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골보다 더 잔인한 ‘역적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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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 16일 벌어진 멕시코전. 이동국이 산체스 골키퍼의 실수를 골로 연결시키고 있다. MBC-TV 캡처 | ||
축구에서의 한 번 실수는 놀랍게도 승부를 가르는 잔인한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런 실수가 나오면 관중도 선수도 허탈하지만 사실 가장 기가 막히는 것은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은 2001년 월드컵 준비 단계에서 상식에 투철하지 못한 김병지의 단독 드리블을 보고 무제한 출장 정지란 엄격한 벌칙을 부과했고 애써 얻은 스로우인을 상대방에게 가볍게 헌납하는 서덕규를 무자비하게 질타했다. 말하자면 너무나 우수한 상대방의 기량에 도리 없이 밀려 골을 먹는 것은 인정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규율 부족과 정신적 해이에서 빚어지는 터무니 없는 실수는 참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히딩크는 대 폴란드전 직전 결국 김병지를 포기하고 이운재의 손을 들어 주었다. 개인적으로 이유를 물었더니 “병지의 반사신경은 운재보다 뛰어나다. 한데 병지는 먹어서는 안 될 골을 간혹 먹는다. 운재는 먹을 것은 먹지만 당연히 막을 것은 막을 줄 알잖아?”
90년대 지단이 등장하기 전 프랑스 축구의 리더는 맨체스터의 영웅 에릭 칸토나와 요한 크라이프가 칭송해 마지않았던 다비드 지롤라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셸 플라티니 이후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이 두 스타는 단 한 번도 월드컵 무대에 나온 적이 없다. 그 원인도 물론 실수 때문이다. 가장 극단적인 사건 중 하나가 1994년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 프랑스와 불가리아의 2차전 경기에서 발생했다. 불가리아와 비기기만 해도 되는 프랑스는 후반전 지롤라가 뒤로 패스 미스한 것을 코스타디노프가 결승골로 연결, 프랑스가 가져갈 월드컵 본선 티켓을 극적으로 탈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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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딩크 전 감독 | ||
지롤라는 이 때의 불운으로 그 이후 메이저 경기에 다시는 소집되지 못했다. 98년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던 그는 오기가 작동했던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98~99 시즌, 토트넘을 리그컵 우승으로 이끌면서 그해 연도 최우수선수상 및 축구기자협회상까지 동시에 석권했었다.
감독의 실수가 우승컵을 놓치는 수도 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의 결승전. 경기 종료 직전 2 대 2 상황에서 나이지리아는 문전 앞 프리킥을 얻은 뒤 포워드 아무니케에게 연결, 아무니케는 골키퍼밖에 없는 골대에 결승골을 손쉽게 집어넣었다. 즉 아르헨티나 수비수들이 오프사이드 트랩작전으로 우르르 앞으로 몰려 나왔으나 심판은 오프사이드를 인정치 않았던 것. 3 대 2. 이 중요한 순간에 파사렐라 감독은 단 한 차례의 오심이 바로 골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했어야 했다. 그 상황에 한 골은 바로 경기 종료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기 종료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겸허한 수험생의 자세를 견지해야 된다. 거기다 지극히 상식적인 부분을 결코 놓쳐서도 안 된다는 사실은 메이저 대회에서 여러 차례의 해프닝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축구팬들은 98년 브라질과 덴마크의 월드컵 8강전에서 로베르토 까를로스가 멋진 오버헤드 킥으로 볼을 처리하려다 실축, 곧바로 브리안 라우드럽이 2 대 2 동점골을 따내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까지 덴마크는 브리안 라우드럽이 득점한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기록을 갖고 있었으나 놀란 토끼처럼 정신 차린 브라질은 뒤이어 히바우두의 송곳 같은 중거리 슛으로 덴마크를 조용히 잠재운 적이 있다. 실수를 해도 이렇게 마무리하면 ‘땡큐’일 것 같다.
2002 한일월드컵 축구대표팀 미디어 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