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골프여왕’ 박세리(28·CJ)가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리면서 그 해법 중 하나로 “빨리 결혼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나이도 나이거니와 지난해 5월 명예의 전당 헌액 자격을 갖추게 되면서 목표의식이 약해졌으니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변화를 줘야 한다는 논리다.
따지고 보면 이는 김미현(28·KTF) 박지은(26) 강수연(29·삼성전자) 등 만 25세를 넘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미LPGA의 코리언 돌풍 1세대들에게는 다 마찬가지다. 프로야구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손혁과 살림을 차린 한희원(27·휠라코리아)만 제외하면 이들은 다 같은 처지인 것이다. 투어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고려하고 있는 박세리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김미현 박지은 강수연의 성적도 슬럼프를 갖다붙여도 심하지 않을 만큼 올시즌 성적이 신통치 않다.
반면 김주연(24) 장정(25) 강지민(25) 이미나(24) 등 2세대로 꼽히는 선수들이 잇달아 깜짝우승을 달성하며 ‘세대교체 열풍’을 주도하고 있으니 결혼 해법이 제시될 법도 하다.
하지만 미LPGA의 한국선수들을 오랫동안 취재한 경험으로 보면 ‘결혼’은 웃음이 나오는 처방이다.
기본적으로 결혼은 인륜지대사다. 좀 심하게 말하면 당사자들에게는 골프보다 남은 평생을 함께 살 배우자를 결정하는 결혼이 더 중요한 일이다. 제3자가 쉽게 ‘빨리 결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문제가 아니다(골프전문기자를 수십년 했다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결혼해법이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된다는 듯 얘기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으면 환장할 노릇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놓인 상황이다. 신체건강하고 골프까지 잘 치는 젊은 처녀들인데 왜 연애와 결혼을 마다할까. 멋진 남자라면 한 번쯤 눈길을 더 주게 되고, 또 평생을 골프만 알고 산 까닭에 의외로 순진한 구석들이 많다(박세리는 몇 년 전 장동건과 원 포인트 레슨을 진행하면서 엄청나게 긴장한 적 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다들 열심히 연애를 할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이들 주변엔 ‘남자’가 없다. 또 연애할 시간이 없다.
주변남자들은 뻔하다. 골프 대디로 불리는 선수들의 아버지, 매니저, 골프업계 직원, 소속사 직원, 좀 젊다 싶으면 ‘외국넘’이거나 동료의 오빠나 남동생 즉 선수가족이다. 어쩌다가 눈에 띄는 젊은 남자가 있어도 잘해야 한국에서 취재하러 온 기자다. 그나마도 골프기자들은 고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90% 이상 기혼자다.
맨날 이런 사람들만 만나는 것이다. 그나마도 아버지 등 가족이 항상 옆에 붙어있어 따로 만나기가 쉽지 않다. 투어생활을 하다 보니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경우가 없어 미국의 한국교포 젊은이와 진득하게 연애하기도 쉽지 않다. 또 어느 한국청년이 그 유명한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등과 연애와 결혼을 목적으로 달려들 것인가. 사인이나 한 장 받아 가면 그만이지.
이 또래 평범한 한국 아가씨들을 보자. 초-중-고-대-직장을 거치며 일단 주변에 선후배 동료 남자들이 많다. ‘솔로’라면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소개팅 시켜준다고 난리다. 자연스레 또래의 남자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다. 이러다가 자연스레 결혼상대를 구하는 게 보통이다.
열살이 조금 넘었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다니며 매일 여자들끼리 ‘자치기’만 한 우리의 한류 골프스타들에게는 언감생심인 과정이다. 학교생활을 통해 자연스레 알고 있는 남자친구는 전무하고, 이후에도 맨날 똑같은 사람만 만날 뿐이지 연애대상은 주변에 없다.
박세리와 박지은의 예를 들어 보자.
박세리는 한국체류 때 가장 친하게 지내는 젊은 남자가 고작 경호원들이다. 한 경호원은 수년간 박세리를 따라다니다 보니 친해졌고, 이제는 박세리가 편하게 느껴 ‘이왕이면 그 친구로 해달라’고 주문할 정도다. 하지만 박세리가 경호원하고 연애해 결혼하는 게 쉽겠는가. 박세리도 경호원도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고 있다. 누가 ‘아가씨’ 박세리와 조용히 연애 한 번 할 수 있겠는가.
박지은은 리라초등학교를 나왔다. 당연히 한국 친구는 리라초등학교 동문들이다. 대학생이던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유명한 박지은은 동문관계의 남자들과 자주 만났다. 평범한 우리네처럼 동문인데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하지만 20대 중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먹고 사느라 바쁘고, 또 박지은이 골프를 치러 미국에 간 사이 대부분 애인을 갖게 됐다. 어쩌다 한 번 한국에 오는 박지은이 진득하게 연애를 할 남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조선시대처럼 부모가 정해주는 상대와 무작정 결혼할 수도 없고, 한두 번 만난 것 가지고 백년가약을 맺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솔직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발이지 그렇게들 쉽게 ‘결혼이나 해라’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좋은 남자 만나기를 기원이나 해주면 족하다.
스포츠투데이 골프팀장 einer@stoo.com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