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의 하산 “잘나갈 때 떠나야죠”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선수생활의 마지막 레이스인 동계체전 출전을 위해 보광휘닉스파크에 머물던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3년 전의 ‘취중토크’를 떠올리며) 왠지 앞이 허전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 종목보다 스키 선수들은 나이를 금방 먹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4월까지 눈 속에 있다가 다시 눈 찾아 외국을 떠돌거든요. 한국에 들어올 때가 10월쯤 돼요. 그럼 바로 시즌이 시작되니까 1년이 후다닥 지나가 버리죠. 그런 생활을 22년 동안 해왔으니까 제가 다른 사람보다 ‘착각 나이’는 훨씬 많을지도 몰라요.”
은퇴 소감을 ‘시원 섭섭’으로 정리했다. 기량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 후배들의 존경을 받을 때, 덜 초라해 보일 때 은퇴하기로 결심했고 그 시기가 지금이라고 한다.
허승욱은 처음에는 스케이트 선수였다.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김윤만과 함께 운동했다. 스케이트를 버리고 스키를 선택한 ‘과거’에 대해 후회는 없냐고 물었다.
“제가 만약 쇼트트랙을 했다면 너무 운동이 힘들어서 이전에 그만뒀을 거예요. 그러나 세계의 벽을 넘기는 스키보다 수월했겠죠. 워낙 한국이 쇼트트랙만큼은 끝내주니까. 스키는 한계가 있어요. 얼음판이 아닌 눈이 필요한 종목이라 자연환경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거든요.”
우리나라가 일본 정도의 자연환경만 갖고 있었다면, 또 제주도 한라산같이 크고 높은 산이 강원도에만 있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선수가 탄생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허승욱은 여건 탓만 하고 있기엔 너무 시간이 아까워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올 겨울 지산리조트에서 스키 대회전 연습을 하는 허승욱. | ||
만약 집안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었다면 스키 선수 허승욱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승욱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라이벌이 없었다. 어느 대회를 참가해도 1등은 떼논 당상이었다.
“한국에서 스키 타다가 잘 되면 외국 나가고, 또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한국에 들어와 1등하고. 이런 생활을 반복했어요. 한 번은 89년도인가?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외국 시합에서 제가 1등을 차지했어요. 그랬더니 우리나라 언론에서 난리가 났더라구요. 스키 선수가 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1등을 먹었다는 거였죠. 당시 김포공항 귀국장에 기자들이 새까맣게 모여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 다음부턴 국제대회 출전에 주력했죠. 그래야 제 존재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요.”
밤새도록 술 마시고 다음날 숙취가 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스키를 탄 적이 있었다. ‘허승욱은 거꾸로 타도 1등’이라는 스키인들의 농담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라이벌도 없었고 허승욱을 긴장시킬 만한 선수도 존재하지 않았다. 외국에 나가야 비로소 자신의 벽과 현실을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고 1초도 아니고 0.023초 줄이려면 1년 넘게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너무 잘나가다보니 주위의 시기와 질투도 많았어요. 그래도 그 시선들 속에서도 절 좋아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수 생활이 가능했어요. 아쉬움은 많지만 미련은 없어요. 워낙 많이 누리고 살았기 때문이죠.”
허승욱은 지산리조트 ‘허승욱 레이싱 스쿨’에서 꿈나무를 육성 중이다. 은퇴 후의 목표가 있다면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 중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