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회 승인 조항, 최종 계약서엔 실종”…계약 수정 과정 고의 삭제 의혹
여의도 IFC 건물 전경. 고성준 기자
2003년 서울시는 여의도에 서울국제금융센터(IFC) 건립 추진을 결정하고 AIG와 수의계약을 진행한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모린스그린버그 AIG 전 회장과 MOU를 체결했으며 1년 후 기본협력계약(BCA, Basic Cooperative Agrement)을 체결했다. 당시 기본협력계약에는 서울국제금융센터의 사업방식, 개발 및 관리 위탁 등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개략적인 구조, 규정 등이 담긴 것으로 파악된다.
계약은 전반적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양상을 보였다. 2005년 8월 서울시는 AIG와 개별임대계약(PLA, Project Lease Agrement)을 체결했다. 개별임대계약에는 기본협력계약보다 한층 구체화된 안이 논의됐으며, 국내에 설립 등기를 한 5개 회사가 AIG 컨소시엄을 꾸려 계약에 참여했다. 5개 회사는 IFC 오피스 1동, 2동, 3동, 콘래드호텔, 쇼핑몰 등 총 5개동 건물에 각각 임대계약을 맺었다. 컨소시엄의 투자자로는 AIG 부동산투자 자회사인 AIGGRE를 포함해 아시아, 유럽, 중동 등 투자 펀드 금융회사 15개사가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투자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베일에 가려 있다. AIG 측에서 영업상 기밀로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6년 서울시장직을 퇴임하자 차기로 당선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계약 최고 결정권자가 됐다. 오 전 시장은 AIG 측과 2006년 10월 지하공공보도시설 개발 및 사용, 수익 관련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을 IFC 지하로 연계시키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역시 AIG 측에 지하공공보도 상가 임대권을 주고 20년간 무상 사용토록 해 특혜 시비가 일었다.
2007년 들어 계약은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그해 1월 서울시는 AIG 측과 기본협력계약 및 개별임대계약을 ‘수정합의’ 했다. 이로써 실질적으로 서울시와 AIG의 계약은 마무리됐다. 2003년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시작된 계약이 2007년 오세훈 전 시장에서 마무리된 셈이다.
하지만 계약의 전반적인 내용은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서울시와 AIG 측이 계약 조건으로 ‘기밀 유지’를 합의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세간에 공개된 것은 IFC의 임대조건 정도다. 서울시는 IFC 건축기간인 2006년부터 2010년까지 AIG에게 토지 임대료를 면제해줬다. 이후 2011년부터 2017년까지는 토지임대료를 공시지가의 1%만 내도록 했으며 2018년 이후 나머지 임대료를 정산할 수 있게 했다. 이밖에 50년 임대 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49년을 추가로 재계약할 수 있도록 했으며, ‘99년’ 사용 후 건물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을 걸었다. 이러한 임대 조건은 현재 서울시가 AIG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으며 ‘부실 계약’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AIG와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계약을 마무리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일요신문 DB
앞서 ‘시의회 승인’ 조항은 2004년 1차 기본협력계약 당시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2007년에 왜 사라졌는지 불분명한 상태다. 서울시 측은 당시 수정계약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조항 삭제와 관련해서는 함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정계약은 기존 계약에서 일부 개별적인 부분들을 수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크리티컬한 부분은 없었다”며 “조항삭제는 확인을 해드리기 어렵다. 계약 내용과 관련한 사항은 모두 기밀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일각에서는 시의회 승인 조항이 사라진 것과 관련해 서울시와 AIG 측이 ‘걸림돌’을 제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특혜 시비가 일고 있는 상황에서 행여나 ‘시의회 승인’ 조항이 계약서에 남아 있었다면 이를 결과적으로 지키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의회에서 분명히 문제를 삼고 넘어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AIG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시의회 측이 질의를 하면 실무진 차원에서 중간중간 설명을 했을 뿐, 승인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일부 승인을 받았다 하더라도 계약 내용이 아니라 자문단 구성 등 부수적인 예산과 관련해 시의회의 심의를 받았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계약서상에 ‘의회 승인’ 조항이 있었던 상황에서도 별다른 승인을 받지 않았으며 추후에 해당 조항마저 삭제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행태가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을 어긴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제10조 공유재산의 관리계획 수립·변경 등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예산을 지방의회에서 의결하기 전에 매년 공유재산의 취득과 처분에 관한 계획을 세워 그 지방의회의 의결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서울시 측은 AIG와의 계약은 성격이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규정을 살펴봤는데 서울시가 투자나 처분을 하는 건이라든지, 소유권의 변동이 있는 건 등은 의회에 사전에 절차를 밟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AIG와의 계약은 그런 건은 아니었기 때문에 의회 동의가 별도로 필요하진 않았다”라고 전했다. 즉 기본적으로 임대 및 운영 계약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 단위가 넘는 사업의 규모와 해당 부지가 시의 재산인 ’공유지‘라는 점 등을 따져봤을 때 지방자치단체장의 전권으로, 게다가 비밀 유지 계약을 맺었다는 점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거세다. 아울러 ‘시의회 승인’ 조항 삭제와 관련 의문스러운 점은 계속해서 제기된다. 결국 향후 특혜 시비를 대비해 계약서의 조항마저 삭제해버리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또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지만 계약서상에 그러한 문구가 남아 있다면 현재의 특혜 의혹에 대해 좀 더 다퉈볼 여지가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AIG 특혜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서울시의회 국제금융센터 특별위원회(특위) 측 역시 해당 조항 삭제와 관련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특위 관계자는 “서울시와 AIG의 비밀유지의무가 지나치게 강하다. 면책특권이 없는 시의원으로서는 계약서상의 문제점을 알아도 이를 위반할 경우 민-형사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이 특위 활동에 큰 제약이 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다만 지난 2월 18일 특위가 의결한 계약실무자 증인신청 과정에서 정황 단서는 찾아볼 수 있었다. 당시 특위 측은 증인신청 배경 중 하나로 ‘기본협약계약(BCA)에 규정된 조건인 의회 승인 여부’를 언급한 바 있다.
결국 시의회의 제대로 된 견제를 받지 못한 서울시와 AIG의 IFC 계약은 현재 눈덩이처럼 불어난 특혜 의혹으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는 상황까지 치달은 모습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조항이 삭제된 배경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외국계 투자를 끌어올 때 무조건 혜택부터 주기보다는 의회의 감시 권한을 더 강화하는 조례 및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