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FA 행보 서장훈에 물어봐?
▲ 김승현 | ||
아니다. 이들의 끊을 수 없는 우정도 당해내지 못할 ‘못 말리는 단짝’이 있다. 첫째, 이들은 ‘고향도 달라, 학교도 달라’다. 둘째, 나이도 네 살 차이나 난다. 셋째, 현재 뛰고 있는 팀도 다르다. 넷째, 체격도 천지 차이다.
좀 더 구체적인 힌트를 보자. 다섯째, 이들의 포지션은 각각 센터와 포인트가드다. 한 명은 국내 선수 중 거의 제일 큰 선수(207㎝)고 한 명은 거의 제일 작다(178㎝). 여섯째, 생김새는 한 명은 ‘우락부락’, 한 명은 ‘뺀질뺀질’이다.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다. 범위가 좁혀지면서 감이 좀 올 것이다. 이제 결정적인 힌트를 들어보자. 일곱째, 이들은 그야말로 한국농구의 ‘톱클래스’다.
그렇다. 이 둘은 국내 최고 센터인 서장훈(31·서울삼성)과 국내 최고의 포인트가드 김승현(27·대구오리온스)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무지 어울리는 구석이 없는 이들은, 그러나 현 농구판에서 ‘죽고 못 사는’ 단짝이다.
악연으로 시작된 연인
하지만 3년 전만 해도 그들의 관계는 상당히 까칠(?)했다. 2002년은 김승현에게는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해. 동국대를 나와 1라운드 3순위로 대구 동양(현 오리온스)에 지명된 김승현은 2001∼2002시즌 정규리그 신인왕과 MVP를 휩쓸며 일약 ‘김승현 신드롬’을 일으킨다. 같은 편도 속이는 페이크에 그림 같은 노룩패스, 아담한 몸매와 깔끔한 외모까지 겸비한 김승현은 프로농구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을 제치고 팀의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통합우승을 이끈다. 당시 챔피언결정전 상대가 서장훈이 이끌었던 서울 SK. 신인왕은 그렇다 치고 정규리그 MVP까지 빼앗겨 내심 불만이 쌓여있던 서장훈은 챔피언결정전조차 김승현의 동양에게 3승4패로 우승컵을 넘겨주고 만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2002 부산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에서 김승현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서장훈은 김승현에 대해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는 놈”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장훈으로서는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나 ‘국보급 센터’의 아성을 위협하는 178㎝짜리 신인 선수가 맘에 들 리 없었던 것이다.
연예인 친구들과 한자리
둘의 인연이 시작된 건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난 후 서울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서장훈이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인기그룹 NRG의 이성진을 만나기 위해 나가보니 그 자리에 김승현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탐탁지 않았지만 술잔이 한두 잔 오가면서 허심탄회한 ‘남자들의’ 대화가 시작됐다. 일단 말문이 트이고 나니 두 사람은 생각이 너무도 잘 통했다. 뿐만 아니라 농구판의 ‘연예계 마당발’로 소문난 두 사람은 평소 어울리는 자리나 친한 사람들도 공통점이 있어 자연스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 서장훈 | ||
이후 서장훈과 김승현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시즌 중에도 거의 매일 전화통화를 주고받는 이른바 ‘단짝’이 됐다. 이전까지 서장훈의 ‘짝꿍’은 전주 KCC의 이상민. 같은 동네(경기도 수지)에서 둘도 없는 형 동생으로 지내던 둘은 이상민이 골프에 심취하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됐다. 골프를 치지 않는 서장훈은 김승현과 어울리게 됐고, 강남의 제일 ‘잘나간다는’ 나이트클럽의 주요 고객(?)이 된다.
시즌 중에는 거의 만날 기회가 없는 서장훈과 김승현은 올스타전이 있는 날마다 이성진 신지 등 친한 연예인들과 어울려 뒤풀이를 하면서 회포를 푼다고 한다. 이번 시즌 올스타전이 열린 지난 2월1일에는 두 사람이 아예 김승현의 차를 함께 타고 잠실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서장훈의 아버지 서기춘씨(57)는 말한다. “(서)장훈이 놈 외박한 날은 무조건 (김)승현이랑 있었다고 보면 돼요.”
''환상의 콤비'' 볼 수 있을까
이쯤 되면 “둘이 그렇게 친해?”라며 짐짓 놀랄 만도 하겠다. 눈치가 빠른 농구팬이라면 벌써 프로농구계 전체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오는 2006년 김승현의 FA계약과 관련해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오리온스 소속의 김승현은 다음 시즌인 05∼06 시즌만 마치면 FA 자격을 얻게 된다. 벌써부터 모든 팀들이 김승현의 마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있는 가운데, 김승현의 선택은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시스트로 ‘먹고 사는’ 김승현과 최고의 득점원 서장훈이 한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 모습은 말 그대로 ‘그림이 그려진다’. 기술적인 면을 차치하고라도 친형처럼 믿고 따르는 서장훈이 있는 팀이라면 김승현에게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서장훈이 몸담고 있는 팀은 우승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선수를 긁어모으는 ‘일류지향’의 삼성이다.
서장훈의 입장에서도 김승현의 영입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지금의 파트너인 주희정과의 호흡 역시 훌륭하다. 하지만 삼성과 2년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서장훈으로서는 국내 최고의 포인트가드 김승현과 한 유니폼을 입는다면 선수생활 말년을 더없이 편하게 보낼 수 있다. 서장훈은 지인에게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김)승현이가 오면 찔러주는 패스 쏙쏙 받아먹으면서 우승 한번 하고 은퇴할 텐데”라고 말이다.
다른 팀들 관계자들의 표정이 잔뜩 어두워졌을지 모르겠다(기사가 나간 다음날 또 어떤 항의 전화를 받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충분한 얘기다. 기자로서, 아니 한 사람의 농구팬으로서 두 선수의 콤비플레이를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허재원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