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잡은 이재오 ‘마마’ 재가 받아야 입성
▲ 5·31 지방선거 개표방송 시청 도중 대화하고 있는 박근혜 대표(오른쪽)와 이재오 원내대표. 이종현 기자 ish@ilyo.co.kr | ||
당권 레이스에서 한 발 앞서 가는 쪽은 이재오 원내대표다. 현재 원내 사령탑을 맡고 있기 때문에 그 프리미엄으로 여론조사에서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여기에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 강재섭 의원과 맹형규 전 의원 등이 이 대표의 뒤를 이으며 본격 경쟁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소장파는 제2의 ‘오세훈 바람’을 기대하며 중도 개혁 성향의 독자 후보를 내세우려 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권력 재창출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7월 전당대회 당권 경쟁의 이면을 따라가 봤다.
한나라당의 새로운 관리형 대표는 7월 11일 열릴 전당대회에서 선출된다. 대권주자 박근혜 대표에 비해서는 중량감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자리는 아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만약 한나라당이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권력 창출에 성공할 경우 당 대표는 집권 여당의 수장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전에 정치권이 대통령-총리 이원 집정부제로 개헌을 한다면 경우에 따라서 책임총리로도 나설 수 있다. 또한 모든 의원들의 관심 대상인 18대 총선의 공천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막강한 권력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스트 박근혜-이명박 시대의 새로운 선두주자로 나서며 차차기를 노릴 수 있다는 점도 큰 이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당권 경쟁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사람은 이재오 현 원내대표다. 이 대표는 여론조사기관인 ‘중앙리서치’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지난 6월 5~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한나라당 대표 인물적합도’ 부분에서 1위(22.9%)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박희태 전 부의장 9.5%, 원희룡 최고위원 8.1%, 맹형규 전 의원 7.3%, 강재섭 의원 4.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대표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도 8.4%를 기록해 1위에 올랐다. 그 뒤를 이어 박근혜 대표의 최측근인 김무성 의원이 7.1%로 2위를 차지했다. 박희태 의원이 6.3%로 3위를 기록했고 강재섭 의원이 6.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했던 맹형규 전 의원은 4.8%를 기록했다. 이 결과는 앞서의 중앙리서치 결과보다 각 주자들 간의 우열이 많이 줄어들어 향후의 당권 경쟁도 초박빙의 안개구도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여론조사상으로는 이재오 대표가 한나라당 당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 하지만 당 대표는 대선 후보와 달리 ‘민심’이 그리 많이 반영되지 않는다. 선거인단 가운데 대의원 투표를 70%, 여론조사 결과를 30% 반영한다. 이번 당권 경쟁은 ‘민심’보다는 당 대의원들의 바닥 ‘당심’에 의해 대표 자리가 매겨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당심 우위의 구도로 보더라도 이재오 현 원내대표가 유리한 형국이라고 말하는 의원들이 많다. 수도권 출신인 그는 대의원들과의 일대일 접촉을 통한 확실한 바닥표 다지기를 최대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그는 올해 초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열세 예상을 뒤집고 승리했는데 그 이면에는 의원들의 집을 밤 12시가 넘어서라도 모두 직접 방문하는 열의가 자리해 있었다.
이 대표는 아직 공식적인 출마 표명을 하지 않았지만 최근 기자에게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 특히 대의원들과의 접촉에서는 나를 따를 후보들이 없을 것이다. 발로 뛰며 현장을 누빈다면 대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래서 이 대표가 정작 넘어야 할 ‘8부 능선’은 대의원 확보가 아니라 박 대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 박 대표 측에서는 그동안 이 대표를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대표의 “독재자의 딸” 발언 파문과 관련한 앙금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대표와 이 대표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한 토막.
▲ 강재섭 의원(왼쪽),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 ||
이런 까닭에서인지 이 대표는 최근 박 대표가 자신을 믿게 할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주변의 친한 의원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한 의원은 이에 대해 “박 대표가 이 대표를 향해 아직까지 마음의 문을 연 것 같지는 않다. 영남권 의원들은 박 대표에게 ‘이 대표가 당권을 쥐면 바로 등을 돌릴 것’이라며 ‘이재오 비토론’을 퍼뜨리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박 대표가 이 대표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이 대표의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면서 “만약 이 대표가 당선된다면 박 대표에게도 득이 될 수 있다. 바로 ‘역사와의 화해’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의 어두운 측면과 밝은 측면이 합해 통합의 정치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대표가 박 대표에게 존경심을 표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도 새롭게 거듭나면서 당내의 보수-개혁 세력 간 화해와 협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당권에 도전할 또 다른 유력한 주자로는 김무성 의원이 거론돼왔지만 그가 최근 “대선 후보의 측근이 당권에 도전하는 것은 당권-대권 분리 원칙을 규정한 당 혁신안의 기본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불출마 입장을 공개리에 밝혀 당 대표 경선 구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친박-친이 그룹이 이재오 대표를 관리형 대표로 ‘추대’하고 원내대표 자리는 김무성 의원이 가져가는 일종의 ‘딜’을 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 당권 경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사로는 강재섭 의원이 꼽힌다. 그는 얼마 전까지 대권 쪽으로 마음을 굳혔지만 주변의 강력한 권유 때문에 당권으로 진로를 수정할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대구·경북지역 출신 의원들은 최근 모임을 갖고 그를 당 대표로 옹립하는 데 뜻을 같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대구지역의 한 의원은 “현재 당권에 도전하려는 의원들이 많지만 강 의원 정도가 나와야 지역 정치권이 단합해 밀어줄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구지역 의원들은 “대구·경북의 ‘병참기지론’ 얘기는 하루 이틀 전의 얘기가 아니다. 표만 밀어주고 당내 역할에서는 뒷전에 밀리는 현상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느냐. 지역민들 얼굴 보기가 민망한 적이 많다”며 “이번 기회에 강 의원을 중심으로 당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주변 분위기에도 강 의원은 여전히 대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 의원은 “공정하게 당의 울타리를 지켜달라고 수십 명의 의원들로부터 권유를 받고 있다. 많이 고민 중”이라며 여전히 장고 중임을 내비쳤다. 당내에서는 만약 강 의원이 출마를 결심한다면 이재오 대표와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표의 수도권 대 강 의원의 영남권 식으로 지역 대결 양상이 된다면 그 후유증이 오래갈 전망이다.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은 ‘친이명박’(이재오), ‘친박근혜’(강재섭)가 아닌 중립 주자임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출마를 시사한 뒤 “대표 경선에 대선 주자와 밀착된 사람들이 나오면 대리전 양상이 돼 큰 불화를 겪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부의장이 대선 후보 경선에 공정한 관리를 할 수 있겠지만 대선이라는 대사를 치르기에는 전략성과 리더십이 약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맹 전 의원의 경우 본인은 내심 송파 갑 재출마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역시 원내에서 활동하는 게 정치력을 넓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번 당권 도전을 통해 차차기 주자로서 위상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7월 전당대회의 최대 변수는 역시 ‘소장파의 파워’라고 볼 수 있다. 소장파는 이미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오세훈 바람’이라는 장외의 힘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오풍에 버금가는 ‘이벤트’를 통해 당권 쟁취를 노리고 있다. 소장파는 이미 당내 소장개혁세력들과 모두 연대해 독자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현재로선 ‘수요모임’의 권오을 남경필 정병국 의원, ‘푸른모임’의 임태희 권영세 의원, ‘발전연’ 심재철 의원이 독자 후보감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간 출마설이 나돌던 소장파의 리더격인 원희룡 의원은 대권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들의 ‘폭발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나라당 수도권의 한 의원은 “의원들이 전략적으로 제휴를 하지만 느슨한 형태이기 때문에 쉽게 후보 선출을 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또한 현재 거론되는 후보들은 모두 차차기 당권이나 대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매우 어려운 방정식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래서 소장파들이 소장 개혁그룹의 연대화를 모색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많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장파들이 노리는 것은 당권이라기보다 지도부 입성일 것이다. 그래서 이재오 대표와 물밑 연대를 성사시켜 1인 2표의 패키지 투표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이 대표와 일종의 권력 분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