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국회에서 이용섭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에게 야권연대 등을 정국 현안에 대해 물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더민주 지지층들 사이에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중단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전략적 실수를 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김종인 대표와 우리 비대위원들이 필리버스터에 대한 아쉬움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총선승리와 정권교체,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 우리 당은 달라져야 했다. 필리버스터를 지속했으면 감정적 측면에서 우리 지지층 속은 시원할 거다. 하지만 총선승리를 위해선 중도층도 우리를 지지해야 한다. 필리버스터가 이어졌다면 중도층의 피로감이 계속 쌓였을 거다. 또 필리버스터로 인해 선거구 획정안 처리가 늦어지면 국회가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 책임을 야당이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총선이 박근혜 정권의 경제 실정에 대한 심판론으로 가지 않고 이념논쟁으로 변질될 수 있었다. 선거를 망치는 거다. 수단은 목표에 봉사해야 한다. 당장 기분만 좋게 만든다고 좋은 수단은 아니다.”
—최근 김 대표가 국민의당에 전격적으로 통합 제안을 했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거절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통합에 반대했던 김 대표가 갑자기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무엇인가.
“김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은 박근혜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서 새누리당에게 어부지리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과 야권 지지층의 통합 요구를 반영한 거다. 더민주가 야권의 맏형으로서, 분열을 막지 못한 책임감을 느껴 어렵게 제안한 것인데 안 대표가 거절한 부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그림이 있어도 자기 시력만큼만 보고, 아무리 좋은 소리가 있어도 자기 청력만큼만 들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안철수 대표가 ‘마이웨이’를 고수할 경우 대비책은.
“안 대표의 꿈은 대통령 후보인 것처럼 보인다. 또 당을 나간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통합 결정을 하기 어려울 법도 하다. 하지만 3월 말쯤이면 야권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연대 요구가 터져 나올 거다. 안철수라고 해도 계속 이런 식으로 가지 못한다. 또 총선에서 야권이 패하면 안 대표의 대권가도에도 엄청난 지장이 온다.”
—최근 총선 승리를 위해 ‘투 트랙(two-track) 전략’ 즉 ‘호남 경쟁-비호남 단일화’를 제시했는데.
“호남에서는 지역민들의 선택권이 확보될 수 있도록 양당이 경쟁하고, 호남 이외의 지역에선 새누리당에게 어부지리를 주지 않도록 야권 후보의 단일화 추진하자는 거다. 이는 야권 지지자들의 뜻이다. 야권 승리의 해법이고 정권 교체의 길이다. 박근혜 정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총체적 무능과 부실과 오만으로 점철된 3년’이라고 볼 수 있다. 정권을 바꿔야 하는데, 야권이 하나로 똘똘 뭉쳐도 바꿀 수 있을까 말까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이 필요한데 안철수 대표가 통합은커녕 ‘우리는 수도권에서 연대도 안 하겠다’고 얘기했다. 우리 입장에선 통합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건가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통합이 최선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투 트랙 전략을 써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용섭 비대위원이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더민주 유니폼을 강조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호남지역은 어차피 야권 후보가 대부분 당선된다. 새누리당 후보가 되기는 어렵다. 문제는 지금껏 호남에서 경쟁체제 아닌 ‘독점 체제’가 유지됐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시대정신에도 안 맞고 지역민의 아픔도 헤아리지 않는 계파의 보스가 자기 사람을 공천해왔다. 그 결과 호남은 경제적으로 낙후됐고 정치적으로 소외됐다. 호남에서의 경쟁은 필요하다. 하지만 호남 밖, 즉 우리끼리 경쟁했을 경우 새누리당 후보가 박빙의 표차로 이길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는 질 수밖에 없다. 둘이 나가 무조건 패한다면 연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단일화를 이루어야 한다. 옛날처럼 ‘몇 %를 니들이 가져가라’ 이런 식의 단일화가 아니다. 지역마다 가장 경쟁력 있는 야권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호남 이외 지역에서 해볼 만하다.”
—지난 7일 더민주의 전략공천 명단이 발표됐다. 전략공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략공천은 남용돼선 안 된다. 더민주의 당헌·당규상 전략공천은 전체 선거구 수의 20%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 당헌·당규 위반이 아니다. 유용하게 쓴다면 전략공천은 좋은 전략이다. 예를 들어 조직이 없는 정치신인이 당내 경선을 하면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수 있다면 전략공천은 경쟁력 있는 후보를 뽑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아무도 공천 신청을 안 했다면 누군가 괜찮은 사람을 발탁해 전략 공천을 할 수도 있다. 또 장애인이나 취약계층 대변하기 위해 전략공천을 할 수도 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안철수·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광주시장 전략공천에 반발해 탈당했다.
“물론 자신의 ‘꼬붕들’, 즉 특정 계파가 자기사람을 심기위한 것으로 지금껏 전략공천이 악용된 측면도 있었다. 특히 호남에선 더민주로 공천을 받으면 누구나 당선이 됐다. 그래서 좋은 인물을 보내기보다는 자기 계파의 보스가 ‘자기 사람’을 심어왔다. 이 때문에 호남에서 전략공천을 하면 ‘나쁜 것’으로 규정됐다. 전략공천은 목적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 또 지역에서 오랫동안 선거를 준비해온 사람들이 있을 경우 갑자기 외부에서 영입됐다고 해서 당이 그 사람을 공천하면 당을 위해 고생했던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전략공천을 할 땐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2월 24일 더민주 컷오프(공천 배제) 명단이 발표됐다. 명단에 문희상 홍의락 의원이 포함된 부분에 대해 김 대표도 격노했다고 들었다. 비대위 내부 분위기는 어땠나.
“당이 이미 현역 의원의 20%를 1차 컷오프한다고 발표를 했다. 당이 국민에게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지킬 수밖에 없었다. 컷오프 명단을 금고에 넣어놓고 봉인을 했기 때문에 누가 탈락됐는지 우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까보니 문희상 의원처럼 괜찮은 분들도 탈락이 됐다. 정무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정무적인 판단’이란.
“문 의원은 예전에 열린우리당 의장도 했고 그분이 아니면 그쪽에서 당선될 사람도 없다. 1차 컷오프를 할 때 예비후보가 당을 위해서 기여했던 부분과 상대방 후보에 대한 경쟁력을 고려했어야 했다. 대구에 나갈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홍 의원은 어쨌든 대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감안됐어야 하는데…. 질문을 해서 확인을 하는 방식이다 보니 점수가 적게 나왔다. 그런 점에서 더 정무적 판단을 할 필요가 있었다.”
—컷오프 당한 의원들이 비대위차원에서 구제 가능성은 없나.
“재심 위원회에서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정치인 이용섭의 꿈은 무엇인가.
“내가 꿈꾸는 세상이 있다. 정의롭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 즉 ‘정의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거다. 이런 세상이 되면 ‘선하고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강해지는 사회,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사람들이 우대받는 사회, 변화하고 혁신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가 될 거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것들이고 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꿈을 위해 33년 동안 공직 생활을 했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정치권으로 들어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