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들은 연신 ‘노무현! 짱!’을 연호하며 월드컵 박수로 분위기를 돋구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자, ‘노무현 짱’의 구호는 어느새 ‘정당개혁’으로 바뀌었고, 얼마 뒤에는 ‘조선 폐간’이란 구호로 바뀌었다. 민주당사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당직자는 “노무현 당선자에게 두 가지 개혁과제를 지지자들이 주문하고 있는 것 같다”며 “노 당선자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지지자들의 주문을 실현해 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궁금증이 해소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노무현 당선자측에서 당선 확정 이후 만 60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정당개혁’을 위한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노무현 당선자 측근 인사들이 전면에 나섰다. 12월22일 노 당선자 측근 의원 23명은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와 ‘지도부 인책’ 등 정당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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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당선자가 지난 12월27일 전방부대를 방 문,‘진짜’ 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간사진 공동취재단 | ||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노무현 당선자와 주변 인사들의 주도로 ‘정당개혁’을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 상황은 대선 이후 정국을 이끌고 나갈 ‘주류 교체’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현재의 지도부가 ‘인적청산’ 대상으로 떠올랐지만, 궁극적으로는 ‘탈DJ, 탈호남’을 지향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도부 교체를 통한 주류세력의 교체가 1차적인 과제로 부상하고 있고, 2차적으로는 국민경선 이후부터 대선 과정까지 걸림돌로 작용했던 반노/비노 진영 인사들에 대한 숙정 작업이 병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한화갑 대표 등 동교동계 인사들은 물론, 정균환 총무, 박상천 최고위원 등 반노•비노 성향을 강하게 내비쳤던 인사들도 ‘인적 청산’ 대상이 되거나 최소한 중용•발탁 대상에서는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후단협 등 ‘노무현 흔들기’에 나섰던 인사들은 당내 권력전환 과정에서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무현 불가론’을 외치며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후보 단일화 이후 복당한 김영배 김명섭 유용태 최선영 이윤수 송석찬 유재규 송영진 김덕배 설송웅 박종우 장성원 의원 등은 당분간 전면에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국구 의원직을 유지한 채 탈당할 수 있도록 제명을 요구했던 최명헌 장태완 박상희 의원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 한편,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확정 이후, 검찰의 정치인 소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노무현 당선자 취임 이전까지, 그동안 문제가 됐던 정치인에 대한 사법처리를 마무리지을 것이란 얘기가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김대중 정권하에서 각종 부패스캔들에 연루된 의원들의 사법처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DJ정권에 몸담았던 인사 가운데 부정부패 스캔들 의혹이 새롭게 제기될 경우에도 가혹한 처벌을 면키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후보단일화’를 외치다 한나라당에 입당한 김원길 박상규 의원, 여기저기 떠돌다 역시 한나라당에 합류한 강성구 의원, 그리고 결국 민주당을 떠나 자민련행을 택한 이인제 총재대행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
여기에 야권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 수사를 유보해왔던 사건들에 대해 활발히 수사를 재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풍’ 사건의 서상목 전 의원을 비롯, 안기부 돈 총선자금 유입 혐의를 받고 있는 강삼재 의원 등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여러 가지 혐의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재판에 계류중인 야당의원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즉, 민주당 내부 ‘정풍운동’을 통해 ‘인적청산’을 진행하는 동시에, 검찰 등 사법권을 발동 또다른 ‘인적청산’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밖에 지난 대선기간 동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등 야당에 줄을 댔던 고위공직자 색출 작업도 은밀히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도청 문건’ 등 한나라당에서 대선기간에 공개한 자료의 출처와 제공자를 색출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민주당 내부 ‘정풍운동’은 ‘인적청산’ 외에도 보다 중요한 노림수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기적으로는 현 지도부 교체를 통한 인적청산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당개혁을 통한 정치권 재편에 더 많은 무게가 실려 있는 것.
민주당이 ‘조기 전대 실시’를 둘러싸고 내부 진통을 겪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도 대선 패배 이후 ‘지도부 책임론과 개혁방안’을 놓고 소장파와 당권파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이 권력교체를 통해 노무현 당선자 중심의 새로운 리더십이 구축되는 것과 동시에 한나라당의 붕괴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대선에서는 승리했지만, 아직 실질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물적 토대는 미약한 상태다. 과반 의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건재하는 이상 정상적인 정권 운용은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총리 인준’ 등 새 정부가 매끄럽게 출범하기 위해서도 야당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현재의 의석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총리 인준’부터 난항에 봉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 당선자측은 안으로는 민주당 지도부 인적청산을 통한 노무현 당선자 중심의 견고한 리더십 세우기를 꾀하고 있는 동시에, 밖으로는 한나라당의 자체 붕괴, 혹은 분당을 촉발시킬 촉매제로 ‘정당개혁’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의 재편은 노무현 당선자 지지자들이 개표 당일 노 당선자에게 주문했던 ‘언론개혁’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후보 시절 ‘언론의 자유와 언론 사주의 특권은 구별되어야 한다’며 어떠한 형태로든 언론에 대해 손댈 것을 공언해 왔다. 게다가 그는 당선 직후에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이) 오만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 개혁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모델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직접적인 방식이 아닌, 법과 제도를 통한 간접 방식의 개혁에 나설 것이란 원론적인 방법론만이 제시된 상태다. 정치권과 언론 등 정치 주변세력보다는 일반 대중의 자발적 지원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당선자가, 기존 정치권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그리고 얼마만큼 사회 전반의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