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마의 13’ 깰 자 누구 없소?
▲ 2002 월드컵 당시 브라질과 터키의 경기에서 호나우두가 터키의 수비수를 제치는 모습. 호나우두는 현재 열두 골을 기록해 앞으로 세 골만 더 넣으면 세계기록을 수립한다. | ||
역대 최다 골 기록은 독일의 게르트 뮬러가 70년(10골), 74년(4골) 두 번의 대회에서 올린 총 14골의 대위업이다. 그 다음이 13골로 58년 스웨덴 대회에서 두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한 프랑스의 쥐스트 퐁테뉴. 퐁테뉴는 단 한 대회에서 13골을 뽑은지라 아마도 이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이다. 요즘과 같이 수비가 견고해진 상황에서는 결승까지 7경기를 다 치른다 하더라도 13골 이상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12골의 기록 보유자는 2명. 브라질의 펠레(4번의 월드컵 참가)와 호나우두(2번 참가)다. 호나우두가 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 단 두 골만 집어넣어도 지금까지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거기에 한 골만 더 보탠다면 세계 기록이 수립된다. 호나우두의 기량으로 보아 크게 어렵지 않겠지만 최근엔 한 대회에 3골 이상을 득점한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득점 기계 필립보 인자기는 아직 월드컵에서 단 한 골도 득점하지 못했으며, 아르헨티나의 크레스포도 2번의 대회 참가 중 겨우 한 골, 전설적인 마르코 반 바스텐도 단 한 번의 월드컵에만 출전, 4경기를 뛰었지만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따라서 현재 12골을 넣은 호나우두가 아니면 신기록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호나우두가 대회당 평균 6골을 득점했다고 해서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브라질은 지난 두 대회 모두 결승에 올랐기 때문에 호나우두의 득점 행진이 계속될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7경기를 소화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호나우두가 지난 대회에 8골을 넣은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근래 기형적인 수비축구의 강화로 아무리 세계적인 공격수라 하더라도 결승에 오르기까지(또는 3, 4위전 포함) 7경기에서 매번 골을 넣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 매 경기마다 득점한 경우는 70년 브라질의 쟈이르지뉴가 유일한 예. 결승 포함 6경기에 7골을 넣었다. 이후 74년 폴란드 그르제골츠 라토의 7골, 78년부터 98년까지 무려 6개 대회 24년 동안 득점왕은 오로지 6골이었다. 그 마의 6골 기록이 지난 대회 호나우두에 의해 깨진 것이다.
골을 많이 넣는다고 반드시 그에 걸맞은 보상이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94년 미국 월드컵 카메룬과의 대전에서 혼자 5골을 퍼부었던 러시아의 살렌코는 예상과 달리 스페인 세비야에서 잠시 뛰다 이내 세계 축구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같은 대회 공동 득점왕에 올랐던 불가리아의 스토이치코프는 차기 프랑스 대회에선 단 한 골도 못 넣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으며, 90년 득점왕에 빛났던 이탈리아의 영웅 살바토레 스킬라치 역시 그 이후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았다.
우리가 어릴 때, 축구 경기에서의 영웅은 너무나 당연히 골을 넣는 선수였다.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 최용수로 이어지는 스트라이커의 계보가 한국 축구팬들의 최대 관심사였음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보다 축구의 열기가 덜했으나 본격적인 프로리그의 발전에 앞섰던 일본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공수를 연결하면서 노련한 패싱으로 적진을 유린하는 미드필더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리고는 공격수 나카야마가 아닌 미드필더 나카타 히데토시를 일본 최고의 스타로 키워냈다.
확실히 80년대부터 90년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계 축구의 흐름을 리드해 오는 것은 환상적인 경기 운영 능력을 과시하는 미드필더이지 골 앞에서 공만 기다리는 센터포워드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보자. 관중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놀라운 드리블과 경기를 읽는 힘, 거기다 간간이 터지는 골 감각을 가진 균형 잡힌 선수다.
멀리는 마라도나와 플라티니, 훌리트, 가까이는 지단, 피구, 네드베드와 카카.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득점력이 없으면 주목받기가 어렵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피구, 코스타와 함께 포르투갈 미드필더 3인방 중 하나였던 파올루 소사. 유벤투스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연달아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견인하였으나 지금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 극단적인 것은 수비수의 경우다. 1976년 수비수 베켄바우어가 유럽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한 이래 지금까지 수비수가 이 상을 받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베켄바우어는 예외였다. 그는 수비수이면서도 골을 넣을 줄 알았다. 3개 대회 5골 득점.
축구를 보다 전문적으로 즐기기 시작하게 되면 골 자체보다는 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덴마크의 미하엘 라우드럽은 ‘쉽게 넣는 골보다는 아름다운 크로스를 날리는 것이 더 재미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거기다 그 골을 저지하기 위한 수비수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즐기는 묘한 취미까지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갈수록 체계화되어 가는 현대축구가 시스템이라는 기계에 의해 진실로 완벽에 가깝게 조종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모든 경기는 0 대 0으로 끝나고 관중은 경기장을 찾지 않게 된다. 결국에는 축구의 종언이다. 그런 사태가 나오기 전에 이번 대회에서 다시 호쾌한 득점왕이 나오기를 기대하자. 물론 14골의 기록도 갈아 치우면서 말이다.
2002월드컵대표팀 미디어 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