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당내 파워게임 중 ‘통합 논의’ 활용
지난 11일 선대위원장직을 사퇴한 김한길 국민의당 의원(왼쪽)과 안철수 대표. 작은 사진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안 대표 측은 김 위원장이 통합 제안으로 판 흔들기에 나선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와 물밑에서 접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김 위원장과의 결별도 고려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들린다.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한 모습이지만 통합 문제가 향후 총선 정국에서 중대변수가 될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종인 대표의 제안은 진정성과 절박함을 담은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김한길 위원장은 3월 8일 기자회견을 자청, 김 대표가 제안한 통합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내놨다. 국민의당 내부에서 김 대표와의 막후 접촉설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당시 정치권에선 김 위원장과 김 대표가 두 당의 통합을 위해 은밀히 만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안 대표 측은 김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오히려 김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개헌 저지선을 위한 야권의 뜨거운 토론이 있을 수 있다”고 한 것을 두고 통합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기자회견 직후 안 대표 진영 일각에선 김 위원장을 축출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는 김 위원장에 대한 안 대표 측의 뿌리 깊은 불신과 무관하지 않다. 안 대표 측근은 “솔직히 말하면 안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 2014년 민주당과의 통합 이후 김 위원장에게 번번이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에 국민의당으로 합류할 때 김 위원장에 대한 거부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3월 10일 안 의원을 따르는 국민의당 몇몇 당원들은 김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김 위원장을 ‘김종인 대표 이중대’라고 비난하며 “국민의당 창당 정신과 당론에 반하는 해당행위를 한 김 위원장의 선대위 체제로는 이번 선거를 치를 수 없다. 사퇴를 거부할 경우 일반 당원들은 강력한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안 대표 측은 더민주와의 통합을 반대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총선이 다가올수록 김 위원장이 당 주도권을 쥘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국민의당이 결국 김 대표와의 협상 테이블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지금 통합론자들이 내걸고 있는 새누리당 개헌 저지선이라는 구호가 야권 유권자들에게 먹히고 있는 형국이다. 안 대표가 과연 꿋꿋이 마이웨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더민주를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합류한 후에도 김 대표 측과 긴밀한 접촉을 가져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과 가까운 국민의당 의원은 “두 당의 통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큰 틀에서 야권의 총선 전략 등을 논의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는 게 맞다”면서도 “안 의원 쪽에서 보면 오해할 수 있는 여지는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더민주 중진 의원 역시 비슷한 말을 들려줬다.
“김 대표가 김 위원장과 가끔 의견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통합 제안 역시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 김 위원장과의 물밑 조율을 거쳤다고 들었다. 안 대표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어차피 연대나 통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돼 있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이 김 대표와의 핫라인을 개통해 놓은 것 아니겠느냐.”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김 대표와 김 위원장이 ‘위장이혼’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비록 당적은 다르지만 통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둘이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탈당할 때 ‘안철수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전략’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받아들여졌다. 이에 대해 김 대표와 김 위원장은 사실무근이라며 강력히 부인한 바 있다. 다만, 김 대표는 김 위원장 복당에 대해 3월 9일 “온다면 받아야지”라며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다.
물론 통합을 부르짖는 김 대표와 김 위원장의 이해득실은 확연히 다르다. 우선 김 대표는 친노계와의 파워게임을 끌고 갈 동력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당내 지지 기반이 없는 김 대표로선 공천 과정에서 주류이자 다수인 친노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비노계 지원사격이 절실하다. 이는 김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총선 승리를 위한 야권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외쳤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김 위원장 역시 현재 국민의당 내부 입지가 그리 탄탄하지는 못하다는 평이다. 안 대표와의 힘겨루기에서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였던 까닭에서다. 이런 가운데 통합 논의는 ‘야권 전략가’로 통하는 김 위원장 역할을 부각시킬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앞서의 김한길계 의원은 “김 위원장은 국민의당만으론 총선과 대선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식으로든 정계개편이 필요한데 김 위원장은 그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 통합은 그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더민주와 국민의당 통합 건은 야권 주요 계파 및 차기 주자들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사안이다. ‘강철수’로 변신하긴 했지만 아직은 미숙하다는 평이 우세한 안 대표를 향해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안 대표는 친노 중진들이나 김한길 위원장 같은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들과 겨뤄야 한다. 통합을 놓고 어떤 역량을 보여줄지가 그의 대권 행보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