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 오승환, 조인성, 손민한, 이종범 (왼쪽부터) | ||
WBC 대회 동안 선수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또 다른 ‘선수’들, 대표팀 선수 가족들의 표정을 담아본다.
▶이승엽 아버지 - 미국진출 아직은 조심
일본 도쿄돔에서 치러진 예선전을 직접 보고 온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 씨는 비록 준결승에서 일본에 무릎을 꿇었지만 대표팀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는 미국전에서 이승엽의 홈런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는 기자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전화를 걸어선 “심장이 멎을 뻔해서 다행이지 진짜 심장이 멎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겠네”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승엽이 아시아 홈런왕이 됐을 때도 기뻤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느끼는 가슴 벅찬 감동은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승엽이가 잘 했다기보다는 선수들 전체가 잘 한 거죠. 다들 최선을 다했으니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고 너무 아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씨는 이승엽의 활약에 힘입어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일단은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다.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데려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졌을 때 앞으로 1년 후의 진로가 결정 나겠죠.”
▶오승환 아버지 - 미국 갈 기회 다시왔다
‘돌부처’ 오승환은 아버지를 닮은 모양이다. 심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오승환 아버지는 ‘허허’만을 연발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16일 일본전을 거론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난 거기가 잠실야구장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을 꺼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고교 시절 팔꿈치 부상으로 단국대 입학해서도 수술과 재활로 3년이란 시간을 바쳐야 했던 오승환은 팔꿈치 부상만 없었더라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서 접촉해 왔었어요. 그런데 부상 때문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죠.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대회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 주네요. 미국 진출요? 그건 승환이의 꿈입니다.”
14일 미국전에 이어 일본전까지 철벽 마무리를 선보인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감독들이 탐내고 있는 선수 중 지지표를 가장 많이 받고 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오 씨는 주위에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말을 아꼈다. 그저 “전 승환이가 해낼 줄 알았어요. 지라고 속으로 안 떨렸겠어요? 티 내지 않고 상대하느라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조인성어머니 - 이젠 장가갈 생각해야지
“그래도 기분 좋아요.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박찬호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인 포수 조인성의 어머니 김명옥 씨는 결승 진출 무산에 대한 아쉬움보다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이번 대회를 통해 노총각 아들이 장가가기를 소원했다. 그동안 연애를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해부턴가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며 도통 장가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손민한 아내 - 미국전 때 마음 비웠다
미국전 선발로 나와 호투를 선보였던 손민한의 아내 김민정 씨. 경기 끝나고 남편이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뒤에야 미국전 승리가 실감났다고 한다.
“어느 경기보다 미국과의 경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주위에선 미국전 선발에 대해 큰 부담을 가졌을 거라고 하는데 오히려 남편은 별다른 부담이 없었다고 해요. 저도 그랬어요. 져도 크게 욕할 사람이 없을 거라고 믿었던 거죠. 그런데 그 경기를 이긴 거예요. 마음 비운다는 말, 아마 이번에 실감했을 거예요.”
김 씨는 오는 6월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이종범 아내 - 일본전 보면 내내 눈물
“다른 게임은 몰라도 일본전만큼은 잘 해 주길 바랐어요. 그래야 그동안 마음 고생한 게 조금은 보상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98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했다가 부상으로 ‘야구 천재’의 진가를 보이지 못했던 이종범은 국내로 복귀하면서 수많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를 옆에서 고스란이 지켜본 아내 정정민 씨는 일본을 상대로 방망이를 휘둘러 대는 남편의 맹활약에 감동을 넘어 눈물까지 쏟아냈다.
“결혼한 지 10년 됐거든요. 그런데 야구 보면서 운 건 지난 일본전(16일)이 처음이에요. 도쿄돔에서 치른 예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가서 봤는데 그때도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특히 주니치 시절 감독이었던 호시노 감독이 야구장에 오셨더라구요. 이왕이면 호시노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더라면 더 기분 좋을 뻔했어요.”
19일 4강전에서 일본에 패하는 장면을 보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는 정 씨는 4강까지 오른 것만도 대단한 업적이라고 선수들을 추켜 세웠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