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기사를 쓴다’
▲ (왼쪽부터) 마틴 로저스, 제임스 더컨, 스튜어트 매티스 | ||
무조건 언론의 선정성을 탓하기 전에 영국 언론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축구 기사를 보도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진출로 영국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한국 선수들에 대한 기사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영국 언론을 번역하는 것 이외에 사실 확인이란 언론의 기본 사명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영국 현지 기사가 틀리지 않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영국 현지 기자들이 말하는 기사 생산 과정은 잉글랜드 축구를 이해하는 또 다른 창이 될 것이다.
축구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경기 기사 외에 선수 이적이나 개인 신상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취재원이 필요하다. <데일리미러>의 마틴 로저스 기자는 영국 축구 기자들에게는 에이전트가 주된 취재원이라고 한다. 에이전트는 본질적인 업무인 선수 관리에서 벗어나 선수 이적이나 선수 개인의 홍보성 기사를 위해 언론을 접촉한다. 한국에 비해 좀 더 적극적인 선수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선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로저스 기자는 “감추려 하기보다는 언론과 소통하면서 선수의 장점을 부각시킨다”며 에이전트의 역할을 강조했다.
감독도 주요 취재원이다. 하지만 감독들은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가 맡은 구단의 아픈 이야기는 안하는 대신 축구계의 최근 이슈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그러나 감독을 개별적으로 접촉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나 조세 무링요 첼시 감독은 절대로 기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지 않는다. 애스턴 빌라의 마틴 오닐 감독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로저스 기자는 “앞으로 10년 뒤면 어느 감독도 기자와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리미어리그의 규모가 커지면서 모든 일이 사무적이고 공식적으로 바뀌고 있는 게 최근 분위기라고 한다. K리그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확산되고 있다.
선수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는 기자는 유능한 기자로 평가받는다. 이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똑같다. 선수가 최고의 취재원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다.
<타임즈>의 제임스 더컨 기자는 “감독보다 더 접근이 어려운 게 선수다. 축구 기자로서 특종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선수들과 친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솔직히 밝혔다. 그러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선수와 개별적으로 연락을 하는 기자는 소수라고 한다.
에릭손 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은 독일월드컵이 열리기 전 잉글랜드 주간지 <뉴스오브더월드>의 몰래카메라에 걸려 곤욕을 치렀다.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비아냥과 프리미어리그 클럽 감독직에 대한 너무나 솔직한 욕심(?)으로 월드컵 직후 해임됐다. <뉴스오브더월드>는 정보를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저돌성으로 유명하다. 에릭손에게 미끼를 놓기 위해 아랍에미레이트로 에릭손을 초청해 호화 요트에서 파티까지 열어줬을 정도다.
올 시즌 첼시로 이적한 애쉴리 콜(전 아스널)과 조세 무링요 첼시 감독의 부적절한 사전 접촉도 <뉴스오브더월드>가 돈으로 특종을 건졌다. 애쉴리 콜과 무링요 감독은 지난해 초 런던의 호텔에서 만남을 가졌다. 프리미어리그 협회는 ‘계약기간 내의 선수가 구단의 허락 없이 타 구단과 접촉하지 말라’고 명시하고 있다. 자신들의 비밀 만남에 안심을 한 두 사람이었지만 호텔 직원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 호텔 직원은 <뉴스오브더월드>에 전화를 걸었고 사례비로 한국 돈 1000만 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 가치에 따라 사례비가 정해져 있지만 <뉴스오브더월드>는 어차피 취재원들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정보를 돈으로 살 것을 공언한 것이다. 그것이 비록 취재 윤리를 어겼다고 할지언정 독자를 끌어들인다면 불사하겠다는 쪽이다.
<맨체스터이브닝뉴스>의 스튜어트 매티스 기자는 “모든 언론사가 사례비를 책정하고 있지만 <뉴스오브더월드>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말한다. 한국도 최근 선수, 감독 등과의 개별 접촉이 힘들어지고 있어 몇 년 내에 정보를 돈으로 바꿔주는 잉글랜드 언론을 답습하는 언론사가 나올 지도 모르겠다.
영국 런던=변현명 축구전문리포터 blog.naver.com/ddaz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