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힐러리 밀자”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처음에는 미풍에 그칠 줄 알았건만 점차 돌풍으로 변해버린 도널드 트럼프(70)의 사기가 날이 갈수록 하늘을 찌르고 있다. 3월 1일 슈퍼 화요일에 이어 3월 15일 미니 슈퍼화요일까지 압승을 거두면서 대세론을 굳히고 있다. 트럼프가 터무니 없는 공약과 막말 파문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자 한편에서는 ‘이러다 정말 트럼프가 백악관행 티켓을 거머쥐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터무니 없는 공약과 막말 파문에도 승승장구하자 공화당 주류들이 비밀 회동을 갖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연합뉴스
처음에는 조용히 사태 추이를 지켜보던 공화당 주류들도 미니 슈퍼화요일이 지나자 다급함을 느끼기 시작한 듯 부랴부랴 비밀 회동을 갖고 대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공화당 주류들이 뒤늦게나마 ‘트럼프 낙마 100일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어떻게든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한참 물이 오른 트럼프를 막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싶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트럼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차라리 힐러리 클린턴(69)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트럼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애리조나에서는 승자독식 제도에 따라 대의원 58명을 싹쓸이했으며, 이로써 트럼프는 누적 대의원 수가 741명에 달하면서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 대의원, 즉 ’매직넘버’의 60%에 근접하게 됐다. 현재 공화당은 전체 대의원 2472명 가운데 1237명의 대의원을, 그리고 민주당은 4764명 가운데 2383명을 먼저 확보할 경우 대선 후보로 지명된다.
따라서 마지막 공화당 경선이 열리는 오는 6월 7일까지 트럼프가 과반 대의원을 확보할 경우, 공화당 주류로서는 꿈도 꾸기 싫은 악몽이 펼쳐지게 된다. 또한 설령 트럼프가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해도 대의원 확보율이 60%를 넘은 트럼프를 쉽게 내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만일 내쳤다가 그동안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들 사이에서 자칫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의 대의원 과반 확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가령 무려 172명의 대의원을 선출하는 마지막 경선 무대인 캘리포니아에서 만일 트럼프 대항마로 꼽히고 있는 테드 크루즈나 존 케이식이 승리할 경우 트럼프의 과반 확보는 물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예상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 센트럴밸리에는 트럼프를 반대하는 라틴계 주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으며, 또한 자유주의자들이 많은 실리콘밸리 역시 트럼프를 지지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트럼프의 돌풍에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한 공화당 주류들의 움직임이 바빠진 것은 사실이다. 이와 관련, 미니 슈퍼화요일이 끝난 직후 워싱턴에서 긴급 비밀 회동을 가진 공화당 주류들과 지지자들이 구체적인 ‘트럼프 낙마 100일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이 작전은 4월 5일 위스콘신주 경선에서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주된 목표는 ‘트럼프 후보 지명 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만에 하나 트럼프가 후보로 지명된다 해도 이를 뒤엎을 수 있는 다른 후보를 내세울 전략’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을 주최한 인물은 보수 성향의 정치평론가인 에릭 에릭슨과 기독교 보수단체 지도자인 봅 피셔 등이었다. 이들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하는 수 없이 크루즈를 밀어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으며, 이와 더불어 전 공화당 대선후보들이 힘을 합쳐서 트럼프에 맞서 대항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에 미 언론들은 공화당 주류들이 현재 구상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트럼프 낙마 작전들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첫째, 트럼프의 대의원 확보를 저지한 후 최종 후보 결정을 중재 전당대회까지 끌고 가는 방법이다. 트럼프가 오는 7월 열리는 전당대회 전까지 전체 대의원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중재 전당대회를 통해 재투표를 실시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여기에서 트럼프를 낙선시키고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을 후보로 선출하겠다는 것이다.
중재 전당대회란 예비선거에서 대의원 과반을 확보한 후보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채 전당대회가 열리게 될 경우, 전당대회에서 1차 투표를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여기에서도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 표를 획득한 후보가 나오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 대의원 투표를 실시해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된다. 이를테면 후보들 가운데 과반 득표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재투표를 실시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중재 전당대회에서는 대의원들이 자유 투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혹여 예기치 못한 제3의 인물이 급부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를 실현시키기 위한 보수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공화당 슈퍼팩인 ‘성장클럽’은 트럼프를 비난하는 공격적인 광고를 제작할 예정이며, 이를 위한 기부금 목표액을 상향 조정했다. 가령 4월 5일 위스콘신 프라이머리가 열리기 전까지 200만 달러(약 23억 원) 이상을 반트럼프 광고 제작에 쏟아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올해 1월 공화당 전략가인 케티 파커의 주도로 출범한 또 다른 슈퍼팩인 ‘우리의 원칙’은 3월 21일까지 총 1170만 달러(약 136억 5000만 원)를 모금해 반트럼프 캠페인에 쏟아부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원칙’은 기존에는 트럼프의 허무맹랑한 잡탕 공약을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췄었다면 이제는 방향을 선회해서 트럼프의 개인사와 사기꾼 면모를 집중해서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의 원칙’의 대변인인 팀 밀러는 “우리는 트럼프의 호색한 기질을 파고들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트럼프가 주장하고 있는 세 가지 축, 이를테면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고, 성공한 사업가이며, 클린턴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세 가지 주장을 모두 무너뜨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원칙’은 ‘트럼프 대학’에 대한 비난 광고를 제작해서 본격적인 트럼프 공격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10년 문을 닫은 트럼프 대학은 현재 뉴욕주 검찰총장이 제기한 소송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주된 혐의는 뉴욕주로부터 대학 인가를 받지 않고 대학이라는 용어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점과 이를 이용해 검증되지 않은 부동산 투자비법 강좌를 개최해 4000만 달러(약 467억 원)의 부당 이득을 취득했다는 데 있다. 이에 트럼프는 2005년 ‘대학’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트럼프 기업가 이니셔티브 LLC’로 단체명을 개명한 바 있다.
지난 3월 19일 애리조나에서 열린 트럼프 반대 집회. 지지자들과 난투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연합뉴스
공화당 주류들이 구상하고 있는 ‘트럼프 낙마 100일 작전’의 두 번째는 반트럼프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앞장 서서 트럼프를 비난하는 한편, 크루즈 지지를 호소하고 나선 상태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롬니는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크루즈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라고 지지 선언을 했는가 하면, 3월 3일 유타대학에서 열린 연설에서는 “트럼프는 가짜이며, 사기꾼이다. 그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인물이다”라며 처음으로 트럼프를 공개 비난했다.
올해 1월 후보에서 사퇴한 린지 그레이엄 역시 당초 테드 크루즈와 트럼프 가운데 한 명을 골라야 하는 것을 가리켜 “총에 맞아 죽거나 독약을 먹고 죽는 것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묘사하면서 크루즈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던 데서 한발 물러나 입장을 바꿨다. 이를테면 그레이엄은 18일 공화당 주류 비밀 회동을 마친 후 “크루즈 당선을 위한 기금 모금을 시작하겠다. 크루즈는 신뢰할 수 있는 공화당원”이라고 말하면서 크루즈 지지 선언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크루즈가 공화당 내부에서 썩 호감도가 높은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극보수 성향인 크루즈는 지난 3년 동안 텍사스주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오하이오주에서 승리하면서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어떨까. 리먼 브라더스 이사 출신인 케이식은 그나마 크루즈보다는 당내에서 지지층이 두터운 편이다. 반트럼프 광고에 기부금을 쾌척한 부자들도 케이식을 더 선호하는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 홈그라운드와 다름 없는 오하이오 단 한 곳에서만 승리했다는 점은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공화당 주류들이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있는 세 번째 트럼프 낙마 방법은 다름아닌 공화당 후보 선출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무소속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다. 이는 주류들이 선호하는 제3의 인물을 무소속으로 출마시키는 방법으로, 이와 관련해서는 톰 코번 전 오클라호마주 상원의원,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 등이 거론된 바 있다.
한때 이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했었던 인물로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있었다. 무소속 출마를 저울질했던 블룸버그는 하지만 결국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유인즉슨, 3파전이 될 경우 오히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계산하에서였다. 이에 공화당 측에서도 블룸버그보다 더 보수적 성향이 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었다.
반면 보수 성향의 무소속 후보를 내세울 경우 오히려 우익 표가 분산돼 최악의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트럼프로부터 공화당을 지키지도 못할뿐더러, 클린턴에게서도 미국을 구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의 <가디언>은 공화당이 트럼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경선 제도를 뜯어 고치거나 아니면 달갑지는 않지만 ‘민주당 지지 선언’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가디언>은 만일 공화당 주류들이 “트럼프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은 누굴까?”란 질문을 한다면 아마 그 정답은 힐러리 클린턴일 것이라는 웃지 못할 의견도 내놓았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반트럼프 시위 정말 무섭더라” 트럼프 지지자들 핫라인 가동 “정치 신념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거나 공포에 떤 적이 있습니까. 또는 정신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폭력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신고하세요.” 지난 3월 22일 개설된 ‘트럼프를 지지자들을 위한 핫라인’의 안내문이다. 백인우월주의 극우정당인 미국자유당의 윌리엄 대니얼 존슨 대표가 개설한 이 핫라인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감정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시작됐다.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변호사이기도 한 존슨은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신체적인 공격을 당하거나 폭언을 당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시작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데일리비스트>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존슨은 “모두 세 명의 심리 상담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지난 8년간 ‘성폭행 핫라인’ 자원봉사자로 일한 바 있다”라며 전문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부당한 사례가 법적 소송으로 번질 경우를 대비해서 변호인 네 명도 상시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무료 법률 상담을 자처하고 나선 존슨은 “트럼프 반대 시위자들은 정말 무섭다. 그들은 기회만 된다면 트럼프 지지자들을 해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즉각 핫라인으로 연결하라”고 당부했다. 실제 트럼프 유세장에서는 트럼프를 반대하는 시위자들과 지지자들의 격돌로 크고 작은 난투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폭력 사태가 벌어졌던 시카고에서는 급기야 예정됐던 유세가 취소된 바 있었다. 한편 트럼프 측은 존슨의 이런 법률 자문 서비스와 핫라인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