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밀리면 끝장…김무성도 전면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간에 공천룰을 두고 설전이 이어졌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 대표(왼쪽)와 이 위원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점입가경’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새누리당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이 공천룰을 두고 폭발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간의 설전이 그치질 않는다. 오히려 수위가 높아져만 간다. 여러 막말이 오갔지만 앞의 발언들은 한 지붕 두 가족이 얼마나 심각한 내홍에 휩싸였는지 보여준다.
정치권을 떠도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김 대표는 친박계가 이 위원장을 밀 때 이번 사태를 예견했다고 한다. 꼬장꼬장한 이 위원장의 성격을 잘 아는데다 추구하는 정치 스타일이 너무도 달라 사사건건 대립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는 얘기다.
친박계 사정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이 위원장은 정책적 정치를, 김 대표는 정무적 정치를 추구한다. 이 위원장은 정책 능력이 떨어지는 국회의원을 거의 경멸 수준으로 혐오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그에게 칼을 줄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뻔했다. 그래서 김 대표가 이 위원장 카드를 받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그런 이야기’는 김 대표가 이 위원장 카드를 친박계가 내밀었을 때 공천관리위원 인선의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던 것을 말한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외부 공천관리위원도 김 대표 뜻대로 인선되지 않으면서 저렇게 계속 코너에 몰리고 있다”며 “외부 위원 중 상당수가 친박과 가깝다.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적극 도와준 분도 계시다”고 귀띔했다.
현재 새누리당 공관위원회는 모두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당내 인사 5명, 외부 인사 6명이다. 황진하 사무총장이 부위원장이고 홍문표 제1사무부총장과 박종희 2부총장, 김회선 당 클린공천지원단장이 당내에서, 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이욱한 숙명여대 법과대학 교수, 김순희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 상임대표, 김용하 순천향대학교 금융보험학과 교수, 최공재 차세대문화인연대 대표,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이 외부 인사로 선임됐다.
이 위원장은 최근 모든 개별 인터뷰를 거부하고 공관위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기자들과의 오찬 약속도 대부분 미뤘다고 한다. 대신 공관위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피력한다.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치권을 떠나려던 그가 이렇게까지 20대 총선 공천에 올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공천관리위 구성이 친박계에 유리한 쪽으로 짜여 힘을 얻은 이 위원장이지만 최근 행보는 굉장히 자극적이고 적극적이다. 최근 기자들과 앞에서 한 발언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그리고 제발 좀 당대표는 경선에 관여하지 말라고 좀 하세요. 쓸데없이 딴 데 걱정하고 있어. 또 내가 마지막에 한 이야기를 (언론이) 타이틀로 뽑을라. 흐흐흐.”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이 위원장이 이렇게 강공으로 갈 수 있는 것은 결국 청와대와의 교감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해석한다. 이 위원장이 차기 국무총리나 경제부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는 세간의 평가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BH(청와대)와 교감이 있을 것이란 해석은 최근 친박계 행보에서도 잘 읽을 수 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김태흠, 이장우, 윤상현, 김재원 의원 등 돌격대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맹폭했는데 최근 친박 의원들 중에 그런 분들이 안 계시다”면서 “이 위원장을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한 것이다. 이 위원장을 수렴청정하는 컨트롤타워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친박계는 지금 이 위원장의 싸움을 지켜보며 거들고 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당 공식 회의석상에서 김 대표가 이 위원장을 겨누자 “공관위가 출범했으면 독자적이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당헌·당규의 정신”이라며 이 위원장의 손을 들었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윤상현 의원은 친한 기자들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선수는 룰을 따라 페어플레이를 하고 승리를 위해 뛰면 된다. 공관위가 정한 경선 방법에 대해 후보자가 일일이 가정을 달아 평하는 것은 적절한 모습이 아니다.”
김 대표도 후보자 중 하나라고 못 박으며 이 위원장을 거든 셈이다. 친박계 쪽 공기는 흡족한 눈치다. 결국 친박계는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공천룰이 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위원장이 밝힌 전국 광역시도별로 1~3곳 우선추천이나 단수추천을 시행할 경우 최대 ‘16×3+1(세종)’까지 돼 49곳을 사실상 ‘전략공천’할 수 있다. 현역 중 친박계가 60여 명 안팎으로 알려졌고, 비례대표에서 비박과 친박이 몫을 나눌 경우엔 친박계가 모두 살아 돌아온다는 가정 하에 사실상 100석 이상을 친박계가 장악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런 기류를 감지한 김 대표는 “선거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수용이 안 된다. 이를 시정하든지 공천관리위원회를 해체하든지 해라”고 격노했다. “용납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김 대표의 작심발언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간 김 대표가 보인 ‘후퇴 행보’를 잘 알고 있기에 양치기 소년 수준의 발언으로 읽고 있다.
‘전략공천 불가’의 배수진을 친 김 대표지만 ‘상하이 개헌 발언’ ‘박세일 여의도연구원장 인선’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철회’ 등 주요 국면에서 언행 불일치를 보였던 김 대표였다는 지적이다. 결국엔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위시한 친박계의 손을 들어줄 것이란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최근 행보를 두고 비박계도 뭉치고 있다. 우선 전략공천과 관련한 부분에서 공관위원들이 “합의사항이 아니다”라고 발끈하고 나섰다. 일부 위원들은 이 위원장이 말한 저성과자, 비인기자 등 물갈이 대상의 전형이 이 위원장 아니냐는 이야기도 내놓고 있다. 대구 수성구갑에서 5선 장담이 어려우니 불출마 선언을 했고, 대타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내세운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 전 지사 지지율이 좀처럼 오를 줄 몰라 그 책임도 이 위원장이 져야할 것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김 대표를 중심으로 뭉치는 비박계, 이 위원장을 밀고 있는 친박계의 공천룰 전쟁. 표를 든 유권자가 어떻게 바라보고 심판할지 지켜볼 일이다. 돌고 돌아 결국 ‘구태 공천’이라면 야권이 아무리 분열해도 새누리당에 유리하게만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