업을 받거나 외국 코칭스쿨을 수료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인간관계도 무난하고 지속적으로 맺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감독과 코치가 말이 잘 통해야 좋은 성적을 내는 것 아니냐”며 인간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풍토를 지지했다. 하지만 이에 속하지 못하는 코치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한 대학 감독은 “프로감독 자리는 축구 지도자라고 한다면 누구나 꿈꾸는 직업이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나눠먹기식으로 코치들을 배정한다면 우리에게는 기회가 없다”고 항변했다. 감독이 될 만한 인사들과 어떻게라도 줄을 대려고 하지만 벌써 여러 명이 코치후보로 거론되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 실력보다는 얼굴로 코치들이 결정나는 경향이 짙다는 분석이다.
축구 전문가들은 “팀워크도 중요하지만 한국적인 인맥중시주의가 감독과 코치들의 운명을 한꺼번에 묶어내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감독이 코치를 일방적으로 선임하는 현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감독이 바뀐다고 해서 코치들을 전면 교체하는 것보다는 구단과 상의를 거쳐 필요한 인원만 보충하는 선이 합리적이라는 것.
최근 믿었던 감독이 갑작기 팀을 떠나면서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된 D코치는 “선수들을 잘 알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하면 구단으로서도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솔직히 코치를 물러나는 것보다 감독에 대한 꿈을 몇 년 뒤로 미뤄야한다는 것이 더 가슴 아프다”고 털어놨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