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 되살리려면 ‘오세훈을 죽여라’
▲ 지난 5일 조계사에서 열린 석가탄신 봉축행사에 참석한 강금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전세를 뒤집기 위해 강 후보가 네거티브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나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소속의 한 중진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를 평가한 말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열린우리당 내에는 이 같은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5월 들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객관적인 상황은 열린우리당에 지극히 불리하다. 4일 보도된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 조사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50.2%)는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32.2%)를 18%포인트 앞섰고 3일 <중앙일보> 조사에서도 오 후보(47%)와 강 후보(29%)의 격차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매일경제>·MBN(TNS코리아) 공동조사에서는 오 후보(60.5%)와 강 후보(26.6%)의 격차가 33.9%포인트에 달했다. 또 4일 <문화일보>·YTN(한국리서치) 공동조사에서는 오 후보(48.6%)가 강 후보(27.8%)를 20.8%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지난 2일 후보 경선의 흥행 실패는 비관론을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날 경선은 결과가 뻔한 상황이어서 당내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투표권이 부여된 기간당원과 일반당원 2만 5000명 중에서 실제 투표에 참여한 사람은 1207명에 불과했다. 투표율 4.8%.
일주일 전 실시한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는 투표율이 40.6%에 달했다. 특히 열린우리당 경선일은 국회 본회의 일정까지 겹쳐 ‘택일’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많았다.
행사장에 뒤늦게 나타난 한 초선 의원은 썰렁한 분위기를 보면서 “예고된 흥행실패라지만 직접 보니 참담하다”며 “당내에서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데 어떻게 시민들을 마음을 잡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행사 준비에 참여한 한 당직자는 “의원들은 선거보다는 선거 이후의 수습책에 관심이 더 많다”며 “선거를 제대로 하려면 이러한 패배의식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강 후보 캠프에서는 아직 ‘대역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바닥을 확인하고 상승세로 반전됐다”는 고무적인 평가도 내놓는다. 이번 지방선거의 승패가 달려있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여권의 내홍은 물론이고 정권재창출 전망까지 어두워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캠프 쪽의 입장이다.
강 후보의 태도도 달라졌다. 최근 그는 연설과 인터뷰에서 ‘목숨’, ‘죽음’, ‘역사’ 등 비장함을 느끼게 하는 단어를 심심찮게 사용한다. 상황은 그만큼 절박하고 강 후보의 의지도 결연해졌다. 캠프 관계자는 “본격적인 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며 “반전의 기회는 반드시 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 지난 3일 TV토론에 출연한 서울시장 후보들. 왼쪽부터 박주선, 오세훈, 강금실, 김종철. | ||
대변인으로 캠프에 합류한 오영식 의원도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대학 시절부터 선거라면 ‘선수’로 통한다. 여기에 전략을 맡은 민병두 의원은 언론사 정치부장 출신으로 당 기획위원장을 거치면서 능력을 이미 검증받았다.
지난 4일부터 강 후보의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캠프에 합류한 박선숙 전 환경부 차관도 강 후보 측에는 ‘천군만마’나 다름이 없다. 박 전 차관은 김대중(DJ)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맡아 ‘DJ의 입’으로 불렸던 인사. 캠프 측은 박 전 차관의 가세로 구 여권 지지층의 결집 효과 등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캠프 측에서 공식적으로 제시한 역전 전략은 이른바 ‘텐(10)·텐(10)·텐(10)’ 작전이다. 강 후보의 진정성으로 지지율을 10%포인트 끌어올리고 검증된 리더십과 능력으로 10%포인트, 정책적 비전으로 10%포인트를 추가해 전세를 뒤집겠다는 것이다.
캠프 대변인을 맡고 있는 오 의원은 “아직 강 후보의 진정성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며 “TV토론 등을 통해 비전과 철학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적으로는 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오 후보와의 전선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캠프의 방침이다. 실제 지난 3일 밤 열린 첫 TV토론회(KBS)에서도 강 후보는 ‘거점별 명문고’ 유치 방안을 내놓으며 오 후보의 ‘자립형 사립고 육성’ 정책을 공격했다. 민 의원은 이번 선거가 “교육시장 대 환경시장의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 대 환경’이라는 정책대결 구도 또한 양자 간의 지지율 격차를 획기적으로 좁히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래서 교육 문제가 기대만큼 관심을 끌지 못할 경우 여권에서 새로운 반전 카드를 꺼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강 후보 측이 복지 문제와 관련해 지난 선거에서 이명박 시장이 제기했던 청계천 복원을 능가하는 정책 이슈를 제기할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한편에서는 정책대결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열린우리당 한 당직자는 “통상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정당 60%, 인물 30%, 정책 10%라는 것이 정설”이라며 “정책은 한계가 있고 인물은 차별화가 쉽지 않는 상황”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이 때문에 캠프 측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결국 오 후보의 개인에 초점을 맞춘 ‘네거티브’ 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오 후보의 사생활과 관련된 각종 루머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오 후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못한다면 현재의 격차를 줄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본격적인 선거전이 전개되면 한두 개의 메가톤급 공격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지만 유권자들이 폭로정치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어 섣부른 폭로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