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게임 4승 ‘후유증’에 애 망칠 뻔
▲ 고1 때부터 팀 에이스로 활약한 류현진은 팔꿈치 부상으로 큰 시련을 겪었다. | ||
그중에서도 올시즌 투수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열아홉 살의 ‘괴물 루키’ 류현진(한화)은 일본전에 이어 중국전까지 연달아 선발 투수로 출전했지만 ‘본전’도 못 찾고 ‘꼴찌나 다름없다’는 동메달을 안고 돌아와야 했다.
류현진의 아버지 류재천 씨는 다른 것보다 아들의 체력과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 같아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평소 잠이 많은 아들에게 가급적 쉴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며 휴식을 취하게 하고 싶지만 시상식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 그럴 수만도 없을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대표팀 선수들의 플레이와 결과도 실망스럽지만 그들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가했던(마치 다신 보지 않을 것처럼) 매스컴들의 보도 행태 또한 ‘조금은’ 섭섭하고 답답했다.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팬들의 기대가 컸기에 그에 따른 비난도 컸다는 부분쯤은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선수들이 ‘죄인’은 아니다. 선수들을 죄인 취급하면서 코너로 몰아세워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귀국 전 전화를 해온 현진이에게 어깨를 펴고 당당한 모습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이번 경험을 ‘보약’으로 알고 더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되찾으라는 당부의 말도 건넸다. 부모는 대표팀이 동메달을 땄든 동메달도 못 딸 뻔했든 내 자식이라 안쓰럽고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다시 지난 시절로 돌아가서 현진이가 동산중학교에서 동산고등학교로 올라간 이후의 일들을 정리해 보겠다.
현진이는 고1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다. 그 해 인천 지역의 고교팀들만이 참가하는 제1회 미추홀기고교야구대회가 열렸는데 팀 에이스였던 현진이가 준결승전까지 4게임을 연달아 선발로 출전하며 혼자서 4승을 올렸다. 완봉과 완투가 포함된 기록이었으니 대단한 활약이었던 건 분명했다. 결승전을 앞두고 현진이는 ‘더 이상 못 던지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억지로 등판했다가 팀 성적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아 최영환 감독을 찾아가 읍소를 했던 모양이다.
▲ 류현진의 집 벽에 걸려 있는 학창시절 투구폼 연속동작. | ||
문제는 이 대회 이후부터 현진이의 왼쪽 팔꿈치 인대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현진이는 모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담당 의사는 2개월 정도 공을 잡지 않고 웨이트트레이닝만 하며 쉬다 보면 저절로 나을 것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꼬박 2개월을 쉬고 다시 캐치볼을 시작했지만 현진이는 계속해서 팔꿈치가 아프다고 했다. 이번에도 병원에선 수술보다는 쉬는 게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다시 2개월을 그냥 보내게 했다. 그렇게 2개월씩 3번을 쉬었는데도 증세는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현진이가 너무 답답했는지 다른 병원에 가보겠다고 했다. 서울에서 운동 선수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한 정형외과였다. 처음엔 현진이 혼자서 그 병원을 찾아갔는데 현진이 팔꿈치 상태를 본 원장이 부모를 모시고 오라고 했단다. 다음날 그 병원에서 들은 얘기는 이전의 대학병원에서 진단 내린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현진이 상태가 아주 심각하고 X-레이 촬영 결과 뼛조각이 발견돼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순간 ‘아차’ 싶었다. 공을 안 만지고 쉬다 보면 저절로 나을 것이라는 대학병원의 진단만 믿고 6개월을 허송세월한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곳에선 CT촬영에다 MRI까지 찍었는데도 발견하지 못한 뼛조각을 이곳 개인 병원에서 3000원 짜리 X-레이 촬영으로 확인했다는 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수술하고 재활하다보면 1년이란 시간이 흘러 버린다. 고2 때 바짝 진가를 보여줘서 고3 초에 마감되는 스카우트 기간 전에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데 현진이는 그때 그냥 주저앉아 있어야 했다. 당시에는 현진이의 야구 인생이 거의 끝났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현진이 또한 의기소침해 있었고 수술 이후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다는 보장도 기약도 없는 현실에서 야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로에 놓이게 됐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