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밖에선 ‘그가 골문 지켰다면…’
▲ 과연 그는 내년 베어벡 감독의‘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 ||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독일월드컵을 마친 후였다. 이운재가 국가대표팀에 나가 있는 동안 박호진에게 골문을 맡겼던 수원 차범근 감독은 이운재보다 박호진을 신뢰했다. 7월 15일 경남 FC와의 컵대회 경기에 선발출전했다가 하프타임 때 교체된 이운재는 이후 팀의 K-리그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수원이 후기리그 1위를 차지하고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을 치르는 동안 이운재가 지켰던 곳은 골문이 아니라 벤치였다. 그 과정에서 갖은 추측이 쏟아져나왔고 지난해 말에 그랬던 것처럼 이운재가 결국 수원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도 다시 불거졌다.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자 핌 베어벡 대표팀 감독도 이운재를 내쳤다. 이운재의 빈자리는 김영광(전남 드래곤즈)에게 맡겼다.
다시 골문에 서는 일 없이 올 한 해를 마무리할 것 같았던 이운재는 지난 3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FA(축구협회)컵 결승전에 출전했다. 차범근 감독은 “K-리그 챔피언결정전 패배 이후 침체된 팀 분위기를 쇄신시키기 위해 이운재를 출전시켰다”고 말했다.
이운재는 지금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호주여행 중이다. 해외에 있더라도 알려고만 한다면 알 수 있겠지만 박호진이 K-리그 골키퍼 부문 베스트11에 뽑혔다는 뉴스도, 김영광이 골문을 지킨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이라크에 져 금메달 사냥에 실패했다는 것도 현재로선 이운재의 관심 밖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이운재였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박호진은 차범근 감독이 신뢰한 대로 후기리그에서 정말 잘해줬다. 그것이 바탕이 돼 K-리그 베스트11에 뽑힌 것도 합당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수원으로선 올 시즌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성남 일화와의 챔피언결정전 2경기에서 3골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 대표팀 수문장 자리를 후배 김영광에게 내준 이운재(아래). | ||
대표팀 내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운재는 9월 6일 대만과의 2007 아시안컵 예선을 마지막으로 대표팀 소집에서 제외됐다. 이후 베어벡호의 골문은 김영광 차지가 됐다.
김영광은 8월 16일 대만과의 아시안컵 예선부터 이라크와의 아시안게임 4강전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10경기에서 8실점 했다. 경기당 실점률로 본다면 0.8골로 뛰어난 선방이다. 그러나 비교적 약체로 평가되는 아시안게임 예선 상대와의 경기를 제외한다면 김영광의 성적표는 썩 만족스럽진 못하다.
특히 베어벡호의 중요한 승부에서 김영광은 어김없이 ‘실책성 플레이’로 실점을 했다. 9월 2일 이란과의 아시안컵 예선 때는 수비수 김상식(성남)과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서 경기 종료 직전 통한의 동점골을 내줬다.
독일월드컵 때 골키퍼 조련을 맡았던 정기동 코치는 지난 10월 인터뷰에서 “그 상황에선 상식이와 사인이 맞지 않은 것 같았지만 골키퍼가 나오기보다는 수비수인 상식이에게 그냥 맡겼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영광은 시리아와의 아시안컵 예선 때도 다시 한 번 판단 미스로 실점을 했다. 페널티지역 바깥까지 나왔다가 골문을 비워 상대에게 골을 허용했다. 그때 상황에 대해서도 정기동 코치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상대 선수가 볼을 완전히 소유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광이가 좀 더 침착하게 페널티지역에서 기다렸다면 손으로 충분히 볼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라크와의 아시안게임 준결승전 역시 김영광의 플레이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1차적인 실수는 수비라인에서 발생했지만 그 다음 과정이 문제였다. 골문을 지키던 수비수 김진규(주빌로 이와타)의 몸에 맞고 나온 볼을 이라크 선수가 헤딩슛으로 연결했던 상황에서 김영광은 두 발을 지면에 붙인 자세가 아니라 몸을 날려서 슛을 막았어야 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때 와일드카드 3장 중 1장을 이운재를 위해 썼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다.
김영광이 이운재의 뒤를 이을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경험이나 안정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 때문에 한국 축구에서 이운재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대표팀 일부 선수들도 그 점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 10월 대표팀 경기를 뛴 이영표(토트넘 홋스퍼)는 “아직은 대표팀에 운재형이나 정환이형 같은 경험 있는 선수들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성남에 우승컵을 내준 수원이, 또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이라크에 일격을 당하며 금메달의 꿈을 접은 대표팀 베어벡 감독이 내년엔 이운재를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하다.
이운재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제니스 스포츠 코리아는 “조만간 수원 구단과 접촉을 갖고 이운재가 남은 계약기간이라도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운재와 수원의 계약기간은 2007년 말까지다.
이운재의 대표팀 복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전적으로 베어벡 감독이 쥐고 있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이운재가 적어도 2007년 아시안컵 본선까지는 너끈하게 대표팀 골문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상운 국민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