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놓친 두 사냥꾼 몸값 높아진 토끼 사냥에 몸 달았다
지난 12일 KB금융은 자율공시를 통해 “현대증권 실사 참여를 위한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한국금융 역시 “현대증권 매각절차 참여를 위한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공교롭
현대증권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인수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어 현대증권을 노리는 KB금융과 한국금융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키움증권을 비롯해 일부 사모펀드, 중국계 금융회사 등도 현대증권 인수 후보군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KB금융과 한국금융의 맞대결로 압축되고 있는 분위기다. 두 곳 모두 현대증권을 인수해야 할 이유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KB금융은 오래전부터 비은행 부문 경쟁력 강화를 외쳐왔다. KB는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지만 전체 순익에서 국민은행 비중이 70%가 넘어 신한금융지주 등 경쟁사들에 비해 불안정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 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KB금융은 그동안 증권사 인수를 추진해왔다. 그럼에도 2014년 우리투자증권, 지난해 대우증권 등 대형 증권사 인수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연이은 두 번의 실패로 KB금융은 자산규모 국내 1위 금융지주사로서 체면이 완전히 구겨졌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윤종규 회장을 비롯한 KB금융 경영진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하기도 했다. 올해 현대증권 인수마저 실패한다면 KB금융은 ‘비은행 부문 강화’가 멀어지면서 자존심이 상할 뿐만 아니라 내부 균열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KB금융 관계자는 “현재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상태라는 것만 확실하다”며 “자세한 사항은 실사를 거친 후에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금융도 현대증권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카카오와 손을 잡고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에 성공한 한국금융은 김남구 부회장이 목표로 제시한 2020년까지 ROE(자기자본이익률) 20%, 시가총액 20조 원 달성, 즉 ‘비전 2020’에 접근하기 위해서라도 현대증권 인수가 절실하다. 지난해 심혈을 기울였던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탓에 현대증권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금융은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한국금융 관계자는 “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실사를 거친 후 참여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과 달리 한국금융은 오너가 있기 때문에 결국 오너 결정에 달렸다”며 “김남구 부회장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 외에도 키움증권과 중국 자본, 사모펀드들이 현대증권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증권의 몸값이 오르고 있다. 시장에서는 현대증권의 매각가를 6000억 원 수준으로 보고 있지만 현대그룹은 내심 1조 원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바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김남구 한국금융 부회장
또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의 100% 자회사인 현대자산운용과 현대저축은행을 함께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증권을 인수한다면 단박에 미래에셋-대우증권에 버금가는 대형 증권사로 올라설 수 있는 데다 증권·자산운용·저축은행을 한꺼번에 갖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지난 2년간 현대증권뿐 아니라 자회사들의 실적도 좋았다”며 “현대증권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증권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인수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어 현대증권을 노리는 KB금융과 한국금융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KB금융과 한국금융은 “실사를 거쳐 적정가를 산출해낼 것”이라고 말하지만 지금 상황대로라면 본입찰 때 현대증권의 몸 값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매각 절차를 밟을 당시 KB금융과 한국금융은 물론 다른 금융지주사와 증권사들로부터 외면당했던 현대증권이 아니다. KB금융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대우증권 인수에 신경 쓸 때였고 현대그룹의 현대증권에 대한 진성 매각 의지도 미심쩍었다”며 지난해 현대증권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현대증권 인수가 필요한 김남구 한국금융 부회장 역시 시간이 갈수록 현대증권 몸값이 얼마나 높아질지 초조해할 듯하다.
현대증권 매각은 이달 말까지 인수의향서를 마감하고 실사를 거쳐 3월 중순 본입찰을 실시해 4월께 마무리될 예정이다. 2조 4000억 원에 달하는 공룡, 대우증권을 놓친 KB금융과 한국금융이 몸값이 대우증권의 3분의 1 수준인 현대증권 쟁탈전에서 자존심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현대증권 팔아 현대상선 살릴 수 있나 희망가에 매각해도 발등의 불만 끄는 수준 현대상선 부산신항터미널. 그러나 시장과 금융권에서는 이제 와서 현대증권 매각이 성공하더라도 현대상선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상선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증권 매각이 성사되더라도) 급한 불은 잠깐 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현대상선의 부채 규모는 약 7조 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대증권이 현대그룹의 바람대로 1조 원에 매각되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현대증권이 매각 절차에 들어갔을 때와 상황이 다르다”며 “현대상선은 현재 회사채 상환이 가능한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현대그룹 역시 현대증권 매각만으로 현대상선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현대상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그룹 차원의 유동성 확보 방안 중 하나이며 현대상선 재무구조 개선에 보탬이 되는 작업으로서 ‘진정성’과 ‘의지’를 보여주는 한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용선과 운임 문제, 회사채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채권단과 협의하기 위해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임] |
현대증권 매각 걸림돌 현대엘리베이터 우선매수권 ‘변수’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청구권이다. 지난해 말 현대상선은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14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현대증권 지분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제기됐던 이른바 ‘파킹딜’ 의혹과 더불어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경영권을 끝내 놓지 않으려는 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만약 현대증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 후 현대엘리베이터가 이 권리를 행사한다면 매각은 사실상 무산된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곳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는 셈이다. 현대증권 인수를 노리는 업체들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청구권을 먼저 해결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KB금융 관계자는 “분명 입찰자에게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며 “현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금융 관계자는 “아직 불만 제기나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우선매수청구권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증권 매각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매각 주체인 현대그룹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우선매수청구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한다고 명시하는 것은 배임이 된다”며 “우선매수청구권은 현대상선 주주들을 보호하고 현대증권 저가 매각을 방지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인수 후보자들이 우선매수청구권을 지적하는 것은 현대증권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한 ‘작업’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재계와 금융권에서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청구권이 현대증권 매각에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현실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자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만약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현대상선을 살리겠다는 진정성이 훼손되는 데다 금융권에서 현대그룹에 등을 돌릴 것이 빤하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꼼수를 부린다면 시장과 은행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우선매수청구권 행사는 곧 현대그룹이 쓰러지는 길”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증권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대주주 적격성 승인을 내주지 않겠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터무니없이 저가에 인수하려 한다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도 “그러나 현대그룹의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말했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