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보단일화 뒤처리
올 한해 동안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의 흐름을 먼저 살펴보자. 대선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선 민심은 대략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적극 지지 35% ▲부동층 15% ▲반 이회창 후보 지지 성향 50%(권영길 후보 지지표 등 포함)로 나타났다.
이같은 흐름은 1년 내내 유지됐다. 다만 가장 크게 요동을 쳤던 것은 반창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이었다. 4월 ‘노풍’이 최고점에 달했을 때에는 50% 반창 성향 유권자들이 거의 대부분 노무현 후보에게 지지를 보냈고, 8월 ‘정풍’이 불 때에는 정몽준 30%, 노무현 20%로 나뉘었다.
▲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일 이튿날인 지난 20일 당 관계자들과 함께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여기에 ‘단풍’ 시너지 효과로 반창 지지층이 크게 움직여 12%의 유권자가 노무현 후보지지 성향을 보였다. 11월27일 후보 등록 직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46%, 이회창 39%, 부동층 15%(권영길 후보 지지 포함)의 분포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노무현 후보는 자신의 견고한 지지층 23%에 정몽준 후보 지지층 11%, 단일화 시너지 효과로 12% 지지층이 모여 46% 지지율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대선 결과 노무현 48.9%, 이회창 46.6%를 기록한 것은 투표율이 70.8%였음을 감안해 볼 때,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부동층 응답자가 대부분 기권했다는 전제 하에 46%의 노무현 후보 지지층 가운데 약 40%가 투표에 참여했고, 39%의 이회창 후보 지지층은 거의 대부분 투표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즉, 투표 전날 정몽준 대표의 몽니는 전체 유권자 대비 약 6%가 기권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분석에 근거할 때, 노무현 당선자는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에 대한 처리 문제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 비토그룹 완화
앞서 살펴본 바대로 노무현 당선자에게는 적어도 전체유권자 가운데 39%(대선득표율 기준 46.6%)의 단단한 비토그룹이 존재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한표’를 행사한 유권자들도 노무현 당선자가 함께 끌어안고 가야할 ‘국민’에 엄연히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노무현 당선자는 이들 비토그룹을 유인할 만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자칫 김대중 정권에서와 같이 인사정책에서 특정지역 소외의 목소리가 나오거나, 친인척과 측근들 사이에 부정부패 문제가 터져나오게 되면 이들 ‘비토그룹’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당•대권 분리의 딜레마
노무현 당선자는 민주당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됐다. 민주당 국민경선 실시의 전제는 ‘당권과 대권을 분리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노무현 당선자는 사실상 반쪽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노 당선자가 당선 이후 기자회견에서 ‘인위적 정계개편’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한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 민주당 당헌•당규상 노무현 당선자에게는 ‘대통령 당선’ 이후 실질적으로 민주당을 좌우할 권한이 많지 않다. 한화갑 대표가 버티고 있고, 당내 주류세력이 여전히 건재해 있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는 후보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의원들을 대신해 지구당 선대위원장을 자신의 측근 인사들로 배치했다. 그러나 그들의 권한은 12월19일 대통령 선거로 종료됐다. 대선을 위한 선대위 체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향후 조직강화특위 등을 통해 지구당위원장에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지구당 조직책으로 선임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노 당선자는 취임 이후 2004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화갑 대표와 불가피한 한판 승부를 남겨둔 셈이다.
■ 인사문제
향후 노무현 정권의 성패를 좌우할 가장 큰 국내문제로는 역시 ‘인사문제’를 들 수 있다.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후보’였던 노무현 당선자가 선보일 인사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 대북, 대미관계
‘사진 찍으러 가지 않겠다’던 미국을 노무현 당선자는 취임 직후 방문할 예정이다. 북한 핵문제 등 해결해야 할 남북관계가 산적해 있고, 특히 북미관계를 원활히 조율해야 할 책무가 노무현 당선자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노사분쟁 조정 전문가’로서 노무현 당선자의 능력은 몇가지 사례를 통해 검증됐지만, 국제관계를 조율하는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특히,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노무현 당선자가 국민들 사이에 ‘들불 번지듯 확산되고 있는 SOFA 개정의 요구’를 어떻게 처리해내느냐는 노무현 정권 5년을 좌우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대선 과정에 유권자들이 보여준 뜨거운 노무현 지지 열기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 부정부패 청산
정권초기 잘 나가던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전환점은 대부분 친인척과 측근들의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져 나오면서부터였다. 노무현 당선자는 후보 시절 유세에서 ‘국민들이 모아준 희망돼지로 선거를 치러, 빚진 사람이 국민밖에 없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해왔다.
실제 정치권의 부패에 진절머리가 난 상당수 국민들은 한푼두푼 ‘희망돼지’에 정성을 모아 노무현 후보에적잖은 도움을 줬다. 향후 5년 동안 국민들은 노무현 당선자와 그 친인척, 측근 인사들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특히 ‘부정부패’ 스캔들에 대한 감시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강화될 것이다.
■ 기타
대선기간 동안 핫이슈로는 ‘행정수도 이전’을 꼽을 수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집요한 공격에 맞섰던 노무현 당선자가 집권 이후 얼마나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고 자신의 공약을 실천해내느냐도 노무현 당선자가 넘어야할 고개다. 특히 서민경제에 대한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 이행 여부는 2004년 총선 결과를 가늠할 지렛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