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고 답변하고…알고보니 대행사 원맨쇼?!
단 3개월이었다. 만년 꼴찌였던 제조사가 허니버터칩을 출시하고 스낵류 매출 1위로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제조사뿐만 아니다. 몇 년째 ‘질소과자’ 논란으로 불황을 겪던 과자업계 전체의 고민까지 순식간에 털어냈다. 이 과자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은 없었다. 오히려 허니버터칩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만들었다. 이들이 만들어낸 ‘소문’이 SNS를 타고 회자되면서 순식간에 ‘국민과자’ 새우깡의 아성을 넘어 버린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이 허니버터칩을 ‘놀이코드’로 선택한 것이 계기가 됐다. ‘구매기’와 ‘실패기’를 온라인 게시판과 SNS 등에 올리며 각종 이미지와 유머·화제·소문을 만들어냈고, 이 ‘놀이’에 연예인까지 가세하면서 확산 속도는 걷잡을 수 없었다. 실제로 2014년 10월 20일 68건에 불과했던 허니버터칩 관련 트윗은 한 달 만에 5730건으로 폭증했다.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허니버터칩 SNS 언급횟수는 땅콩회항의 2배(415만 8745건)를 기록했다.
한 마케팅 업계 홍보실 관계자는 “허니버터칩의 성공은 100% 바이럴마케팅 효과”라며 “당시 이 과자를 사는 게 ‘트렌디’한 활동이 됐고, 직접 구해 인증하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됐다. SNS에서 시작된 입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허니버터칩은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소문으로만 과자업계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 꿀꽈배기의 허니(꿀), 버터링의 버터, 칩포테이토의 칩을 더한 허니버터칩 3종 세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중고거래사이트에는 한 봉지도 아닌 낱개과자 하나를 500원에 판매한다는 글도 올라왔다.
바이럴 마케팅은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입을 통해 확산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허니버터칩의 경우처럼 업체가 직접 제품을 홍보하지 않고 소비자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과거 방문판매, 무료체험 등의 마케팅 방식이 스마트폰, SNS가 생활화되면서 날개를 얻었다. 앞서의 홍보실 관계자는 “파워블로거 개념이 생기고 스마트폰과 SNS로 인해 입소문의 확산 속도는 폭발적으로 빨라졌고 범위도 넓어졌다. 여기에 재미를 더하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면 자발적으로 SNS에 공유하기도 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열풍과 김보성의 ‘으리’로 기억되는 식혜 광고가 대표적인 예다. 전통적인 방식이었던 입소문 마케팅이 21세기에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럴 마케팅은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지는 방식을 그대로 SNS와 블로그, 카페 등에 차용한다. 소비자들의 ‘입’은 제품 사용기, 카페 댓글, 지식인 답변 등이 대신한다. 또 다른 마케팅업계 관계자는 “포털 검색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선 일방적인 광고보다 ‘직접 써보니, 방문해보니 좋더라’라는 ‘후기’가 더 신뢰도가 높다는 인식이 생겼다.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제품이나 서비스에 접근하게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바이럴 마케팅은 신문, TV CF 등 전통 매체를 통한 것보다 광고비가 적게 든다. 시간제한도 없고 일단 성공하면 역으로 전통 매체에 소개되기도 한다. 들인 비용보다 몇 배 높은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앞서의 마케팅 업계 관계자는 “자본이 부족한 영세 상인들부터 최근에는 은행, 보험사, 대기업, 언론사까지 바이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제는 특정 산업 분야의 새로운 시도가 아닌, 모든 업체가 고려해야 할 하나의 광고 기법이 됐다”고 말했다.
화장품 바이럴 마케팅 블로그.
업계 관계자들도 이에 대해 일부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의 한 대형 바이럴 마케팅 업체 대표에 따르면, 전혀 들어본 적도 없고 화제가 될 만한 것도 아닌 제품이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올라오는 경우, 또는 검색창에 특정 키워드를 입력했을 때 가장 상위에 노출되는 경우는 대부분 바이럴 마케팅 대행사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경우, 신뢰도는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앞서의 바이럴 마케팅 업체 대표는 “바이럴 마케팅이 가장 활성화돼 있는 분야 중 하나인 성형외과를 예로 들면, 관심이 있는 소비자는 보통 병원 방문 상담에 앞서 검색부터 한다. 이들은 검색 결과 가운데 포털에 광고비를 지불하고 노출되는 ‘파워 링크’ 대신 ‘후기 블로그’나 ‘카페’를 클릭하는데, 그 글이 마음에 들면 병원을 찾는다. 병원 입장에선 전화나 방문 상담이 늘어나는 만큼 매출도 늘어난다”며 “중요한 건 바이럴 마케팅 업체들이 대부분 병원을 광고주로 두고 이러한 후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맛집, 화장품, 여행지, 펜션 등도 마찬가지다. 현재 포털에서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된 블로그, 카페 70% 정도는 바이럴 마케팅 대행사가 작업한 곳”이라고 귀띔했다.
즉, 일방적인 광고를 피해 생생한 정보를 얻으려 믿고 클릭한 블로그, 카페가 대부분 후기를 가장한 ‘광고’라는 얘기다. 종종 “블로그에서 ‘맛집’이라고 소개된 글을 보고 찾아갔는데 맛도 없고 서비스도 엉망이었다”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갔는데 카페 글과 달리 추가 비용을 요구했다”는 불만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이러한 ‘광고’ 게시물을 보고 방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같은 신뢰도 추락은 인위적인 ‘조작’에서부터 시작된다. 문제는 이 ‘조작’이 바이럴 마케팅의 ‘처음이자 끝’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조작’ 방법은 과거엔 하나의 작업 기술이었지만 이제는 업계에선 기본으로 통한다고 한다. 또 다른 바이럴 마케팅 업체 관계자는 “바이럴 마케팅은 콘텐츠(제품 또는 서비스 등)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광고 노출 채널의 계정만 있으면 된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후엔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접속자 수가 많은 파워블로거에게 접촉해 제품을 제공하거나 현금을 지급하고 ‘사용 후기를 작성해달라’고 제의한다. 이 과정에서 블로거에게 ‘요새 유행하는’ 등의 문구나 광고주가 요구하는 키워드를 꼭 넣어 달라고 전한다. 두 번째는 포털 아이디를 만들거나 구입해 블로그나 카페에 직접 리뷰나 후기를 쓴다”고 설명했다.
바이럴 마케팅 대행사가 직접 리뷰나 후기를 쓰는 경우에는 단계가 여러 번 나뉜다고 한다. 예를 들면 “겨울철 피부가 거칠어져서 수분크림을 찾고 있다”는 질문 글을 먼저 올리고, 시간차를 두고 다른 아이디로 “좋은 게 많지만 직접 써보니 OO사의 A 크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런 기능이 있다”는 글을 올린다. 이후엔 앞서 질문 글을 올린 아이디로 “OO사의 A 크림을 샀다. 1주일 써보니 정말 좋다”며 사진과 함께 상세한 리뷰를 올리는 식이다.
이 작업 과정에선 포털의 검색 제재 프로그램도 무용지물이다. ‘로직’ 또는 ‘알고리즘’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무분별한 홍보, 광고 글을 차단하고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며, 일정한 주기로 변한다. 하지만 앞서의 바이럴 마케팅 관계자는 “방문자, 댓글, 스크랩 수, 머물렀던 시간 등 18가지 변수를 통해 검색 순위가 올라가는데, 프로그램이 변화해도 댓글, 스크랩, 방문자 수 등 변수를 하나씩 도입하며 바뀐 알고리즘을 확인해 검색 상위에 올린다. 언제 어떻게 바뀌든 어쨌든 포털 내부의 블로그나 카페에서 작업하는 거다. 알고리즘이 바뀌어도 시간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화장품 추천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이 가운데 70%는 바이럴 마케팅 대행사의 손길이 닿았다.
이러한 무분별한 ‘광고’는 넓은 범위에서 ‘기만 광고’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게 공정거래위원회의 설명이다.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보면 “광고주와 추천·보증인과의 사이에 추천·보증 등 내용이나 신뢰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광고주 또는 추천·보증인은 이러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개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 커피 전문점이 광고임을 밝히지 않고 블로그, 카페 등에 후기를 가장한 광고 글을 올렸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소비자가 스스로 기망에 빠져 ‘역선택’을 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바이럴 마케팅 형태가 다양해지는 만큼 소비자 기만행위나 부당광고에 대한 감시와 제재를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포털 측 관계자들은 “조작을 방지하는 기술을 도입해도 조작 업체가 또 다른 방법으로 조작을 시도해 원천 차단은 어렵다”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패턴을 연구하고 지속적으로 알고리즘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가를 받은 광고인 경우 이 사실을 밝히거나 표시를 하지 않으면 삭제하는 등 기만 광고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분위기를 인식한 업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앞서의 바이럴 마케팅 업체 대표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대부분의 바이럴 마케팅은 불법은 아니지만, 인위적으로 조작을 하기 때문에 편법인 것은 맞다. 최근 업체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이 때문에 조작보다는 재밌고 흥미를 유발하는 동영상 등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콘텐츠가 좋으면 조작 없이도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좀비PC’ 만들어 검색어 조작…불법 일삼는 업체도 바이럴 마케팅 대행사의 진입 장벽은 낮은 편이다. 10명 남짓의 적은 인원, 컴퓨터와 간단한 기술만 있으면 ‘회사’ 하나는 거뜬히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초기 자본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하루 최대 600개의 대행업체가 생겼다 사라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해킹과 불법 계정 거래를 하는 부실한 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먼저 이 업체들은 인원이 적어 해킹을 통해 ‘좀비PC’를 양산한다. 악성코드를 심어 불특정 다수의 컴퓨터를 오염시킨 뒤, 좀비PC로 만들어 사용자도 모르게 특정 단어를 검색하도록 조종하는 방식이다. 좀비PC 한 대에는 4개의 IP를 설정한다. 컴퓨터 한 대가 4대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미리 정해둔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어를 조작한다. 포털 측 단속을 피하기 위해 서버는 중국이나 필리핀 등에 둔다. 포털 계정 불법 거래도 이 업체들로 인해 더욱 활성화됐다. 이미 국내‧외에서 거래될 정도로 하나의 전문화된 시장으로까지 발전했다는 지적이다. 포털 계정은 크게 ‘신규 계정’과 ‘해킹 계정’으로 나뉘는데, 신규 계정은 공급 업자가 새롭게 만든 포털 계정, 해킹 계정은 타인이 현재 사용 중인 계정이다. 신규 계정은 2000~2500원, 해킹 계정은 그 절반인 1000원 미만에 거래된다. 해킹 계정은 원래의 주인에게 금방 발각될 가능성이 높아 오래 쓸 수 없기 때문에 값이 저렴하다. 신규 계정은 카페나 커뮤니티 등에 글을 남기는 데 주로 쓰인다. 해킹 계정은 지식인 서비스나 댓글 작성에 쓰인다. 앞서의 바이럴 마케팅 업체 대표는 “일부 대행사는 월 2만~3만 개를 구입하는 것으로 안다”며 “바이럴 마케팅이 성업 중이라 거래 규모는 가늠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최근 광고주들은 대행사들이 불법 계정을 쓰고 해킹을 하는 것을 금방 알아챈다. 업계 특성상 대행사들은 한두 달 일거리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수많은 업체가 하루가 멀다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라며 “광고주들이 업체 이미지 때문에 이런 대행사들과는 거래를 잘 하지 않아, 열심히 운영하는 대행사들은 이런 방식은 잘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
‘블로거지’ 사라지고 ‘인스타거지’ 생겨난다 음식점, 화장품, 패션 등 다양한 업계에서는 그동안 파워 블로거들에게 제품을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현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광고를 해왔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받은 파워 블로거가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후기를 올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가를 받고 작성한 게시물에는 ‘생생한 리뷰’보다 칭찬 일색의 광고물이 넘쳐나자 소비자들의 불신은 커졌다. 이 과정에서 ‘블로거지(블로거+거지)’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법원에서 “블로거에게 돈을 주고 홍보성 글을 올리게 하면서 이를 밝히지 않은 것은 기만적인 광고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블로그를 활용한 바이럴 마케팅 방식이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같은 행태는 장소를 바꿔 성행하고 있다. 블로그의 인기가 떨어지고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업체와 대행사, 블로거들이 인스타그램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팔로어 수를 늘려 협찬을 받으려는 사람들을 일컬어 인스타거지(인스타그램+거지)라는 말도 생겼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의 ‘추천·보증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 지침’에는 포털 블로그나 카페의 경우 돈이나 협찬을 받아 글을 올릴 때, 해당 내용을 명시해야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이러한 규정이 없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한 홍보 업계 관계자는 “파워블로거들에 대한 대가성 협찬 등에 대한 불신과 문제로 규제가 생겼는데 똑같은 상황이 다른 SNS 채널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