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인사 17인 이용만 당했나
▲ 한독산학협동단지와 독일대학컨소시엄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독연구단지 공사가 DMC 단지 내에서 진행중이다. 오른쪽은 한독 측이 2000년 11월에 작성한 ‘설립자문위원 명단’ 사본.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최재성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11일 독점적으로 사업계약을 체결한 한독과 서울시 간의 검은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열린우리당은 13일 논평을 통해 △해당 부지가 학교용지에서 상업용지로 뒤바뀐 특혜의혹 △무자격 업체에 특혜를 제공한 의혹 △다섯 차례의 계약기한 연장 특혜 의혹 △한독과 연대 계약을 맺고 있는 KDU(독일대학컨소시움)의 실체와 관련된 의혹 △불법분양과 수천억 원의 부당이득 의혹 등 다섯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한독산학협동단지는 사업자 자격과 관련해 하자가 없다”고 반박하면서 특히 “필지별 유치시설, 지정용도 비율 등을 정한 토지이용계획과 사업자 선정은 모두 전임 시장 재임기인 2002년 6월 말 이전에 결정됐다”고 강조했다. 또 부지를 헐값에 공급해 시세 차익을 남기도록 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당시 시세대로 공급한 것으로 특혜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열린우리당이 5대 특혜분양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조사단을 발족하자 서울시는 최 의원과 정치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한 이규의 부대변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정면 대응에 나선 상태다.
이처럼 한독 특혜 분양 논란이 법정공방전으로 비화되면서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의 치열한 정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이 최근 단독 입수한 한독 측 문건의 ‘설립자문위원 명단’에 유력 정치인과 재계, 학계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돼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 11월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은 A4용지 5매 분량으로 한독의 설립 주체, 목적, 주요 사업, 설립위원회, 독일 컨소시엄, 한독연구단지(KGIT) 사업비 및 출자자 구성 현황 등이 적시돼 있다.
▲ 한독 측이 DMC 단지 내에 조성하고 있는 교육연구시설(C4)과 첨단업무시설(E1-1, 2) 공사현장. | ||
또 당시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었던 손병두 서강대 총장과 황우석 당시 서울대 교수도 위원 명단에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한독 측은 특혜 의혹이 수면 위로 부상하기 전인 지난 3월 31일 기자의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이들 인사들이 설립자문위원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2002년 토지 공급을 위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정동영, 한화갑, 김문수 등 정치인이 설립자문위원으로 포함되었던 것은 사실이며 이때의 설립자문위원은 사석에서 KGIT 프로젝트에 구두로 동의 여부를 묻고 당시 대표였던 한상엽 씨에 의해 기재되었으나 향후 설립자문 위촉서 작성 과정에서 정동영 씨는 제외됐고 한화갑·김문수 의원만 설립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것”이라고 한독 측은 답변했다.
황우석 교수의 참여 사실을 묻는 질문에는 “황우석 교수 역시 사석에서 동의한 수준으로 2002년 사업계획서에 설립위원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다시 제출한 사업계획서의 위촉서 작성에는 참여치 않아 현재는 제외된 상태”라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한독 측이 정식 위촉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계 유력인사들로 서둘러 설립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사업계획서에 적시한 까닭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인사들의 영향력이나 이름값을 빌어 사업에 활용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싹트고 있는 것.
그러나 서성만 서울시 DMC 담당관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와 관련해 “2002년 한독 측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이들 유력인사들이 명시된 자문위원 명단이 포함돼 있던 건 사실”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자문위원 명단과 심사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서 담당관은 “열린우리당의 특혜의혹 제기는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며 “한독연구단지 조성사업은 정당한 외국기업 유치 계획과 맞물려 적법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왼쪽부터)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한화갑 민주당 대표,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 | ||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측은 “정 의장에게 확인한 결과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일축했다”며 “서울시 측에도 명단확인을 요청했지만 알 수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확정된 김문수 의원 측은 “당시 서강대에서 강의를 한 것을 인연으로 윤여덕 교수(한독 대표이사)를 알게 됐고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독일의 우수한 기술력과 외자를 유치하는 사업이라는 말을 듣고 순수한 마음으로 허락했다”며 “문제가 될 것 같았으면 벌써 철회했을 것이고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것에 대해 한점 부끄럼이나 의혹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한 측근은 “한 대표가 어떻게 한독 자문위원에 올라 있는지 모르겠다. 서면 가입서도 없이 구두로 승낙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 한독 측에 사실 유무를 따져봐야겠다”고 말했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기자가 여러번 전화통화로 입장 표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하지 않았고 황우석 전 교수는 연락이 닿질 않아 부득이하게 입장을 반영하지 못했다.
이처럼 명단에 올라 있는 유력 인사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자문위원 명단에 등재돼 있었던 사실 자체를 몰랐거나 순수한 마음으로 허락했다는 입장을 전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유력인사들이 한독 측 사업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거나 막후 역할을 담당한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자본금 3억 원대의 회사로 5000억 원이 넘는 초대형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독 측과 서울시 간의 특혜 분양 의혹 등이 본격 제기된 만큼 이들 유력 인사들이 한독 설립자문위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권은 또 한 차례 논란에 휩싸일 공산이 커 보인다. 아울러 불필요한 의혹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문위원회 설립 과정과 자문위원들의 역할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편 DMC 사업과 관련해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자 한독 측은 법적 대응방침을 나타내며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 기자가 지난 20일 한독 본사를 직접 방문해 윤여덕 대표와의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한독 측은 이를 거절했다.
[한독산학협동단지 사업추진 일지]
▲2000년 4월 서울시 상암동 DMC 사업계획 발표
▲2000년 6월 한독연구단지(KGIT) 설립자문위원회 구성
▲2000년 11월 (주)한독산학협동단지(KGIP) 법인 설립
▲2001년 9월 한독-독일대학컨소시엄(KDU) 양해각서 체결
▲2002년 2월 한독, 상암동 DMC 내 KGIT 설립제안서 서울시 제출(설립자문위 명단 포함)
▲2002년 3월 서울시-한독 KGIT 설립 협정서 체결
▲2002년 5월 서울시, C4용지(교육연구용지), E1-1, 2용지(외국인입주용지) 등에 대해 매각 공고
▲2002년 6월 서울시-한독 용지매각 양해각서 체결
▲2003년 4월 서울시-한독 용지(C4, E1-1,2) 매매계약 체결(6개월 이내 사업계획서 제출 단서조항 명시)
▲2003년 10월 한독 KGIT 사업계획서 서울시 제출
▲2004년 1월 한독 최종 사업계획서 제출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