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넘어 반박 ‘쑥쑥’ 친박 ‘시들’
![]() |
||
▲ 5·31 지방선거 압승이라는 장밋빛 전망에도 곧 그 뒤에 있는 대권가도를 달려야 하는 박근혜 대표의 고민이 깊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전남도당 필승 결의대회에서 격려사를 하는 박 대표. 국회사진기자단 | ||
그런데 박 대표의 의욕적인 행보와 달리 대권 가도에는 걸림돌도 많다. 먼저 박 대표를 뒤에서 힘차게 밀어줄 중진급 의원들이 부족하다. 박 대표는 그의 전략적 파트너였던 김덕룡 의원이 ‘낙마’하자 크게 상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오세훈 돌풍으로 소장파의 위상이 커진 것도 그에게는 부담이다. 양측은 물과 기름같이 섞일 수 없는 관계라는 게 정설이다. 또한 박 대표의 리더십에 여전히 의문을 표시하는 의원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에선 장밋빛 전망 일색이지만 박 대표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박 대표의 2007년 대선 가도에 놓인 걸림돌이 무엇인지 따라가봤다.
지난해 말 염창동 한나라당 중앙당사 근처의 한 식당. 현재 고위 당직을 맡고 있는 A 의원을 비롯해 동료 의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A 의원이 박근혜 대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박 대표가 콘텐츠가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약간은 있는 것 같다. 야, 그나마 서강대학을 나와서 말귀는 좀 알아듣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있던 한 의원은 A 의원의 말이 심하다고 보고 “의원님, 지금 식당 종업원들이 다 지나다니며 우리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한나라당이 엘리트주의라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게 되면 S대학 아니면 대학도 아니란 말입니까. 그게 가당한 얘기입니까”라며 정색하고 반문을 했다고 한다. 그제서야 A 의원은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아, 당신에게는 그렇게 들렸어요? 잘못했네”라며 한 발짝 물러나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박 대표를 대하는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의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들은 박 대표의 표심을 자극하는 대중성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대권주자로서는 불안해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직 의원은 “박 대표의 정치력은 이회창 전 총재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된다고 본다”고 말할 정도다. 대여 전술이나 당을 이끄는 리더십이 예전 이 전 총재의 카리스마를 넘어서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초선들도 중진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 대표의 리더십과 대권 주자로서의 신뢰도에 의문을 표시하는 초선 의원들의 생각을 들어보자.
한 의원은 “박 대표는 계보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는 지론 때문에 그를 돕고자 하는 의원들의 독대 요구가 있어도 웬만해선 쉽게 만나주질 않는다. 퇴근하면 집 전화를 절대 받지 않아 의원들도 쉽게 전화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이런 상황이라 일부 의원들은 과연 박 대표가 대권에 마음이 있는 것인지 의아해하고, 마음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의원들을 관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사학법 재개정 파문 때 지도부의 어정쩡한 대처도 당 내부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박 대표가 몸을 던져 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그와 같이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박 대표가 당내에 잠재되어 있는 그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해도 ‘불량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언제는 계보정치를 한다고 욕하다가 이제는 계보도 없이 무슨 정치를 하느냐고 말한다. 과도기에 정치를 하는 사람은 욕을 먹는 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당의 자율성을 살리는 정치를 계속하겠다”며 당당하게 항변한다.
![]() |
||
▲ 박 대표에게 김덕룡 의원 낙마는 큰 손실이다. 지난달 14일 악수하는 박 대표와 김 의원. | ||
일각에선 7월 전당대회 때 박 대표 쪽에 설 것을 자처했던 김 의원의 낙마로 앞으로 박 대표가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당직자는 “느슨한 연대를 맺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소장파가 서울시장, 경기지사와 당권을 싹쓸이할 경우 박 대표의 위상이 심각하게 흔들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박 대표는 최근 들어 당내 의원들과의 만남도 강화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자신의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줄 중진급 이상 의원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포스트 김덕룡’ 역할을 할 인물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표는 자신을 도울 중진들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 대표는 지난 4월 한나라당의 고위 인사였던 B 씨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박 대표는 B 씨와 무려 3시간 동안 독대를 하며 당 운영 전반에 관해 조언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박 대표는 B 씨에게 자신을 도와달라는 확실한 ‘사인’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대표가 B 씨를 다시 중용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를 신뢰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가 박 대표의 측근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명박 서울시장에게로 훌쩍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박 대표가 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 곁에서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하면서 권력의 속성을 잘 알게 됐기 때문에 선뜻 사람을 못 믿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박 대표는 박 대통령이 사망한 뒤 그를 따르던 수많은 부하들이 배신했던 것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고 들었다. 절대 쉽게 사람들을 믿지 않는 것이 박 대표의 장점이자 한계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 대표의 또 다른 고민은 7월 전당대회에서의 당권후보 선출과 그에 따른 소장파와의 갈등을 들 수 있다. 7월 전당대회를 통해 구성될 지도체제는 대권경쟁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비주류 측에서는 이재오 원내대표가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반면 박 대표 측에서는 김덕룡 의원의 ‘낙마’로 마땅한 대타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박희태 국회부의장이 가장 유력하지만 비교적 신선한 이미지의 이 원내대표에 맞설 수 있을지 의구심을 나타내는 의견이 많다. 최근에는 맹형규 전 의원이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본인이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후보 내세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전언이다.
여기에 소장파와의 갈등도 여전히 잠복 상태다. 박 대표는 올해 초 원희룡 의원과 ‘이념병 논쟁’을 벌인 뒤부터 소장파와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한 소장파 의원은 “박 대표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이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소장파와의 연대도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박 대표가 그럴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각을 세울 것 같다. 당장 7월 전당대회에서 비주류와 연대하든지 아니면 독자적인 영입 후보를 내세워 박 대표와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비판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근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히는 시점에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불같이 들고 일어나자”라는 파격적인 언어를 구사하는가 하면 바지 입는 횟수도 늘리는 등 ‘공주’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박 대표는 여전히 대권 구도에서 상수로 통한다. 평소 박 대표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의원들도 선거 기간 동안 그를 한 번만 수행해보면 마음이 바뀐다고 한다. 박 대표의 압도적인 대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박 대표가 의원들을 좀 더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과 확실한 비전을 제시한다면 여전히 대권 구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그동안 당 대표라는 한계 때문에 오해를 살 만한 행보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달 그가 대표의 직위를 벗는 날, 국민들은 아마도 확 달라진 ‘박근혜 브랜드’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