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사준다면 자다가도 벌떡
▲ ‘검은 갈매기’호세는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달리 정이 많고 세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롯데 구단 직원들은 그를 ‘가슴 따뜻한 남자’라고 부른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 | ||
또 호세다. 한 시즌에 몇 안 되는 선수 퇴장 명령을 호세는 올해만 벌써 두 차례나 받았다. 올 시즌 초반에는 구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F’로 시작하는 욕설을 퍼붓다가 퇴장 처분을 받기도 했다. 유독 호세와 연관된 사건, 사고가 많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41세 베테랑 타자는 진짜 악동일까.
▶▶ 관중과 한판 투수와 한판
99년 처음 롯데에 입단하면서 괴력의 홈런쇼로 팬들을 즐겁게 했던 호세. 그러나 그해 포스트시즌 때 관중석으로 방망이를 투척하는 소동을 벌여 처음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서 결정적인 홈런을 터뜨리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끄는 데 성공했지만 관중석에서 날아온 물병에 맞은 뒤 흥분을 참지 못하고 방망이를 집어 던진 사건이었다. 다행히 큰 불상사는 없었지만 프로야구 선수가 관중석을 향해 배트를 던진 최초의 사례였다.
2001년에 다시 롯데로 복귀한 호세는 이번엔 경기 중에 상대 선수를 폭행했다. 정규시즌 말미에 마산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 도중 상대 투수인 배영수가 동료타자 훌리안 얀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지자 호세는 또 한 번 격분했다. 1루에 있다가 마운드쪽으로 달려 나가 배영수의 안면을 가격했다. 당시 삼성 1루수 이승엽은 “탱크 같은 게 두두두 하면서 뛰어나가는데 손으로 잡으려 해도 도저히 말릴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번의 ‘전과’를 기록한 호세는 그 후 한국 프로야구를 떠났다가 올 초 컴백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비록 직접적인 폭행을 하지 않았지만 벌써 두 차례나 퇴장을 당하면서 ‘이름값’을 하고 있다.
▶▶ 겪어보면 천진난만
호세를 가까이서 지켜봐온 롯데 관계자들은 정작 “호세는 천진난만한 소년 같은 선수”라고 입을 모은다. 수훈선수로 선정돼 사직구장에서 경기 후 인터뷰를 할 때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수줍음을 타기도 한다.
의외로 정이 많은 스타일이기도 하다. 호세는 남미식 발음이 섞인 영어를 구사하는데 그 발음이 워낙 독특하기 때문에 어지간히 영어에 능통한 사람도 못 알아 듣는 경우가 태반이다. 호세와 오랜 기간 생활한 구단의 통역 담당 직원만이 의사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 지난 99년 호세 전담 통역이 아이의 돌잔치를 치를 때였다. 호세는 어디서 구했는지 미리 준비한 예쁜 아기용 신발을 이 직원에게 선물했다. 엄청난 체구의 호세가 한손 크기도 안 되는 신발을 직접 사러 돌아다녔다는 사실이 구단 직원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호세가 당시 트레이너였던 한 직원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마사지는 물론 때때로 침도 놓아주고 몸 관리를 해준 트레이너에게 호세는 감사의 뜻으로 뜻밖의 선물을 했다. 시즌을 마치고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가면서 그 직원의 어머니에게 값비싼 강아지를 선물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와 달리 감성적인 선물을 고른 호세의 모습은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 김치에 보양식까지
워낙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호세지만 사실 한국에서의 생활은 3시즌에 불과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호세는 한국식 생활 방식을 철저하게 몸에 익혔다.
▲ 지난 2001년 삼성 투수 배영수의 안면을 가격한 호세. 연합뉴스 | ||
보통 외국인 선수의 기피 음식 1호인 보신탕도 호세에겐 문제가 안 된다. 롯데 동료들이 “개고기 사줄 테니 나가자”고 하면 호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간다고 한다.
호세는 특히 보양식을 즐기는데 동료 선수들이 가방에서 부시럭거리며 한약 봉지를 꺼내면 어김없이 하나 달라는 눈빛으로 쳐다보곤 한다. 요즘은 아예 동료들이 호세를 볼 때마다 먼저 한약 봉지를 건네곤 한다.
쉬는 날에는 부산 국제시장에 나가 쇼핑을 하는 게 취미다. 특히 명품을 모방해 만든 ‘짝퉁’ 제품에 관심이 많다. 때론 부산 초량동의 외국인 상가에서 맥주를 즐기고 있는 호세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유분방한 호세지만 여자친구 앞에선 꼼짝 못한다. 올 초 여자친구인 조세피나 피카르도 파레레스가 한국에 왔을 때 해운대 등을 함께 돌아다니며 시중을 드느라 안절부절 못했다고 한다.
▶▶ 한국에서 은퇴할래요
호세가 그동안 많은 말썽을 일으켰지만 대부분 주위에서 먼저 자극을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가만히 있던 호세가 먼저 난리를 일으킨 경우는 없었다. 호세는 “내가 어려서 야구를 할 때 빈볼을 맞고 가만히 있으면 용기 없는 선수로 낙인찍힌다고 배웠다”고 말한다.
호세에 따르면 한국 선수들은 너무 몸을 사린다. “한국 야구에는 승부욕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했다. 호세 입장에선 서로가 학교 선후배로 얽혀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한국 선수들의 투지가 부족해보였던 것 같다.
때론 폭행 시비 때문에 자신에게 많은 질책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호세는 “부산을 사랑하고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도 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호세는 그라운드에서 주먹만 휘두르는 ‘악동’은 분명 아닌 듯하다. 의외로 정이 많고 세심하다. 그래서 롯데 구단 직원들은 그를 ‘가슴이 따뜻한 남자’라고 부른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