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의사가 보여준 뼛조각을 버리지 않고 집에 가지고 왔다. 그 뼛조각을 보고 또 보면서 병원에 누워있는 현진이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수술을 마치고 입원실에 누워 있는 현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1년을 꿇어도 되니까 모든 걸 받아들이자.”
퇴원 후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난 현진이를 데리고 동산고가 출전하는 게임은 모두 보러 다녔다. 동대문야구장, 대구 등등 지역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선수들과의 친분 관계와 경기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7개월의 재활의 시간을 보낸 뒤 난 현진이와 함께 ‘따뜻한 나라’로의 전지훈련을 계획했다. 몸을 빨리 만들려면 추운 지역보다 괌이나 사이판 쪽에서 훈련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는데 막판에 야구부 감독의 반대로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재기가 가능했던 것 같다. 아들보다 먼저 포기하고 더 많이 걱정하고 실의에 빠졌다면 현진이 또한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