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번호만 바꿔 달고 또 뛴다고요?
▲ 지난 11월21일 사퇴한 기술위원 8명 중 4명은 축구협회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올랐다. 사진은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 조중연 부회장, 이회택 전 기술위원장(왼쪽부터). | ||
이회택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비롯한 기술위원 8명은 지난 11월21일 전원 사퇴를 발표했다. 본프레레 감독 사퇴 이후 퇴진 압력을 받았지만 적절한 시기를 택하겠다는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술위원회의 실세들은 살아남은 모습이다.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축구협회 부회장, 강신우 기술부위원장은 기술국장직을 그대로 유지했다. 또 하재훈 김남표 위원도 기술국 상근직으로 근무를 계속한다. 실질적으로 네 명의 기술위원만 물러난 셈이다.
모 프로구단 관계자는 “본프레레 감독 경질 당시 기술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책임을 물었던 것인데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기술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이번에도 살아남았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 이후 이란, 스웨덴,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을 치르며 한국축구에 대한 인기가 다시 회복되자 슬그머니 넘어가려는 태도라는 비난이다.
축구협회의 ‘내식구 감싸기’는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던 조중연 부회장이 여전히 축구협회 부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축구협회는 이 문제가 알려지자 홈페이지(www.kfa.or.kr)의 임원 명단에 제외시켰던 조 부회장의 이름을 슬그머니 끼어 넣는 등 팬들을 우롱하고 있다. 축구협회는 10월 말 조 부회장이 사의를 표명했다며 상근 부회장 후임인사를 추후 발표하겠다고 통지했었다. 하지만 조 부회장은 정몽준 회장의 조언자 자격이란 편법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민단체들과 축구팬들은 축구협회의 ‘눈 가리고 아웅’식의 편법에 비난의 날을 세우고 있지만 축구협회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축구계의 원로 A씨는 “조 부회장이 정말 축구협회와 정 회장을 생각한다면 장렬히 전사할 수 없는지 묻고 싶다”며 “축구협회의 속 들여다보이는 눈속임에 할 말을 잊었다”고 덧붙였다.
축구협회의 구설수 자초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북한산 산행에서 절정에 달했다. 축구협회는 11월23일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과 아드보카트 대표팀 감독이 24일 북한산을 함께 오른다고 발표했다.
산행은 평창동을 출발해 대성문, 대남문을 거쳐 구기동으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북한산관리공단은 “이 코스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휴식 시간에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등 지체하는 바람에 6시가 다돼서야 내려올 수 있었다. 특히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이날 일몰시간은 오후 5시16분으로 처음부터 이 코스는 오후3시에 오르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초겨울 날씨와 어두운 시야를 생각한다면 오후 1시쯤 산행을 했어야 한다는 푸념이 나올 만도 했다.
축구협회가 무리를 해서라도 이날 산행을 강행한 데에는 축구협회와 반목관계에 있는 한국축구연구소(이사장 허승표)의 세미나 발표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게 기자들의 중론이다. 한국축구연구소는 출범 1주년을 기념해 ‘학원축구 정상화ㆍ프로축구 활성화 연구 발표회’를 24일 오후 2시 세종대에서 개최한다고 세미나에 1주일 앞선 11월17일 이미 공지했다. 축구협회측은 “산행도 미리 예정돼 있었던 스케줄”이라고 항변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의 이날 스케줄을 보면 축구협회가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J리거들을 보기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24일 돌아온 아드보카트 감독은 공항에서 북한산으로 직행해야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24일 오전 일본 나리타 공항을 출발한 대한한공 706편으로 낮 12시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북한산으로 향했다. 아무리 가까운 일본이라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업무를 위해 외국에 다녀온 감독을 쉴 시간도 없이 강행군을 시킬 필요가 과연 무엇이었냐는 의문이 안 들 수가 없다.
김덕기 축구연구소 사무총장은 “정 회장 퇴진 집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세미나를 하는데 이런 식으로 훼방을 놓을 수 있냐”며 “언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얄팍한 행동”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