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도메 대타’ 옵션 기동력 긴급수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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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1일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 입단 기자회견을 하는 이병규 선수.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입단 발표도 예상보다 다소 늦어 진 느낌이다. 이병규가 내년 진로를 확정하지 못한 채 도하 아시안게임에 나선 직후 주니치의 한 관계자는 “LG 구단주가 오케이를 하는 즉시 발표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 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끝까지 마음 졸인 주니치
주니치가 이병규와의 교섭에 어느 정도 합의를 끌어낸 뒤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LG와의 관계였다. LG가 이병규의 잔류를 원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제휴 구단으로서 베팅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주니치가 LG에 공문을 보내 이병규와의 협상과 관련해서 사전에 양해를 구한 것도 그동안 쌓아온 양팀 간의 유대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니치 관계자는 합의 발표 일주일 전쯤 “주니치도 곤란하지만 LG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야구단을 넘어 그룹 차원에서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곤란한 입장에 놓였던 주니치가 막판 소매를 걷어붙이고 힘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일본 진출에 대한 이병규의 확고한 의지였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의 영향일까. 최근 몇 년간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팀 성적과는 달리 별 인기를 끌고 있지 못하는 주니치로서는 이병규에게 새로운 바람을 기대하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 한·일 슈퍼게임을 주최하는 등 한국프로야구와의 교류에 가장 앞장 섰던 주니치는 이승엽의 맹활약으로 모기업이 언론 라이벌이기도 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쏠린 팬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됐다.
‘2+1년’ 계약이 유력
주니치는 그동안 외국인 선수와 다년 계약을 할 경우 2년 원칙을 지켜 왔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2년 연속으로 홈런왕에 올랐던 타이론 우즈를 2005년 영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올해로 주니치와 2년 계약이 끝나는 우즈는 2년 재계약이 유력한 상태다.
<주니치스포츠>의 한 주니치 담당 기자는 “구단 측 얘기에 따르면 계약 조건은 2년 총액 3억 엔이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 같다. 첫 해 연봉은 인센티브를 포함해 1억 5000만 엔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하면서 “2년 뒤 선택 사항으로 1년을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 붙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즉 이병규 본인이 원할 경우 최소한 3년 동안 주니치에서 뛸 수 있다는 얘기다.
주니치가 계약 기간과 관련된 옵션 내용을 밝힐 수 없었던 데는 우즈를 비롯한 다른 외국인 선수와의 형평성 문제가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병규의 연봉은 주니치 담당 기자의 말과 그동안 일본프로야구에서의 관례로 볼 때 1억 5000만 엔 이상은 힘들어 보인다. 순수한 연봉이 1억 엔이라는 얘기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참고로 이승엽은 지난해 요미우리 계약금 5000만 엔에 연봉 1억 6000만 엔 등 총 2억 1000만 엔에 1년 계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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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는 최근 몇 년 동안 주전 외야수 발굴에 애를 먹었다. 후쿠도메 고스케가 자리를 꿰찬 우익수를 제외한 중견수와 좌익수는 아직도 확실한 임자가 없다고 봐도 좋다. 게다가 올해 외야수로 뛰던 외국인 오초아 알렉스가 성적 부진으로 방출 돼 긴급 수혈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주니치는 이 같은 상황에서 즉시 전력감이 될 만한 외야수 보강에 발 벗고 나섰지만 최근 몇 년간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구단의 형편상 메이저급의 거물 선수를 영입하기는 힘들었다. 또 트레이드를 통한 주전 외야수의 스카우트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
주니치는 이 같은 팀 안팎의 사정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한국의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로 뛰기도 했던 이병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니치의 안방 무대인 나고야돔은 일본의 돔구장 중에서도 넓은 편에 속해 타격 이외에 이병규의 수비력과 기동력도 영입 결정에 플러스 요인이 됐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주로 3번 타자로 기용됐던 이병규는 타순 5번으로 뛸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주니치는 3번 후쿠도메 고스케-4번 타이론 우즈-5번 이병규의 왼손-오른손-왼손의 지그재그 중심 타선이 완성된다.
이병규의 영입 이유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점은 내년 시즌 이후 후쿠도메의 거취다. 내년 시즌을 채우면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후쿠도메는 “WBC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이 더욱 강해졌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이병규가 만일 일찌감치 주전으로 자리매김한다면 2008년 후쿠도메가 메이저리그로 떠나더라도 한시름 덜 수 있다.
이병규가 넘어야 할 숙제
야구 실력과 인기로 볼 때 주니치의 정점은 ‘코리안 3총사’가 뛰던 1999년이었다. ‘열혈남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 팬들의 인기는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뜨거웠다.
팬들의 열기를 등에 업고 선수단을 휘어잡았던 호시노 감독은 선동열(현 삼성 감독)이 입단한 1996년 기대에 어긋나자 “그렇게 던지려면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고함을 지르면서까지 자존심을 자극했다.
현 오치아이 감독은 호시노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벤치의 작전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말없이 선발에서 뺀 뒤 무서운 침묵으로 선수들을 다스린다.
하지만 ‘선수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한번 애정을 주면 끝까지 믿고, 그렇지 않으며 금방 뱉어 버리는 단점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병규로서는 개막 초반의 활약이 시즌의 80~90%를 좌우한다고 봐도 좋다.
타격 기술면에서는 두말할 것 없이 변화구에 대한 적응이 중요하다. 한국의 구장에 비해 훨씬 넓은 나고야돔의 특성을 감안할 때 타이밍을 맞추기 힘든 변화구 투수를 상대로 무리하게 장타를 노리기보다는 무조건 단타만을 친다는 생각으로 초반부터 마음을 잡는 게 중요하다.
이종범(기아)은 1998년 주니치 입단 첫해 전반기에서 펄펄 날다가 불의의 오른 팔꿈치 골절상을 당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야에서 외야로 수비 포지션이 바뀌는 악재를 견디지 못한 채 끝내 날개를 펴지 못했다.
한국 최고의 홈런 타자 이승엽은 일본식 변화구에 대응하기 위한 컴팩트 스윙을 몸에 익히는데 2년이 걸렸다.
과연 한국에서 ‘안타 제조기’로 통했던 이병규가 얼마나 빨리 일본식 야구를 터득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양정석 일본야구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