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월드컵 그리고 히딩크의 손짓
▲ 2002년 6월 14일 월드컵 포르투갈 전에서 박지성이 그림 같은 결승골을 집어넣은 후 히딩크 감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
지성이가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에게 큰 선물을 해줬다. 대형차 체어맨을 사준 것이다. 처음엔 반대를 했지만 월드컵 경기를 보러 다닐 때 좋은 차를 끌고 다니라는 지성이 말에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지성이가 일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연봉도 많이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을 늘리고 비싼 차를 사는 등의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성이 생각은 좀 달랐다. 월드컵 전후로 해서 집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올 텐데 22평 아파트는 너무 작지 않느냐는 불만이었다. 그래서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임시 거처로 근처의 조금 더 큰 평수의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성이 말을 들은 게 잘한 선택이었다. 지성이가 월드컵에서 그렇게 잘할지 누가 알았으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팬들로 인해 우리집 아파트 복도와 계단은 팬들이 적어놓은 각종 낙서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제주도에서 올라왔다는 여고생은 지성이를 보지 않고선 돌아갈 수 없다고 생떼를 부려 지성이 엄마가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 타일러서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 각 매스컴의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들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월드컵이 진행되는 한 달 동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기는 스페인전이었다. 특히 승부차기 순간은 그 어느 경기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짜릿한 희열과 감동의 도가니 속에 푹 빠져들 정도였다.
2002년 6월 10일 미국전에서 지성이가 왼발목 관절이 바깥쪽 방향으로 비틀리는 큰 부상을 당하고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관중석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멀리서 봐도 큰 부상을 당한 것같이 보였다. ‘아, 월드컵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 후들거렸다.
순간 지성이가 다친 게 부모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전이 열리는 날 아침 불교방송에서 대표팀 선수들 중 불교 신자 가족들을 대구 팔공산에 모아놓고 특별 기도회를 열었었다. 중요 경기를 앞두고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내용이 아닌 불공을 드리는 모임이라고 하니 안갈 수도 없어 참석을 하긴 했는데 막상 지성이가 다치니까 우리가 너무 호들갑을 떤 게 아닌가 싶어 영 찜찜하고 불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4일 후 포르투갈전에서 스타팅 멤버로 뛰어 다니는 지성이를 보곤 인간의 위대한 능력에 새삼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분명 큰 부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표팀 의료진의 지극 정성 덕분에 지성이는 그라운드를 질주했고 결국 월드컵에서 첫 골을 터트리는 감격시대를 연출해 냈다. 어디 지성이뿐이랴. 월드컵 직전의 부상으로 목발을 짚고 다녔던 이영표도 포르투갈전에 뛰어 다녔고 미국전서 붕대투혼을 펼쳤던 황선홍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월드컵 아니었나.
태극전사의 가족 이전에 나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월드컵을 지켜봤고 응원했으며 승리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처럼 지성이가 축구선수라는 사실에 감사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내달린 월드컵이었지만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갑자기 신분 상승이 된 지성이는 바깥 출입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예 월드컵 이후 한동안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김남일과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 숙소를 정해 놓고 밤에만 돌아다니는 생활을 택했다. 그때는 나도 지성이의 처지가 안타까워 특별히 외박을 허락했었다. 그마저 막았다면 아마도 지성이는 어디로 튀었을지도 모른다.
지성이가 이런저런 월드컵 행사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갔을 때 지성이를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이 (김)남일이라고 한다. 지성이야 한국을 뜨면 그만이지만 남일이는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총알받이’가 돼 매스컴과 팬들로부터 쫓고 쫓기는 인기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남일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한국만 뜰 수 있다면 중국이 아니라 터키라도 가고 싶다고. 그만큼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이 힘들고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지성이는 일본으로 돌아가자마자 새로운 ‘숙제’로 머리를 싸매야 했다. 바로 교토 퍼플상가와의 재계약 문제였다. 교토에선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지성이와의 재계약을 원했지만 대표팀 감독으로 인연을 맺은 히딩크 감독이 PSV 에인트호번으로 오라고 강하게 손짓을 했기 때문이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