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여야 ‘제3지대’ 규합 땐 대권 꿈 ‘다시 한 번~’
손학규 전 고문. 일요신문 DB
손 전 고문의 잠재적 대권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문 전 대표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표 확장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둘은 완벽한 ‘대체재’다. 특히 반문(반문재인) 정서를 잠재울 최상의 카드다. 지역적으로도 ‘수도권(손학규)과 부산·경남(PK·문재인)’으로 갈린다. 세대별로도 ‘5060세대(손학규)와 2030세대(문재인)’로 대척점에 있다. 둘은 한쪽이 상승하면, 다른 한쪽은 필연적으로 하강하는 시소관계다.
전남 강진에 칩거해온 손 전 고문이 총선 판에 깜짝 등장한 것은 지난 3월 30일. 임종성 더민주 후보(경기 광주을)의 부친상 조문차 상경한 손 전 고문은 최측근 이찬열(수원갑)·김병욱(성남 분당을)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섰다. 손 전 고문이 격려 메시지 차원을 넘어 직접 선거사무소를 찾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 후보 선거사무소를 찾은 손 전 고문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 정치를 보면 국민들의 마음을 상당히 안타깝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정치가 우물에 빠진 개구리 같은 형국이라 어떻게든 절벽이 아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손 전 고문은 김 후보 사무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당원과 지지자들로부터 정계복귀 요청을 받자 “아이고, 국민들 삶이 많이 힘들어졌죠. 강진 시골에서도 그런 게 느껴지는데 잘 돼야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무슨 역할을 하기보다는 앞으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가는 데 총선이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서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 파탄에 있는 남북관계 동북아 외교관계를 제대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 고문의 적극적인 정치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손 전 고문은 4월 7일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연구소> 주최로 개최된 행사에 참석, ‘다산 정약용에게 배우는 오늘의 지혜’라는 주제로 특강정치도 펼쳤다. 정치권 안팎에선 손 전 고문의 정치행보가 총선 이후 필연적으로 촉발할 야권발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판은 조성됐다. 야권은 이미 ‘친노(친노무현)·운동권’ 그룹의 더민주와 비노(비노무현) 그룹인 국민의당으로 이원화됐다. 국민의당이 제3지대 한국 정치판의 핵심 축으로 부상한 것이다. 여권도 ‘친박(친박근혜)’ 공천 학살에 희생당한 유승민 이재오 무소속 의원 등이 제3지대의 한쪽 방을 차지한 상황이다.
19대 후반기 국회 때 사사건건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한 정의화 국회의장도 새로운 정치결사체 추진을 시사했다. 박형준 사무총장이 국민의당 내 안철수계와 손잡는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친이(친이명박)계인 박 사무총장이 정 의장 쪽으로 간 것은 차기 대선판을 노린 포석”이라고 말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전현희(서울 강남을) 더민주 후보 선대위 고문을 맡았다.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를 아우르는 ‘별’들이 제3지대 정치판에 흩어진 채 각개 약진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을 규합할 구심점 인물과 명분, 세력이다. 이 지점이 총선 이후 정계개편의 변곡점이다. ‘손학규 역할론’도 여기서 촉발한다. 총선 이후 제3지대 정당을 규합할 구심점의 핵심은 단연 손 전 고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이 ‘제3세력 구축 1기’였다면, 손 전 고문을 비롯해 보수진영 인사들까지 규합하는 여의도 발 정계개편은 ‘제3세력 구축 2기’에 해당한다. 그 정계개편이 창조적 파괴 수준으로 확전할지,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는 예단할 수 없다. 다만 과거 대선의 경험에서 보듯 차기 대권을 둘러싼 쟁탈전이 본격 도래한다면, ‘헤쳐 모여’ 식 정계개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안 대표도 4월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손 전 고문을 언급하며 “그분의 경륜과 지혜를 꼭 부탁드리고 싶다”며 “국민의당에 꼭 필요한 분이고 지향점이 같다고 믿는다. 계속 (영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정 의장이 언급한 총선 이후 제3세력에 대해서도 안 대표는 “처음에 창당할 때 합리적 진보, 개혁적 보수 다 함께할 수 있다고 했다. 지속적으로 노력할 생각”이라며 연대 가능성을 열어놨다.
안 대표는 총선 정국에서 손 전 고문에게 직접 전화로 총선 지원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안(손학규·안철수) 연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손·안 연대는 손 전 대표의 정치재개 ‘명분’과 안 대표의 전국정당화 ‘실리’가 깔린 전략적 카드다.
손학규 발 정계개편의 핵심 노선은 한국판 ‘제3의 길’이 될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 초반 미국 민주당 클린턴이 주창한 ‘신민주당’(New Democrat)과 영국 노동당 블레어가 내건 ‘제3의 길’과 유사한 형태다. 기존 정당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새누리당과 더민주 사이에서 차별화를 꾀해 중도 유권자를 포섭하는 전략이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손학규 역할론에 대해 “2011년 분당 보궐선거에서 같이 일해 보니까 합리적 리더십을 갖춘 몇 안 되는 인사”라면서 “국민적 열망이 모인다면 (손 전 고문이 험난한 길을) 피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손학규발 정계개편의 1차 분수령은 야권의 총선 성적과 손학규계 인사들의 생환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명분도 있다. ‘2017년 체제’ 완성이다. 1987년 체제의 한계인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지역주의와 1997년 체제의 한계인 사회양극화를 타파하는, 이른바 ‘실용주의 전국정당화’를 전면에 내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누리당의 ‘공룡 정당화’, 더민주의 ‘리더십 부재’가 지속될 경우 전체 유권자의 30%가량인 중도·무당파는 새로운 세력을 통한 정치혁신을 열망할 가능성이 있다.
야권 지지층 역시 ‘문재인 한계론’을 지속적으로 확인한다면 새로운 대안론의 주인공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정계 은퇴 이후 오랫동안 칩거한 인사가 국민적 열망으로 구원 등판하는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손 전 고문이 2012년 미완에 그쳤던 대통합을 전면에 내걸고 여의도에 상륙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2012년 손 전 고문의 대통합이 야권에 국한됐다면 2017년 체제의 대통합은 여야를 아우르는 통합이다. 이에 따라 선거구제 개편,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등 정치개혁 이슈와 지난 대선 때 손 전 고문 슬로건인 ‘저녁 있는 삶’의 제2판 등 민생 이슈가 정국 태풍의 눈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3지대 세력도 만만치 않다. 현재 제3지대에는 수도권의 손 전 고문을 시작으로 김한길 의원, 부산의 안철수 대표, 호남의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등이 있다. 더구나 손 전 대표는 호남에서도 대안론을 대망론으로 격상시킬 수 있는 파워를 가졌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수도권의 이재오 무소속 의원과 안상수 전 인천시장, 대구·경북(TK)의 유승민 무소속 의원 및 다수의 유승민계, 부산·경남(PK)의 정의화 국회의장 등도 제3지대 정당 구축 2기에 합류할 수 있는 인사다. 여기에 더민주 내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충청의 양승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등도 ‘대통합’을 고리로 손 전 고문 중심의 정계개편론에 힘을 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는 제 세력을 규합할 리더십이 제3세력 구축 2기의 방향타가 될 전망이다.
손학규 대망론의 아킬레스건도 존재한다. 지역적 기반의 한계다. 경기도지사 출신인 손 전 고문은 대표적인 수도권 인사다. 하지만 수도권 내 영향력은 여전히 물음표다. 경기도는 여촌야도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천차만별이다. 인구 1000만이 넘는 경기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수도권 대통령으로 부상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야권 내 세력도 문 전 대표보다 미약하다. 야권 지지층인 2040세대에 대한 소구력도 2% 부족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시장 시절 업적인 ‘청계천 사업’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 시절 이뤄낸 ‘세종시 수정안’ 반대처럼 국민의 뇌리에 박히는 색깔도 보여주지 못했다. 무색무취한 리더십의 소유자란 비판도 여기에서 나온다.
대통합과 제3의 길, 정치혁신도 식상한 구호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가치 창출 등의 플러스알파가 절실하다. 또한 소수파의 한계 극복(세력)․수도권(지역)․젊은 층 내 구심점 확보(세대)도 절체절명의 과제다. 마지막 과제는 타이밍이다. 내년 대선 전에 열리는 재보선 때마다 ‘손학규 구원투수론’이 등장할 수 있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제3세력 지지층의 열망을 오롯이 담을지 아니면 간만 보다 큰 꿈을 실기하지, 모든 것은 손 전 고문의 디테일 승부수에 달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