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이랑 나랑 그렇게 차이가 많았나? 11년 차? 아이고 그래도 다행이네, 띠 동갑은 아니니…. 이제 그런 말들은 아예 꺼내지도 말자구.”
박세리는 연신 기분이 좋았다. 귀찮을 법한 팬들의 사인 및 사진촬영 요청도 흔쾌히 응했다. 심지어 남자 팬들 하고도 기분 좋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저 마음 편히 볼들 잘 치라구.”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 후배들보다 박세리가 더 했다. 2년 만의 국내대회 출전. 메이저대회(맥도널드LPGA챔피언십) 우승 하나만 제외하면 아직 ‘온 국민이 걱정하는 슬럼프’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틀 뒤 열리는 코오롱-하나은행챔피언십은 자신이 초대챔피언에 오른 대회다. 스트레스가 심한 것은 당연했지만 두 시간이 넘도록 한 번도 웃음을 잃지 않고 우승이 없는 후배들을 위해 유쾌한 술자리를 가졌다. 깜박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아 경호원에게 돈을 빌려 계산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한 마디로 ‘마음씨 좋은 평범한 동네 언니’ 그대로였다.
다음날인 26일. 프로암 대회를 마친 박세리는 기자들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했다. 질문의 내용은 1라운드에서 올시즌 한국의 그린여왕인 슈퍼루키 신지애와 맞대결을 펼치는 소감이 어떠냐는 것.
“솔직히 (신지애 프로를) 잘 몰라요. 얘기는 들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오늘 아버지(박준철 씨) 하고 프로암을 같이 했다고 하는데 어린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게 잘 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신지애 프로가) 몇 살이죠?”
“열여덟 살이니까 박 프로하고는 11년차네요.”
“아이 참, 꼭 나이 차이를 말해야 돼요? 근데 열여덟 살이오? 정말 어리네요.”
“꼭 10년 전 박세리 선수하고 같아요. 루키로 연간상금 신기록을 세우는 등 싹쓸이하고 있죠.”
“18세면 아직 고등학생일 텐데. 나는 졸업하고 프로 데뷔했어요. 요즘은 고등학생도 프로해요?”
27일 대회 1라운드. 김미현 한희원 등 최근 성적으로 치면 박세리보다 나은 선수들이 많았지만 갤러리들은 박세리 조에 가장 많이 몰려들었다. 비록 박세리는 2오버파로 부진했고, 10년 만에 나온 제2의 박세리(신지애)도 이븐파로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박세리 주변에는 고국 팬들이 떠나질 않았다.
“왜 부담이 없겠어요? 하지만 이제 여유가 생겼어요. 10년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이 많은데 제가 골프 때문에 전전긍긍하면 안 되잖아요. 공을 잘 치든 못 치든 후배도 챙기고, 팬들에게 감사도 하고, 주변도 돌아보고 … 뭐 그렇게 넉넉하게 살고 싶어요. 골프요? 골프는 그러면서도 열심히 칠 거예요.”
울산에서 einer66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