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올리는 데 목숨 걸자’ 각오
▲ 노 대통령 핵심측근인 이광재 전략기획위원장이 주도적으로 ‘당 부활’ 플랜을 가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른쪽은 비대위의 이슈토론회에 관한 대외비 문건. | ||
실제로 비대위는 지난 6월 20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이슈 토론회’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등 치밀한 ‘기사회생’ 플랜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신문>이 최근 단독 입수한 ‘비대위 토론회’ 대외비 문건에는 당 지지율 제고 전략, 야당과의 차별성 확보 전략, 대선을 겨냥한 정치지형 연구 등 주요 토론회 주제와 예상 소주제가 이를 발제할 담당 의원의 이름과 함께 적시돼 있다. 잠복된 내홍과 성난 민심을 짊어진 비상 지도부가 와신상담하며 재도약의 밑그림을 하나씩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A4용지 4매 분량의 대외비 문건은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전략기획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당 전략기획실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에는 지난 6월 14일 비대위 워크숍 결과를 정리해 비대위 토론회 주제를 선별하고 주제별로 이를 담당할 의원진을 결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문건은 비대위 상임위원과 비대위원, 사무총장, 의장 비서실장 등 비상 지도부에게만 배포됐고 당내 인사는 물론 언론 등 외부에는 일체 유출하지 말 것을 당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전략기획실의 한 실무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비상체제인 만큼 비대위를 중심으로 현안 및 향후 당 진로 문제 등과 관련해 허심탄회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이슈 토론회’를 실시하기로 했다”며 “지금은 정해진 주제에 따라 발제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로 당론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다는 게 내부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 문건에는 이슈 토론회 운영을 위한 기본 방안과 토론회 주제 및 일정표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문건에 따르면 비대위원들은 토론회 일정에 맞춰 발제를 분담하고 담당 비대위원은 안건 정리 및 향후 추진 계획을 작성하는 동시에 입법안이 필요한 경우 의원입법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도록 했다. 주제에 따라서는 외부 전문가에게 발제를 맡길 수 있도록 했고 발제자는 발제만 담당하고 토론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냉정한 토론과 공정한 합의를 도출하고자 하는 비대위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논의 결과는 여론조사 등을 통해 검증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한 피드백을 실행키로 했다. ‘민심’과의 괴리감을 최대한 해소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이 같은 이슈별 소주제 정리와 여론조사 및 시뮬레이션은 이광재 의원이 이끄는 전략기획팀이 실무에 참여하거나 담당하도록 했다. 전략기획실이 여당의 ‘부활’ 플랜을 주도하는 실질적인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음을 대변하고 있다.
문건에는 비공개 토론회를 지난 6월 20일(1회차)을 시작으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실시하고 7·26 재·보궐선거 다음날까지 총 12회 갖는 것으로 적시돼 있고 장소와 시간은 유동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토론회 주제는 민생우선 원칙을 기치로 출항한 김근태 의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칭 ‘서민경제회복지원본부(서민본부)’ 활동 방안을 비롯해 △당 기강 확립방안 및 당헌당규 개정 방안 △당·정·청 유기적 운영방안 △당 지지율 제고를 위한 전략 △정책을 통한 직능단체 연대 방안 △야당과의 차별성 확보 전략 △대선을 대비한 정치지형 연구 및 대응 방안 등 현안문제에서부터 차기 대선 전략까지 총망라돼 있다.
▲ 비대위가 당 회생과 대선정국을 겨냥한 마스터플랜을 차질 없이 진행시킬 수 있을까. 사진은 6월 22일 임채정 신임 국회의장을 방문한 김근태 의장. 이종현 기자 ish@ilyo.co.kr | ||
문건에 따르면 비대위는 당 지지율 제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40대 전략(4회차 토론회), 여성·주부 전략(5회차), 수도권·충청권·호남권·영남권 전략 등을 권역별로 7~10회차까지 집중적으로 토론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또 각 권역별 정치지형 및 민심동향 분석과 지역민심을 얻기 위한 지역아젠다 도출 방안을 공통 소주제로 채택했다.
당 지지율 제고 전략은 당 사활 문제와 직결된 핵심 이슈인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차기 대선정국을 겨냥한 여권의 대권플랜 전략과도 연결될 수 있음을 문건은 시사하고 있다. 마지막 토론회 일정인 12회차(7월 27일) 주제가 ‘대선을 대비한 정치지형 연구 및 대응 방안’으로 정해졌고 이광재 위원장이 발제 의원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정치지형 변화 예측과 시나리오 분석, 세력연대의 대의명분 및 실행방안, 대선기획 활동 본격적 구동 여부 등이 예상 소주제로 채택된 것도 이 같은 토론 주제가 대권플랜과도 무관치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슈 토론회 일정과 주제는 물론 토론 내용을 참석자들 외에는 비밀에 부치고 있는 배경에도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20일과 22일 진행된 토론회에서 논의된 안건 내용은 토론 후 전략기획실이 전부 회수한 것으로 한 참석자는 전했다.
이에 대해 전략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 이후 사분오열된 ‘당심’을 다잡고 산적한 현안 문제와 관련한 효율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토론회를 실시하게 된 것”이라며 “토론 주제나 논의 내용이 당론으로 확정되기 전에 외부에 유출될 경우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비공개 원칙을 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두 번 토론해서 결정될 사안들이 아닌 만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차분하고 신중하게 주제별 토론을 실시하자는 게 비상 지도부의 생각”이라며 “논의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합의된 내용이나 당론으로 결정된 사안이 있으면 곧바로 언론에 공개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6월 20일 첫 토론회 발제자였던 박명광 의원은 지난 22일 기자에게 “일정표에 적시된 대로 서민본부 활동 방안 등에 대해 토론회를 실시한 건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비대위에서 비공개 원칙을 정한 만큼 구체적인 토론 내용은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22일 토론회 발제자였던 염동연 사무총장 측은 “선거 참패 및 민심 이반에 따른 원인규명과 대응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 진솔한 토론의 장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제 시작 단계이고 수습 과정인 만큼 궁금하더라도 비대위 토론 일정을 좀더 지켜봐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7월 25일로 예정된 ‘야당과의 차별성 확보 전략’ 토론회 발제자로 지정된 배기선 비대위원은 “개혁을 기치로 출범한 참여정부가 국민들에게 너무 높은 기대치와 희망을 심어줬던 게 실망감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우리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여당에게 요구하는 현실성 있는 정책이 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우리당이 다시 국민의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당심을 결집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이처럼 비대위 지도부가 이슈 토론회 등을 통해 당 수습 방안 및 대선정국을 겨냥한 밑그림을 다지고 있지만 당원들과 국민들을 만족시킬 묘책이 도출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당초 6월 20일 토론을 거쳐 21일 서민본부 인선을 마무리할 예정이었던 비대위가 ‘인물난 벽’에 부딪쳐 첫 단계부터 난산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비대위 활동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또 ‘당 지지율 제고를 위한 권역별 전략’ 토론회 과정에서는 계파별 이해관계가 맞물려 잠복된 당내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표류하고 있는 여당호의 키를 쥔 비대위가 당 회생과 차기 대선정국을 겨냥한 마스터 플랜을 차질없이 진행시킬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