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K-리그 지킴이가 될 겁니다
▲ 이운재는 ‘은퇴’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그는 아직도 선수생활을 지속하는 데 자신 있다고 말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2006 독일월드컵에서 골키퍼이자 주장으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던 이운재(33·수원 삼성)의 마음은 월드컵이란 ‘과거’에서 K-리그라는 ‘현재’로 돌아가 있었다. ‘(월드컵을)너무 빨리 정리한 거 아니냐’는 물음에 “다른 사람에 비해 정리를 빨리하는 편”이라면서 “아쉬움은 분명히 남아 있지만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선 미련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월드컵 기간에 이운재는 정말 열심히 공식 인터뷰에 응했다. 평소 인터뷰를 달가워하지 않는 그로선 나름대로 고역일 수도 있었는데 내색하지 않고 주장답게 솔선수범해서 선수들 인터뷰를 이끌어 나갔다. 공식이 아닌 단독으로 수원 삼성 클럽하우스에서 이운재를 만났다.
>>이운재의 독일인 ‘광팬’
독일에서 월드컵을 취재하는 동안 이운재의 ‘광팬’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미 <일요신문>에도 소개된 바 있는 축구 선수 출신의 폴커 기픈 씨였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자연스레 한국 축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2002년 한국을 방문해 직접 한국대표팀 경기를 지켜보며 골키퍼 이운재한테 푹 빠졌다고 토로했다. 급기야 그는 이운재의 사인을 받는 게 소원이라고 말해 프랑스전이 끝난 뒤 기자가 나서서 이운재의 사인을 받아 건네준 적이 있었다.
폴커 기픈 씨가 말한 이운재의 장점은 유럽의 유명 골키퍼들한테 뒤지지 않는 순발력과 상황 판단 능력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인 게 ‘눈빛’이라고 했다. 이운재의 눈을 보면 제 아무리 잘나가는 골게터라고 해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얘기들을 이운재에게 설명해줬더니 이내 환한 표정이 된 그는 “좋게 봐주셔서 고맙지만 난 더욱 배울 게 많고 부족한 점도 많다”며 몸을 낮췄다. 그래서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 “이젠 좀 잘난 척해도 욕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한 이운재의 반응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전 자만할 시간이 없었어요. 산을 넘고 나면 강이 기다리고 강을 건너면 바다가 있었죠. 우쭐할 수도 마음을 놓을 수도 없었어요. 운동 선수로 사는 한 평생 긴장하면서 살 것 같아요. 집에 돌아가면 좀 다르지만요.”
>>거저 얻은 주전 아니다
소문이 무성했던 김병지 대신 김용대, 김영광이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자 주전 골키퍼는 이운재가 떼논 당상이었다. 그러다보니 언론에서도 주전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은 골키퍼들은 이운재에게 오히려 마이너스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운재는 이 부분에 대해 조용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사람들은 제가 대표팀에서 장기 집권하고 있는 줄로 알아요. 그러나 제가 대표팀 주전으로 뛴 시간들은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그 전에는 주전이 되고 싶어 언저리에서 줄곧 맴돌았던 후보 선수였을 뿐이죠.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피땀 흘린 노력을 인정받지 못한 게 서운해요. 이 자리에 그냥 있는 거 아니거든요. 오르기도 힘들지만 지키기는 더 힘들다는 걸 잘 모르세요.”
>>‘완장’의 고독
처음에 대표팀 주장을 맡았을 때만 해도 이운재는 상당히 부담스러움을 토로했다. 마인드 컨트롤하기도 바쁜데 다른 선수들까지 챙길 만한 여력도 능력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을 치르며 이운재는 감독,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 이운재는 그 공을 모두 선수들에게 돌린다. 만약 단 한 명의 선수라도 튀거나 돌출 행동을 벌였다면 주장이라는 자신의 입지가 상당히 힘들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전지훈련과 월드컵까지 40여 일 동안 동고동락했어요. 당연히 힘들고 지루할 수 있었죠. 그러나 그 기간이 마음 먹기에 따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들이잖아요. 한국에 돌아갈 때는 웃을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자고 말한 적이 있어요. 결국 웃으면서 돌아올 수가 없었네요.”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다보니 다른 선수가 느끼지 못하는 ‘외로움’도 있었다고 한다. 바로 주전 선수들과 비주전 선수들을 대할 때였다.
>>‘과거’속의 월드컵
월드컵 세 경기 동안 가장 힘들게 치른 게임이 궁금했다. 필드 플레이어가 아닌 골키퍼로서 맛본 세 게임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묻고 싶었다.
“3경기 다 어려웠어요. 토고전은 첫 경기라, 프랑스전은 너무 강팀이라, 스위스전은 마지막 경기라서 힘들었죠. 그중에서도 프랑스전을 못 잊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A매치 100경기를 치르며 그렇게 많은 공을 막아낸 적도, 그렇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며 골문 앞에 서 있었던 적도 없었거든요. 경기 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경기 끝나고 이틀이 지나도록 피로가 풀리지 않았어요. 모든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죠.”
이운재에게 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붙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중 어느 팀을 응원했냐고 떠봤다. 이운재는 주저 없이 ‘프랑스’라고 대답했다.
“이탈리아는 이유 없이 정이 안 가요. 승부 조작에 연루된 부분도 그렇구요. 프랑스가 우승하길 바랐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가 프랑스랑 무승부를 벌였던 부분이 자꾸 아쉬워져요. 어떻게 해서든 이겼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면서 독백처럼 이렇게 되뇐다. ‘에이 또 이런 생각한다. 안 하기로 해놓구선.’
이운재는 스위스전이 끝난 뒤 눈물을 흘렸다. 파노라마처럼 지난 시간들이 흘러갔고 그 장면 장면들을 떠올리자 괜히 설움이 복받쳤다고 한다.
“사실 스위스전 끝나고 선수들에게 아무 말도 못했어요. 말을 꺼낼 수도 없었죠. 다들 울고 있었으니까. 하루 지나니까 이런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다음 월드컵 때까지 차근차근 준비 잘해서 이런 아픔, 이런 회한은 더 이상 느끼지 말자는 거였죠. 저에 대한 다짐보다는 후배들에 대한 바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은퇴’란 말 꺼내지 마세요
그렇다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이운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냐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질문을 해봤다. 이운재도 언뜻 그 질문의 핵심을 파악한 듯했다.
“물 흐르듯이 가고 싶어요. 후배의 앞길을 막을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러나 서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해서 선택된다면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단 일부러 애써 막고 싶진 않아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되겠죠.”
이운재는 간혹 인터뷰 때마다 나오는 단어, ‘은퇴’란 말을 싫어했다. 지금 그 단어가 왜 나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 솔직히 표현해서 의아하고 섭섭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데 대한 자신감이 한껏 묻어났다.
“제가 스스로 대견해 하는 부분이 있어요. 골키퍼도 인기를 얻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부분이죠. 그전까진 소외된 포지션이었는데 2002년 월드컵 이후 골키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또 지금도 받고 있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어린이 팬들이 많이 늘어나서 아주 뿌듯해요. 제가 애 아빠라는 걸 아나 봐요. 하하.”
>>감독 떠난 뒤에 말해봤자
이운재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떠난 상황에서 이런저런 비판들이 제기되는 부분에 대해서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 모든 일은 결과론이라는 것. 만약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4강의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우리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모든 의문점이나 궁금점들은 그냥 가슴에 담고 선수와 감독이 한마음 한뜻이 돼 대회를 준비하고 열심히 뛴 부분에 대해서만 기억을 해줬음 하는 바람이었다.
“이미 그분은 떠났잖아요. 떠난 사람에게 뭐라고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앞으로가 중요하죠. 제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정리는 빨리 할수록 좋아요. 자꾸 붙잡고 있어봤자 뭐가 좋겠어요. 이젠 앞을 보자구요. 앞만 보고 헤쳐 나가기도 버거워요.”
인터뷰 말미에 소속팀 감독인 차범근 감독의 해설이 인기였다는 얘기를 꺼내며 차 감독이 보는 가운데 월드컵을 치른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운재의 대답이 재밌다.
“자기 자식이니까 나쁘게 말씀하시진 않았겠죠 뭐.”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