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한 ‘반지의 제왕’도 ‘그’ 앞에선
▲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 전 주 파주의 모습처럼 각 신문과 방송 취재 차량과 취재진들은 매일 아침과 오후 두 번에 걸쳐 월드컵경기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골수 축구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파주에서 첫 소집 훈련을 마친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서울 홍은동 그랜드호텔로 숙소를 옮기면서 매일 서울월드컵경기장과 보조경기장에서 훈련을 가졌던 탓이다. 강도 높은 체력 훈련으로 컨디션을 조절했던 대표 선수들은 지난주 서울로 이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자체 훈련 및 세네갈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평가전을 치르며 본선 G조에서 상대할 유럽과 아프리카 팀에 대한 예방 주사를 맞았다. 관심과 이목이 집중됐던 대표팀의 인상 깊었던 서울 훈련 모습 등을 돌아봤다.
안정환의 남자는 김동진
‘반지의 제왕’ 안정환 얘기부터 해야겠다. 기자는 지난주 서울로 온 태극 전사들 중 유독 안정환을 주시했다. 파주 소집 때부터 한 차례 낙오도 없이 모든 훈련을 소화했고 또한 숙소 생활 등 여러 면에서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을 맞는 각오가 남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 김두현 | ||
때로는 김동진 앞에서 공으로 재주를 부리거나 잔디밭에 엎드려 기합을 받는 시늉도 냈다. 이를 본 몇몇 기자들은 영화 <왕의 남자>를 떠올린 듯 “이제 골을 넣은 안정환의 키스를 받는 남자는 김동진일 것”이라며 재미난 상상을 했다.
김동진은 “정환이 형하고는 지난 월드컵 예선 때 한 방을 쓰면서 많이 친해졌다. 형은 크로스와 패스 타이밍 등 나의 플레이에 대해 조언을 자주 해주는 편이다. 물론 사적인 얘기도 많이 나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 내 헤딩 어시스트를 받은 정환이 형이 골을 넣고 반대편으로 달려가면서 (조)원희를 끌어안았는데 그때 약간 마음이 상했다”고 기자에게 귀띔하기도.
안정환도 기자에게 “동진이와 대표팀 경기를 자주 뛰면서 친해졌다. 내가 동진이의 패스나 크로스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의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동진이와 특히 많은 얘기를 나누려고 한다”며 후배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보였다. 월드컵에서 보여줄 안정환과 김동진의 ‘콤비플레이’가 한껏 기대되는 한 주였다.
▲ 박주영, 백지훈, 이호, 김진규 (왼쪽부터) | ||
한편 지난주는 ‘4대천왕’이 대표팀과 기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4대천왕은 대표팀 막내인 박주영, 백지훈, 김진규, 이호를 부르는 말. 지난해부터 주가가 급등한 이들이 이번 훈련에서도 늘 붙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붙은 호칭이다.
대표팀의 여타 선수들도 4대천왕의 실력과 인기의 위력에 고개를 설레설레. 수비수 김영철은 농담으로 ‘몰려다니는 깡패’라고 4대천왕의 기세를 표현했고 또 다른 젊은 피 김두현조차 ‘4대천왕 완전 기세등등’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4대천왕의 위력을 몸소 실감하던 기자는 우연히 지난 5월 25일 오후 4시 30분경 김진규와 이호를 홍은동 그랜드호텔 앞 길거리에서 목격했다. 일반인들이 단번에 알아볼 두 선수는 태연히 호텔에서 나와 홍은동 사거리를 향해 인도를 걷고 있었다. 선수단 트레이닝복을 그대로 입은 상태. 기자는 부랴부랴 이들을 쫓아갔으나 두 선수는 홍은동 사거리 코너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날 대표팀 선수들이 오후 7시부터 외식을 하기로 한 홍은동 ‘수라면옥’에 나타나지 않은 상태. 2시간 30분 동안 두 선수의 행방은 여전히 미궁이다.
고기왕은 조원희 박지성
대표팀 첫 외식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무려 보름 가까이 파주 트레이닝 센터와 호텔 식사에 질린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취지. 혹시나 취재진이 몰려 올까봐 이원재 대한축구협회 미디어담당관은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외식 장소는 홍은동 사거리에 위치한 ‘수라면옥’. 기자의 열성에 감탄했는지 업소 관계자는 “이전에 조원희가 여자 친구와 함께 와 소등심 3인분을 먹고 간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미 전 주에 예약을 받은 업소는 ‘대표 선수단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큰 현수막을 건물 꼭대기에 걸어 놓고 선수들을 맞이했다. 축구팬들이 엄청 몰려왔고 이에 대표팀 관계자들이 업소 앞에서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손을 잡고 ‘인간 바리케이트’를 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이날 아드보카트 감독과 외국인 코치진을 제외한 선수단 40명이 먹은 소갈비와 등심은 약 80인분. 업소 관계자는 “약 300만 원이 나왔는데 전혀 깎아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표팀 관계자는 “30% 할인을 받았다”고 해 기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업소 관계자가 꼽은 고기왕은 조원희와 박지성. 조원희는 연신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고 오랜만에 한우를 접한 박지성도 게 눈 감추듯 했다고 한다. 반면 이영표는 입이 무척 짧은 듯 보였다고.
4대천왕의 리더 이호에게 물었다. 고기 많이 먹었냐고. 역시 ‘제2의 김남일’이라는 칭호대로 터프했다. “어유~ 다들 고기 먹여 놓으니 장난 아니게 좋아하더라고요. 고기에 눈들이 멀었어~~.”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