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파’ 명함만으론 2% 부족
▲ 안정환(왼쪽), 차두리 | ||
독일월드컵 승선에 ‘빨간불’ 혹은 ‘노란불’이 켜진 걸로 보이는 차두리, 안정환과 관련된 다양한 ‘소문’들을 확인해 본다.
축구대표팀의 독일행 승선에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달 24일 전훈을 마친 대표팀과 함께 귀국해 인천공항에서 가진 인터뷰 때 이들을 소집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두 선수 모두 소속팀 경기에 제대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정환은 새 팀으로 옮긴 지 얼마 안돼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어 소속팀의 훈련에 좀 더 참가해서 적응하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했다.”
‘안정환을 부르지 않은 이유가 대표팀에선 이미 검증이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라는 추가 질문이 있었다. 그러나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지적처럼 소속팀에서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은 유럽파들의 ‘독일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파라는 레테르(letter)는 독일월드컵 출전권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6주간의 전훈을 통해 국내파들의 기량과 투지가 확인되면서 일부 유럽파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국내파와 J리거들에 대한 점검은 코칭스태프에게 맡긴 채 유럽파 체크를 위해 지난 5일 출국했다. 경계에 선 유럽파들로서는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시간을 맞고 있다.
가장 궁지에 몰린 선수는 차두리. 거스 히딩크 감독에 의해 2002한일월드컵 멤버로 깜짝 발탁됐던 차두리는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물론 그의 분데스리가 진출엔 아버지 ‘차붐’ 차범근 감독(수원 삼성)의 후광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차두리는 올해로 분데스리가에서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리그에서는 물론 팀 내에서도 결코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다. 올 시즌 기록은 19경기(선발 8게임)에 나와 2골 2어시스트. 골 맛을 본 것은 지난해 10월 22일에 있었던 경기가 마지막이었다.
최근 들어 교체 투입되는 시간이 조금씩 앞당겨지고는 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의 신뢰를 얻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해 12월 독일월드컵 조 추첨식에 참석했다가 차두리가 뛰는 경기를 보고 돌아왔다. 이때 차두리는 아닌 수비수로 플레이를 했다. 그 때문에 대표팀에서 차두리를 수비수로 기용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러나 아드보카트 감독의 대답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차두리는 공격 성향의 선수다. 수비수로서는 떨어진다. 그를 수비수로 쓴다면 수비적으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대표팀이 전훈에서 포백(4-back)을 가동하면서 차두리의 수비수 변신 가능성은 다시 한번 제기됐다. 그러나 문제는 차두리의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 포함 가능성 자체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차두리가 앙골라전에 소집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아드보카트 감독의 진짜 의중이 어떤지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차두리가 감독의 관심 밖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친 차범근 감독은 아들의 대표팀 합류 가능성에 대해 “전적으로 아드보카트 감독이 판단할 문제”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차 감독은 지난 2일 K리그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했다. 당연히 차두리와 관련된 질문이 있었다.
“포지션을 떠나서 선수(차두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다 나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 뛸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표팀 감독은 그 선수가 전술에 필요한가를 고려할 것이고 가장 좋은 팀을 구성해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것이 대표팀 감독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결정에 모두가 따라야 한다.”
차두리는 지난해 혼담이 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슨 이유였는지 혼담 자체가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차 감독은 “두리가 금방 결혼할 것 같았는데 생각이 바뀐 것 같다”며 “결혼은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되도록 빨리 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이었다.
지난해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를 떠나 프랑스리그 FC 메스를 거쳐 독일 분데스리가 뒤스부르크에 입단한 안정환의 입지 역시 공고하지 못하다. 뒤스부르크 입단 땐 현지 언론이 ‘안정환은 아시아의 베컴’이라며 소동을 피웠지만 정작 안정환은 2부리그 강등 위기에 있는 팀의 교체 멤버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뒤스부르크 이적 후 5경기(1게임 선발)에 나와 아직 골을 넣지 못했다.
뒤스부르크로 옮기기 전까지 몸담았던 메스에서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정환은 메스에선 15경기(9게임 선발)에 출장해 2골을 기록했을 뿐이다. 어느새 만 서른 살로 접어든 나이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아무리 유럽에서 뛰는 게 낫다고 하지만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닌데 메스를 거쳐 뒤스부르크까지 가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갖가지 억측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은 안정환과 차두리의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 포함 여부에 대해서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한 고위 인사는 “대표팀 선수 선발권은 어디까지나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비록 두 선수가 소속팀에서 뛰는 시간이 적어 경기력이 떨어질 수 있는 우려가 있지만 2002월드컵 때의 경험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신호였던 안정환의 독일행 신호등은 황색등으로, 황색등이었던 차두리의 신호등은 적색등으로 바뀌었다는 점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독일월드컵 최종엔트리(23명)를 결정해야 하는 시한은 오는 5월 15일이다.
조상운 국민일보 체육부 기자 s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