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중팔구 다 턴다” 요란한 군기 잡기
박근혜 정부가 기업들의 반발 우려에도 강도 높은 사정 드라이브 채비를 갖추고 있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과 검찰 이미지 합성. 일요신문DB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현 정부 스탠스는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오래 근무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솔직히 말하면 임기 후반기엔 기업들이나 수사를 진행해야 할 기관들이 청와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임기 끝날 때까지 버텨보자는 심산이다. 공직사회 감찰을 강화하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임기 4년차인 올해 들어 재계엔 오히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검찰 등 일부 사정기관들이 기업비리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이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진두지휘 아래 주요 사정기관들에 대한 친위 체제를 구축했다는 자신감(<일요신문> 1241호 보도)이 밑바탕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검찰은 범죄첩보 및 회계분석 관련 팀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에 대한 기초 작업을 끝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에 갖고 있던 내용들을 재정리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의혹들도 대거 포함됐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총수가 사법처리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SK와 한화그룹 정도를 빼고는 10대 기업 대부분, 그리고 또 다른 몇몇 기업들을 조준했다고 보면 된다. 바로 수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관련 부서들이 자료들을 축적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바탕 곤욕을 치른 A 그룹의 경우 총수 개인 비리와 관련해 신빙성 있는 제보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총수가 회사 돈을 빼돌려 조성한 비자금이 개인 부동산 구입에 사용됐다는 게 골자다. B 그룹은 하청업체와의 계약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부정이 저질러진 혐의가 포착됐다고 한다. 재계서열 10위엔 들지 않지만 지난 정권과 가까운 또 다른 그룹도 여러 비리로 수사선상에 근접해 있다는 귀띔이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총수일가 비리나 기업 재무제표 체크 등과 관련된 첩보는 꾸준히 생산하는 것들이다. 대통령 임기 후반기라고 그러한 활동을 안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나 이번의 경우엔 그 성격이 다르다고 보는 게 맞다. 범위나 강도가 상시로 이뤄지는 것보다는 몇 단계 높은 수준이었다.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초동 주변에선 현재 검찰 등이 수집한 첩보를 바탕으로 조만간 특정 기업에 대한 수사가 착수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니 중수부’라고 불리는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고른 3~4곳의 기업을 놓고 검찰총장이 장고에 들어갔다는 말도 뒤따른다. 앞서의 A·B 그룹도 여기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중 한 곳도 대기업 수사를 준비 중이라는 전언이다. 현재 검찰 내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대검 특수단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동시에 재계를 조준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들은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재계 1위 삼성그룹조차 서초동에 대한 스크린을 강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의 한 임원은 “검찰 쪽이 기업 첩보 생산을 늘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삼성이라고 예외라는 법은 없지 않느냐. 아직 타깃이 정해지지 않았다는데 어디가 될지, 또 우리와 관련된 첩보는 어떤 내용인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재계 안팎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가뜩이나 대내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정부의 사정 드라이브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 특정 건수가 아니라 저인망식으로 여러 기업들의 밑바닥을 샅샅이 훑는 것에 대해선 그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A 그룹의 한 임원은 “기업이 잘못을 했으면 수사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현 정권이 재계의 기강을 잡기 위해 엄포를 놓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검찰 내에서조차 비슷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식 수사가 아닌 첩보 수집 치고는 지나치게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검찰청의 한 검사는 “기업들이 난리더라. 이는 곧 검찰 내부 동향이 어느 정도 읽히고 있다는 얘기다. 만약에 수사를 할 거였으면 조용히 ‘환부’를 도려내면 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이렇게 초동 단계에서부터 비밀이 새나가는 등 왜 시끄러운지 이해가 안 된다. 수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검사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야권에서는 현 정부가 사정기관을 활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여러 번 제기한 바 있다. 친박 핵심부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사정 드라이브를 걸어 재계의 군기를 다잡으려는 전략으로 보는 것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기업은 정치 판세에 민감하다. 차기 권력과 손을 잡으려 할 것이다. 이는 곧 박 대통령 레임덕을 의미한다”면서 “대기업들에 대한 광범위한 사정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외부로 흘린 것 역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메시지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