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인의 도움으로 전두환과도 만났다
▲ 삼성과 스폰서 계약을 맺고 안정된 플레이를 펼쳤던 박세리. 이 계약이 성사된 뒤에는 이희상 한국·동아제분 회장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 ||
한국·동아제분의 이희상 회장(60). 밀가루 제조 회사 회장인 그 형님은 ‘와인 전도사’로도 유명하신 분이다. 오늘의 세리는 그 형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리를 골프 선수로 만든 사람이 나라면 세리가 세계 무대에 우뚝 설 수 있게 한 사람은 이 회장이다.
굳이 내가 얘길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난 출신 배경이 좋지 못하다. 사람들은 날 가리켜 ‘주먹’이라고도 하고 ‘조폭’이라고도 말한다. 세리한테 골프를 시키기 전까진 그 세계에 몸담고 있었고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도 그 단어에서 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난 기죽지 않았다. 어디서나 당당히 내 과거를 얘기했고 세리한테도 아빠가 지내온 세월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돈 문제 빼놓고는 한 순간도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 났거나 ‘그릇’이 작다는 생각을 해보질 않았다.
▲ 아버지 박준철씨와 함께. 스포츠투데이 | ||
그런 가운데 이 회장을 알게 됐다. 이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분께 한 말을 잊지 못한다.
“전 지금까지 좋은 배경에서 살지 못했습니다. 밥도 5분이면 먹는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주먹 하나로 자존심 지키며 살아왔는데 자식 키우면서 그 한계를 느꼈습니다. 전 경기고등학교나 서울대를 나온 사람도 아니고 빵빵한 집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리가 세계 무대에 서려면 저 혼자선 감당이 안됩니다. 형님! 도와주십시오! 만약 절 도와주신다면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국가에 반드시 이바지할 겁니다.”
이 회장은 내 진심을 꿰뚫어 봤다. 내가 진실로 자식을 위해 무릎 꿇을 수 있다는 희생 정신을 높이 샀다. 그 날로 나와 이 회장은 의형제를 맺었다. 이 회장은 각 그룹 회장들이 모인 자리에 나를 데리고 나가선 ‘박 교수’라 호칭하며 박세리의 존재를, 내 존재를 부각시키고 어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다.
지금은 박세리가 유명 인사지만 미국 진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세리는 단지 골프 유망주였기 때문에 다른 회장들 입장에선 내 존재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내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유쾌한 자리를 유도했고 회장들과 ‘형님’ ‘동생’ 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만들어냈다.
▲ 이희상 회장 | ||
삼성과 인연을 맺은 계기도 이 회장 덕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혼자서 삼성과 스폰서 협상을 맺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협상할 때 이 회장이 동석해 줬고 추후 과정도 이 회장의 지시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삼성측에선 이 회장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능성을 보고 큰 투자를 하는 것이기에 가급적 ‘위험한 도박’은 하지 않을 법했지만 내 베팅 수준과 이 회장의 측면 압박을 느끼며 세리한테 절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거칠고 투박하게만 살아온 나를 보석처럼 갈고 다듬어 줬던 이 회장과는 지금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세리 인생에 한 획을 그은 분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그 은혜는 잊지 않을 것이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 바로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이 회장은 돈과 마음을 다 움직일 줄 아는 지혜를 가졌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하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그 분이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