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마조마 맨유 한 시즌 돌이켜보니 휴~
▲ 지난해 12월 20일 잉글랜드 리그컵 8강전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진출 후 첫골을 기록한 박지성이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부모가 직접 쓰는 <별들의 탄생 신화> 제2탄은 박지성 편이다. 외동 아들을 세계적인 축구 선수로 성장시키기까지 음지와 양지에서 울고 웃었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버지 박성종 씨의 입을 통해 그대로 재연된다. 아들의 맨유 입단 후 매스컴 노출을 최대한 자제했던 박성종 씨는 <일요신문>을 통해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것도 축구선수 아버지로서 경험하고 절감한 다양한 스토리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지성이가 앙골라와의 평가전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 지금, 맨체스터에는 나와 아내만 달랑 남아서 집을 지키고 있다. 갑자기 지성이가 없으니까 두 사람의 할 일이 사라져 버려 마치 ‘휴가 받은’ 기분으로 나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지난 27일(한국시간) 칼링컵 대회에서 맨유가 우승을 차지한 뒤 윔스로우(박지성이 사는 동네) 부근에 사는 선수와 가족들이 모여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처음엔 지성이만 보내려고 했는데 부모도 참석하라고 해서 내심 기대를 하고 찾아갔다가 생각지도 않게 루이 사하, 리오 퍼디난드, 웨스 브라운, 키에른 리차드슨 등과 함께 어울리며 통역을 통해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맨유 선수들 속에 있는 지성이를 보면서 새삼 ‘살다보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들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고 대견해 보인다.
▲ 지난해 9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만난 박지성 어머니 장명자 씨와 아버지 박성종 씨. | ||
돌이켜 보면 맨유에서 생활한 지 3~4년은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 그런데 아직도 채 한 시즌을 보내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만큼 지성이가 맨유에 합류한 이후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사실 이번 칼링컵 우승은 지성이와 가족들한테 큰 기쁨을 주었다. 만약 뉴 플레이어가 왔는데 팀 성적도 안 좋고 분위기는 엉망이고 감독은 계속 욕 먹는 상태라면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성이가 뛰는 게임을 볼 때마다 단 1분을 뛰어도 내 가슴은 졸이다 못해 터질 지경이다. 팀 성적이 좋지 않으면 선수 자질을 놓고 시시비비가 붙을까 조마조마했던 것도 사실이다.
맨유 생활도 쉬운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맨유에 오기까지 과정이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다.
처음 맨유에서 ‘러브콜’이 왔을 때 지성이는 많은 고민에 휩싸였다. 가장 먼저 나한테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조언을 구해 왔는데 난 무조건 ‘가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전 일본에 진출할 때, 그리고 PSV 에인트호번에 갈 때만 해도 지성이의 의견을 존중했고 따라줬다. 그러나 이번엔 나와 아내가 먼저 밀어붙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맨유에 갔다가 별다른 활약도 못 하고 쫓겨난다면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게 뻔했다. 그래도 보내고 싶었다. 처음부터 주전은 언감생심이라고 생각했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다 보면 프리미어리그의 수준에 걸맞은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다행히 지성이는 맨유 유니폼을 입고 뛴 첫 경기에서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것도 선발로 출전한 경기에서 말이다. 처음엔 지성이가 선발로 출장한다는 소식을 듣고 믿질 못했다. 교체 출전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상태인데 난데없이 선발이라니. 그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경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성이가 한 말이 있다. “아빠, 영국 축구 진짜 빠른 것 같아. 준비 많이 해야겠어요.” 그때 난 지성이한테 이렇게 주문했다. “절대 잘 하려고 오버하지 마라. 그냥 네가 갖고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해. 그래야 적응이 되니까. 알았지?”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