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박세리 우즈 격파’는 욕먹기 좋은 명제인 것이다. 실제로 박세리는 우즈의 95년 방한 때 스킨스대회에서 기량을 겨뤘지만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로 완패한 바 있다.
하지만 양용은 때문에 간접비교를 통해 이 말도 안 되는 명제를 입증할 수 있게 됐다.
2003년 10월 SBS골프최강전은 한국 골프사에 길이 남을 대회였다. SBS방송사가 개국 10주년을 기념해 박세리의 ‘성대결’을 어렵게 성사시켰다. 박세리는 이 대회에서 공동 10위를 차지, 지금까지도 세계 골프사의 성대결에서 최고로 남아 있는 성적을 냈다.
그해 10월 23일. 당시 레이크사이드컨트리클럽에서 박세리가 성대결을 시작할 때 동반자는 신용진과 양용은이었다. 둘 다 국내 톱랭커로 어마어마한 장타자였다. 성대결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SBS가 특별히 선정한 것이었다.
잘 생각해 보자. 누가 이렇게 들러리 서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잘하면 본전이고 조금 실수하면 ‘여자보다 못하다’는 비아냥을 들을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신용진과 양용은은 관대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척박한 한국남자프로골프계에 도움이 된다면 상관없다고 했다. 엄청난 부담을 안고 경기를 치렀지만 이틀 내내 박세리를 편하게 해주면서 훈훈한 라운드를 펼쳤다.
당시 한국남자프로골프협회(KPGA) 홍보이사였던 류형환 씨(현 전무이사)는 “정말 아끼는 후배들이다. 기량도 세계적이고 인간성도 너무 좋다. 둘이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맡아줘 정말이지 눈물 나게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1라운드 결과는 박세리와 신용진은 이븐파로 공동 13위, 양용은은 티샷이 OB가 나는 등 엄청나게 고전한 끝에 7오버파 공동 96위를 기록했다. 박세리에 열광하는 구름갤러리를 등지고 플레이하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최종성적에서 신용진은 4위를 차지해 체면을 살렸고, 양용은은 2라운드에서 7언더파를 몰아치는 등 뒷심을 발휘했으나 첫 날 부진을 만회하지 못하고 공동 18위에 그쳤다.
이런 양용은이 지난 12일 유럽골프투어(EPGA) 2007시즌 개막전에서 타이거 우즈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우즈뿐 아니라 레티프 구센, 짐 퓨릭 등 최고의 골퍼들을 자신의 이름 아래에 뒀다.
‘우즈 격파 쾌거’ 후 양용은 휴먼스토리가 쏟아져 나왔다. 연습장 볼보이로 출발, 꼴찌로 프로테스트 통과, 한국 신인왕을 차지하고도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좌절 등 가슴이 뭉클해지는 성공신화였다. ‘양용은 성공의 다섯 가지 비결’이라는 기사까지 나왔다.
다 맞는 얘기겠지만 개인적으로 ‘양용은은 착하게 살아서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2005년 1월 양용은은 조용히 자선클리닉을 열었다. “아직 뭐 대스타가 된 것도 아닌데”라고 쑥스러워하면서도 동네아줌마와 주니어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성금이 별로 안 모이자 대부분 자신의 돈으로 쓰나미 구호 성금을 냈다.
“뭐 아직 성공했다고 할 수 없지만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거든요. 요즘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사는 사람들 많잖아요. 여기에 동참하고 싶었고 또 앞으로 볼을 더 잘 쳐서 계속 좋은 일 하겠다는 의미에서 ‘시작’한 겁니다.”
당시 양용은의 말이다. 실제로 양용은은 이번 쾌거 후에도 부친을 통해 제주도의 모교(제주관광산업고)에 기금을 전달했다. 그 바쁜 와중에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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