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민정당’ 뒤로 걷다 뇌관 밟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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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8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강재섭 대표. 오른쪽은 이재오 최고위원. | ||
이번 전당대회는 공정한 대선관리를 위한 체제정비가 목표였으나 막판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변질되며 깊은 내홍을 남겼다. 박 전 대표 측은 “도발에 대한 응전이었다”라고 그 책임을 이 전 시장 측으로 넘겼고 이 전 시장 측은 “가만있는 우리를 저들(친박)이 끌어들인 것이다. 우리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는 사실상 ‘친박’과 ‘친이’ 간에 처음으로 맞붙은 세싸움이었다. 이미 당내에서는 “이제부터 대권주자 간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전당대회 이후 이명박 전 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나 ‘먼저 움직이면 죽는다’는 인식하에 자제하고 있지만 두 진영 간의 충돌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당 대표를 뽑는 것도 이런데 대선후보 경선은 어떨지 염려된다’며 당 분위기를 우려했다. 수면 아래로 잠시 사라졌을 뿐, 분란의 잠재요소가 꿈틀대는 한나라당 내부를 살펴봤다.
이 최고위원이 당에 복귀해 가장 먼저 제기한 문제는 대권후보 경선방법 문제다. 이 최고위원은 대선 경선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완전국민경선참여제’나 여론조사비율을 높이는 등의 ‘민심을 더욱 반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당헌 당규에 따르면 대의원, 일반·책임당원, 국민참여선거인단, 여론조사의 비율이 각각 20:30:30:20인 대선후보 선출방식을 국민참여선거인단과 여론조사 비중을 늘려 민심을 더욱 반영하자는 것이다.
자신이 전당대회에서 ‘민심’(여론조사)에서는 앞섰으나 ‘당심’에서 밀린 만큼 ‘당심’과 ‘민심’의 불일치를 화두로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전 시장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도 국민참여 확대를 주장하며 이 최고위원을 거들었다. 여기에다 전당대회 후 이 전 시장과 이 최고위원이 여러 차례 전화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며 ‘이재오-이명박 사전 교감설’까지 제기됐었다. 그러나 이 전 시장 측은 “단순히 이 최고위원에게 ‘수고했다’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을 뿐”이라며 이같은 관측을 일축했다.
그러나 친박 진영에서는 대선후보 ‘경선 룰’ 변경 주장을 이 전 시장의 주장으로 받아들인다. 친박 측의 한 인사는 “대선후보 경선에 관한 규정을 누가 만들었나”며 “당시 친이명박계로 불린 홍준표 혁신위원장이 주도해 박근혜 대표와 싸워가며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때는 이명박 전 시장이 대의원들 사이에서 지지도가 높았고 심지어 이 전 시장이 ‘당을 접수했다’는 소리까지 들렸다. 혁신안이 만들어진 후 당장 대선후보를 선출하면 이 전 시장이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고 한번 시행도 하지 않은 것을 바꾸자는 것은 비겁한 처사다”라고 말했다. ‘경선 룰’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면서 당내외에서 ‘벌써부터 밥그릇 싸움하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전 시장 측도 “대선후보 경선방식 논쟁은 급하지 않다”며 한발 물러섰다. 벌써부터 이 문제를 건드렸다가 자칫 당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일단은 접어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대선후보 선출시기가 다가올수록 언제든지 불거져 나올 시한폭탄과 마찬가지다. 이 시한폭탄은 자칫 당 분열이라는 엄청난 핵폭탄의 뇌관도 건드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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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당 내 전대 후유증이 여전한 가운데 이명박 전 시장(왼쪽)과 남경필 의원 등의 행보가 주목된다. | ||
그러나 이들은 소장파 중에서도 ‘푸른모임’ 소속의 중도 성향의 인사들로 주류 측과 날선 각을 세우고 있는 ‘수요모임’의 핵심 ‘남 원 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과는 거리가 있다. 즉 이번 당직으로 주류 측은 대화 가능한 ‘주화론자’들은 감싸겠지만 비판의 칼을 세우는 ‘주전론자’들은 배제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두고 남경필 의원은 “몰락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소장파의 입지가 좁아졌다”라고 표현했다. 강 대표 측에서 “소장파를 배려했다”는 말은 결국 구색 맞추기 용에 불과하다는 것.
수요모임과 푸른모임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합쳐 만든 미래모임이 자체 경선을 통해 단일 후보로 남 의원이 아닌 권영세 의원을 선출했을 때 ‘친박 진영의 작전’이라는 말이 많았다. 문호를 개방한 미래모임에 친박 인사들이 남 의원을 주저앉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입해 권 의원을 선출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선출직 최고위원 진입에 실패한 미래모임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지난 20일 ‘7·11 전당대회 평가 토론회’에서 미래모임 간사인 박형준 의원은 “중도개혁 보수 세력이 어떤 형태로든 필요하고 긴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실패를 거울삼아 어떻게 새롭게 구축할지는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논의할 것”이라며 해체를 선언했다. 그러나 수요모임은 여전히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소장파 입장에서 보면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색깔론’ ‘뿌리론’ 등을 보며 한나라당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그러기에 자신들의 존재가 더욱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수요모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남 원 정’은 당 안팎의 대안·비판세력으로 정체성을 더욱 뚜렷이 하고 ‘자강론’에 힘쓸 것으로 보인다. 즉 수요모임은 주류 측에 더욱 날선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