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 있던 몰카 선거 직전 번쩍
▲ 박계동 의원 | ||
여야 정치권은 사건의 본질보다 선거정국 유불리를 따지며 이번 일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분위기다. 또한 누가 무슨 목적으로 동영상을 촬영했고 박 의원과 동행한 인사들은 누구인지, 또 다른 몰카 피해자는 없는지 등 이번 파문과 관련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동영상 파문과 관련한 4대 의문점을 정리해 봤다
1. 누가 왜 촬영했나
이번 파문과 관련해 가장 큰 관심사는 몰카 촬영자가 누구이고 무슨 목적으로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했는지다. 당시 술자리 참석자는 박 의원을 포함해 모두 5명이었지만 동영상에는 박 의원과 여종업원만 등장한다.
동영상을 본 전문가들은 카메라의 각도와 화질 등을 감안할 때 전형적인 몰카 수법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누군가 작심하고 박 의원을 표적 삼아 미리 몰카를 설치해 놓고 성추문 장면만 편집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 또 박 의원 일행이 모임을 가진 시기는 3월 말인데 이제서야 동영상이 유포된 배경에도 의혹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의원은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누군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악의적으로 촬영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공작 의혹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몰카를 찍었을 것으로 짐작가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공천 문제로 앙심을 품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야당 의원 흠집내기 차원에서 누군가 함정을 파 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진실은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 밝혀질 것”이라고 답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몰카 촬영 대상자로 이번 지방선거 공천에서 탈락한 A 씨와 박 의원의 정치 라이벌인 B 씨 측근 등의 실명이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동영상 유포자는 몰카 촬영자와 동일인 내지는 그의 사주를 받은 관계자일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2. 성추행 진위 공방
박 의원이 실제로 여종업원을 성추행했는지 여부와 관련한 진실게임 논란도 뜨겁다. 51초 분량으로 촬영된 동영상에서 박 의원이 여종업원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며 오른쪽 팔을 여종업원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는 장면이 목격된다. 문제는 박 의원의 오른손이 여종업원의 가슴 부위를 만졌는지 여부다.
일단 동영상을 본 상당수 네티즌들은 성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도 박 의원의 부적절한 성적 행동을 비난하며 한나라당의 진상조사와 박 의원의 대국민 사과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박 의원은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장면이 있지만 여종업원의 가슴을 만진 적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한쪽 손을 어깨에 올린 상태에서 가슴을 만지려면 손 동작이 커야 하는데 탁자에 한쪽 손을 올린 상황에서 불과 1초 만에 어떻게 여종업원의 가슴을 만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 몰카가 촬영된 청담동 H 카페 입구. 지금은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이곳 관리인은 지난 3일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된 직후 카페가 폐쇄됐다고 말한다. | ||
박 의원은 또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해당 장소가 룸이 아닌 테이블이 6개 정도 놓인 오픈된 곳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박 의원의 성 추행 여부는 당사자인 여종업원과 모임에 참석했던 일행들의 진술에 따라 그 진실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윤리특위도 이들 당사자들의 진술을 듣고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박 의원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박 의원과 술 자리를 함께한 일행과 모임의 성격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 의원은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3월 말 서울시장 영입 활동과 관련해 가졌던 전직 청와대 비서관 등 선후배들과의 술자리로 2시간 정도 소요됐다”고 모임의 성격을 설명했다.
서울시장 영입 문제와 관련한 모임이었다는 박 의원의 해명이 나오자 정치권의 관심은 모임 참석자와 구체적인 대화 내용에 쏠리기 시작했다. 박 의원은 모 언론사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YS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C 씨와 그 일행, 97년 DJ 대선캠프 관계자, 대학 후배 정치인 등 4명이라고 보다 구체적인 참석자 신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아직까지 참석자의 실명과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언론사 기자와 오세훈 후보 측근이 술자리에 참석했을 것이란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의혹을 선거전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박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오세훈 후보를 영입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동영상 파문을 ‘오세훈 흠집내기’로 연결시키고 있는 분위기다.
반면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에 이어 또 다시 소속 의원이 성 추문 파문에 힙싸이자 한나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윤리특위를 가동시키는 등 사태 조기 진화에 주력하고 있다.
향후 검찰 조사나 한나라당 윤리특위 조사 과정에서 참석자와 모임 성격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경우 선거 정국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제2의 몰카 테이프나 또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4. 또다른 피해자 여부
H 카페가 위치한 청담동은 서울에서도 고급 술집이 밀집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특히 정·관계 유명인사 등이 단골인 경우가 많아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회원제로 운영되는 업소가 상당수다. H 카페도 일반음식점으로 영업허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객실과 홀에 음향기기 등을 설치하고 여종업원을 고용해 고급 단란주점식으로 영업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구청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기자에게 “H 카페는 2003년 2월 일반음식점으로 영업 허가를 받았지만 업태 범위를 벗어난 불법영업을 하다 다섯 차례나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고 전제한 뒤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더라도 과징금을 내면 원래 허가된 업태로 영업은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H 카페는 지난 3월에도 적발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동영상이 유포되기 하루 전(2일)까지 영업을 계속해 왔던 것으로 취재결과 드러났다. 4일 오후 H 카페가 있는 J 건물 관리인은 기자에게 “그제(2일)까지는 영업을 했는데 어제(3일) 오후 늦게 언론사 기자들이 수시로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카페 측이 문을 폐쇄한 후 지금까지 연락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건물 주차장이 따로 있지만 카페 손님들 차는 업소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한다”며 “손님들은 대로변과 가까운 정문 출입을 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단골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손님들 대부분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걸 보면 상류층이 많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그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카페가 회원제 비슷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담동에서 H 카페와 비슷한 업태를 운영하고 있는 K 씨는 “회원제는 고객들의 사생활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몰카 촬영은 있을 수 없다”며 “박 의원의 경우 누군가 치밀한 계획하에 악의적으로 촬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업소 측 사람이 ‘사생활 철저 보장’이라는 회원제 업소의 대원칙을 악용한다면 오히려 업소를 믿고 드나들었던 유명인사들의 술자리 추태가 고스란히 몰카 등에 찍혔을 개연성도 적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박 의원과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