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리그 허약한 대표팀 ‘악순환’
▲ 2002년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공을 다투는 발락(오른쪽)과 차두리. 최근 독일 축구는 “재미 없다”는 평과 함께 인기도 유럽 5대리그에서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졌다. | ||
현재 전문가들의 평가대로라면 세계 제1의 리그는 스페인, 그 뒤는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이고, 독일 분데스리가는 프랑스보다 못한 5위 서열로 뒤처져 있다. 이는 축구 마니아나 일반 시청자들의 조사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나타낸다. 축구 마니아들은 잉글랜드를 스페인보다 더 선호한다는 차이만 보일 뿐 독일이 소위 유럽 5대 리그 중 최하위권이라는 점에 대해선 별로 이의가 없다. 왜 그럴까? 차범근이 97골을 넣고 다닐 때만 해도 세계 최강 리그였는데 말이다.
요사이 독일축구가 재미없다는 것은 최근 프리미어리그의 속도전이 대세를 결정지으면서 상대적으로 느리고 테크닉이 빈약한 분데스리가의 인기가 더더욱 하락 추세에 있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프리미어리그의 인기는 21세기 들어 한때 그들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리그’라 평가했던 이탈리아 세리에 A를 가볍게 능가했다. 그러나 분데스리가의 쇠락이 반드시 잉글랜드의 부활과 성공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진대, 우리는 이를 대략 아래와 같은 증후군으로부터 분데스리가의 현주소를 진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독일축구는 전 유럽에서 가장 경직적인 임금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즉 워낙 세금이 많다 보니 우수한 외국선수들의 영입에 다른 리그보다 경쟁력이 처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클럽의 상업화를 억제하는 정부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독일의 클럽들은 TV 중계 소득에만 크게 의존해 왔는데, 2002년에 분데스리가 중계권을 갖고 있던 키르흐(Kirch) 그룹이 파산하자 걷잡을 수 없는 재정위기가 휘몰아쳤다. 정부가 안전판을 마련코자 부산을 떨고 있지만 법적으로 매우 구속적인 클럽의 경영구조상 완벽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둘째, 남미의 톱스타들이 독일행을 별로 원하지 않자 대부분 구 동구권의 B급 선수들을 대량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분데스리가의 질적 저하는 물론, 값싼 외국선수들의 영입으로 인해 독일 토박이 영 스타들을 발굴하고 훈련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저 유명한 아약스 시스템이나 베컴, 긱스, 스콜스, 니키 버트, 네빌 형제 등 맨체스터 유소년 클럽 동기생들이 맨유의 주축으로 성장해 나가는 그러한 지속가능한 발전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독일 유소년 시스템이 네덜란드나 잉글랜드, 프랑스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다는 것은 베켄바우어와 포그츠 감독이 이미 10여 년 전에 실토한 바 있었으나 그 이후 별다른 개선책이 동원된 바는 없었다. 독일 국내산 선수들의 고갈은 곧바로 대표팀의 약세로 이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2002 월드컵 당시 결승에 오른 독일이 보유한 월드 클래스는 미드필더 발락과 골키퍼 칸, 오직 두 명에 불과했다.
셋째, 분데스리가는 오로지 바이에른 뮌헨 독식 구조에 의거하고 있어 4~5개의 톱 클럽들이 각축을 벌이면서 리그의 수준을 높여온 여타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2위 팀은 기껏해야 90년대 하반기와 2001~2002 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정도. 이 팀 역시 96~97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래 하락세를 걷고 있다. 가만히 보면 바이에른은 좀 난다 싶으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그 선수를 바로 자기 팀으로 영입해 버리는 자본의 횡포로 일관해 왔다. 그 정도가 지나치다 보니 여타 클럽들은 자국 우수 선수를 확보할 찬스를 상실케 되고 다시 싼 값에 외국 선수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한때 세리에 A의 7대 강호(지금은 밀란, 유벤투스, 인터 3파전), 현 프리미어리그의 맨유, 아스날, 첼시, 리버풀의 무한 경쟁구도, 또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데포르티보의 각축과 비교해 본다면 분데스리가는 그야말로 평온한 농촌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간 5대 메이저리그 중 가장 약세에 놓여 있었던 전국(戰國)시대의 프랑스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상과 같은 대표적인 문제점 외에도 독일 축구의 동맥경화 현상에 관한 우려와 근심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최근의 화두는 이번 월드컵으로 과연 이렇게 취약한 독일축구가 다시 부활할 것인가다. 94, 98년 월드컵 공히 8강에 머문 시점에서 베켄바우어는 ‘이제 독일 국민들은 우리가 메이저 대회에서 항상 결승에 오를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되며 유소년축구나 클럽축구의 병환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부터 먼저 고려해야한다’는 뼈아픈 고백을 제시했다.
유럽의 경우 국가대표팀의 힘은 바로 건실한 국내 리그의 경쟁구도에서 비롯된다. 독일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신통찮은 성적을 내는 것은 분데스리가의 취약한 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독일의 경우 협회나 클럽에 회비를 내면서까지 축구를 사랑하는 팬이 5백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한때 네덜란드와 함께 전 유럽에서 가장 안정된 전력을 보유했으며, 브라질과 함께 세계 축구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졌던 독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진실로 아이러니컬하다. 클린스만 감독은 “2002년 단 한 번도 본선에서 이겨 본 적이 없었고 또 그것도 엄청나게 열악한 클럽축구의 환경 속에서 4강을 일궈낸 한국을 이젠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될 운명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 지적이 결코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전 축구대표팀 언론 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