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요? 오버맨도 때론 지퍼 잠그고 싶다는 거
▲ 지난 7월 22일 홍성흔이 올스타전 2회 말에 홈런을 터뜨렸다. 이날 맹활약으로 MVP로 선정됐다. 연합뉴스 | ||
홍성흔이 지난 7월 2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06올스타전에서 홈런 1개 포함, 3타수 3안타 2타점으로 MVP가 됐다. 기자단 투표 총 50표 가운데 45표를 얻었으니 완전 몰표였다. 홍성흔은 상금 1000만 원을 받았는데 “수재민을 위해 쓰겠다”고 통 크게 말해 다시 한번 박수를 받았다. 또한 “경기 전 낮잠을 자다가 (박)찬호형이 금가루가 든 봉투를 주는 꿈을 꿨다”고 말해 역시 ‘뉴스메이커’임을 확인시켰다.
99년 두산에서 데뷔해 줄곧 한 유니폼만 입은 베어스맨. 어느덧 8년차 베테랑이 된 홍성흔의 실제 성격은 어떨까. 야구장에서,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비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끝난 뒤 기자는 ‘WBC 최강 전사’란 타이틀로 한국대표팀 스타플레이어들의 장점을 모은 가상의 선수를 그려본 일이 있다. 예를 들면 최희섭의 손목 힘, 이종범의 눈(선구안), 이승엽의 하체, 오승환의 심장(담력), 이진영의 왼쪽 어깨 등 WBC 4강을 이끌었던 선수들의 장점만으로 일종의 가상 태극 전사를 만들어본 것이다.
당시 ‘홍성흔의 입’이란 항목도 있었다. WBC 때 홍성흔은 발목 부상 때문에 실제 경기장에선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대신 특유의 활달함과 오버로 한국팀 벤치에 항상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결국 입으로 활약했다는 얘기인데 개인적으로 우울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기죽지 않고 선수단 융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뜻이었다.
몇 달 뒤 야구장에서 홍성흔을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홍성흔의 입’ 기사 때문에 상당히 웃음거리가 됐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와 조금 놀랐다. 일본에 있는 절친한 친구 이승엽이 하루는 전화를 걸어와 “기사 봤는데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는 것. 홍성흔은 웃으면서 정중하게 “저도 가장이고 가족들 보기에 민망하니까…”라며 기자에게 가벼운 항의를 했다. 그 심정이 이해가 됐고 당초 의도와 달리 당사자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 친구, 무작정 웃고 다니는 것만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올스타전 MVP가 된 홍성흔과 지난 27일 본격적인 인터뷰를 했다. 예상 밖으로 홍성흔은 야구장을 떠난 모든 곳에서 ‘입에 지퍼를 잠그고 사는’ 사나이였다.
집에선 말 한마디를 않는 스타일이라고 실토했다. 많은 사람들이 밝고 활동적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건 야구장에서의 모습일 뿐이다. 심지어 부인 김정임 씨가 “연애할 때는 항상 재미있었는데 함께 살아보니 집에선 너무 말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라고 한다.
홍성흔은 “운동장에서 에너지를 다 쏟아붓기 때문에 집에선 무뚝뚝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혼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를 마치고 본가에 돌아가면 밥 먹고 조용히 할 일만 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운동장과 사석에서 이처럼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오해를 산 적도 꽤 있다. 경기 후 동료들과 어울려 식당에 갔을 때 자주 겪는 일이다. 홍성흔은 술을 못 마시는 편이 아니지만 정규시즌 동안 다음날 경기가 있으면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런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술이 얼큰하게 취한 일반 팬들이 그를 알아보고 술잔을 내미는 경우가 꽤 있다.
보통의 경우엔 홍성흔이 정중하게 거절하고 대신 술을 따라주는 것으로 답례를 한다. 하지만 때론 취객들이 “사람 무시하냐. 평소 텔레비전 보니까 말도 잘하고 떠들던데, 왜 이러냐”며 시비를 걸기도 한다. 홍성흔이 워낙 오버맨으로 이미지가 굳어있는 탓이다.
스타플레이어들 가운데 이런 상황을 겪는 경우가 꽤 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홍성흔은 평소 쾌활한 모습 때문에 유달리 오해를 많이 사는 편이다. 마치 “홍성흔이 그럴 줄 몰랐다”는 식의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홍성흔은 “그런 경우가 생길 때면 대부분 뒤편에 있는 친구들이 말려줘 큰 사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게 당연히 유쾌할 리 없다. 물론 사인 부탁은 누구보다 흔쾌히 받아주는 홍성흔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99년 입단한 홍성흔은 95년 프로에 데뷔한 이승엽과 동기생이다. 본래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입단 첫 해에 홍성흔이 신인왕을 타고 이승엽이 54홈런으로 정규시즌 MVP가 되면서 함께 몇 차례 식사를 했고 이후 절친한 관계가 됐다.
홍성흔은 요즘 이승엽과 사흘이 멀다하고 전화통화를 한다. 일본에 있는 이승엽이 먼저 걸기도 하고, 홍성흔이 휴대폰을 집어 들기도 한다. 홍성흔은 “걔(이승엽)는 이상하게 나랑 전화한 날 무지 잘 친다”라며 웃는다.
홍성흔은 이승엽에 대해 “절대로 자신감을 잃지 않는 선수”라고 평가한다. 두 해 전 이승엽이 일본 진출 첫 해에 지바 롯데에서 부진을 겪고 있을 때였다. 다른 선수 같았으면 농담으로라도 “나 이제 다됐어, 끝났어”라는 말을 한마디쯤 했을 텐데 이승엽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홍성흔에 따르면 이승엽은 최악의 부진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내가 누구냐, 나 이제 곧 올라 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홍성흔은 “바로 그런 모습이 지금의 승엽이를 가능케 한 힘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