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자가 강자라는 걸 배웠습니다”
▲ 스케이트 날을 바라보는 이규혁의 눈빛. 올림픽 5연속 출전을 노리는 그는 이제 우승보다 도전 그 자체를 즐기게 됐다고 말한다.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1월 22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끝난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프린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이규혁(29·서울시청)은 23일 귀국하자마자 25일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중국 장춘으로 다시 출국했다. 그 짧은 틈새를 이용해 얼굴 보고 인터뷰를 하기가 참으로 복잡다단했지만 24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난 이규혁의 얼굴에선 베테랑의 여유가 물씬 풍겨 나왔다.
태극마크만 17년. 중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빙상 신동’이 그후 ‘신예 스타’이자 한국 빙상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과정들 속에서 이규혁은 어느새 ‘노장’과 ‘은퇴’란 단어에 익숙한 빙상 대표팀의 최고참이 돼 버렸다. 그동안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이나 우승과 거리가 먼 탓에 이런 저런 ‘안줏감’이 돼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지만 이규혁은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살 초입에서 스케이트 인생의 ‘대박’을 터트리며 ‘존재의 이유’를 국내가 아닌 세계에 널리 알렸다.
스케이트 실력뿐만 아니라 남다른 입담과 재치가 돋보이다 못해 반짝 반짝 빛나는 이규혁과 빙상 데이트를 즐겼다.
# 잘나가는 ‘빙상 가족’
이규혁은 가족 모두가 빙상 출신들이다. 아버지 이익환 씨는 스피드스케이트 전 국가 대표 출신이고 어머니 이인숙 씨는 피겨 대표 선수 출신이자 대한빙상연맹 피겨 심판 이사와 대표팀 여자 감독을 지냈다. 동생 규현도 피겨 선수 출신이고 현재 코치로 활동 중이다. 그래서 빙상인들은 이규혁을 가리켜 ‘피가 다른 선수’라는 말로 부러움을 나타내곤 한다.
“어머니가 절 임신하셨을 때도 스케이트를 타셨대요. 뱃속에서부터 스케이트를 탄 셈이죠. 전 무슨 무슨 학회에서 유전자 검사할 때 꼭 모델로 뽑혀요. 대물림 가족이라서 그런가봐요. 부모님이 모두 얼음판에서 생활하셨으니까 스케이트 타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어요. 일곱 살 때부터 제대로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거니까 오래도 탔죠?”
동생이 스피드가 아닌 피겨를 택한 건 순전 자신 때문이라고 한다. 한 집안에서 두 아들이 스피드스케이트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경쟁을 벌이게 될 거라는 부모님의 우려가 결국 동생의 진로를 피겨로 돌리게 한 것이다.
“아버지가 스피드 스케이트 선배시잖아요. 그런데 단 한 번도 절 얼음판에 데리고 가서 가르쳐 주신 적이 없어요. 모든 걸 감독, 코치님께 맡기셨어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전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할 때부터 혼자 다녔어요. 새벽 6시 훈련도 혼자 버스 타고, 택시 타고 빙상장에 갔거든요. 아! 그땐 외할머님이 보살펴주시긴 했는데 부모님이 워낙 바쁘셔서 혼자 다니는 데에 익숙했죠.”
▲ 지난 20일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 1000m 레이스에서 질주하는 이규혁. 25인치 굵은 허벅지가 믿음직하다. 로이터/연합뉴스 | ||
# 아쉬운 ‘무관의 제왕’
중1 때부터 태릉선수촌 생활을 시작했던 이규혁은 그동안 각종 국제 대회에서 크고 작은 성적을 내며 한국 스피드스케이트의 간판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올림픽에 4회 연속 출전하면서도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한이 그의 가치를 조금씩 작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더욱이 지난해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후배 이강석이 동메달의 쾌거를 이룬 후엔 표현 못할 가슴앓이로 마음 고생을 했다.
“개인 프로필만 봤을 땐 굵직굵직한 성적도 많이 냈어요. 세계신기록도 수립했으니까요. 하지만 이규혁하면 뭔가 임팩트적인 부분이 없다고들 말하세요. 결국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권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우승으로 어느 정도의 ‘숙제’가 해결되긴 했지만 가장 큰 건 역시 올림픽이죠. 토리노 때 1000m에서 0.05초 차이로 메달 밖으로 밀려났거든요. 정말 오랜만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이규혁은 2006토리노올림픽 이후 시련의 세월을 맞았다. 어느 대회 때보다도 전력을 다해 훈련했고 모든 걸 다 쏟아 부어 최선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메달조차 목에 걸지 못했을 때는 ‘이젠 그만둬야 할 때가 됐나’라는 강박 관념이 ‘노장’이란 타이틀과 함께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고 한다.
“(이)강석이가 토리노올림픽 500m에서 동메달 따는 거 보면서 정말 부러웠어요. 국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제 평생의 소원을 한순간에 이루는 모습을 보는 심정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실 거예요. 솔직히 ‘내가 땄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죠. 그러나 강석이가 제 경쟁 상대가 아니잖아요. 세계적인 선수들과 싸우는 것이고 강석이도 그중 한 선수일 뿐이거든요. 그래서 후배의 성장에 자극받고 탄력받으면서 제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어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저에게 큰 선물을 준 셈이에요.”
# 스피드와 쇼트트랙
이규혁은 종종 ‘쇼트트랙으로 전업할 생각은 없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가 하는 말의 요점은 ‘자부심’이다. 스피드스케이트에서 파생된 종목이 쇼트트랙이기 때문에 스피드스케이트 선수라는 자부심과 긍지가 남달랐던 것이다.
“저 또한 그런 유혹과 기회는 있었어요. 하지만 단 한 번도 쇼트트랙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스피드는 스케이트의 ‘종가’거든요. 쇼트트랙이라는 오픈 경기의 즐거움보다 기록 경기의 감동이 저한테 더 잘 맞는다고 판단했어요. 쇼트트랙이 국제대회를 휩쓸며 국민들의 사랑과 응원을 많이 받았지만 그 열기가 부럽지 않더라구요. 전 쇼트트랙보다 더 어려운 종목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텼죠.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 지금이 나의 ‘전성기’
남부럽지 않은 가정 환경에다 운동에만 매진할 수 있는 넉넉한 뒷받침이 이규혁의 성격을 유쾌 상쾌 통쾌하게 만든 모양이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크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이 반듯하게 자란 성장 과정을 엿보게 한다. 소속팀인 서울시청이 이규혁을 위해 팀을 창단했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창단 초기만 해도 선수가 이규혁 한 명이었다. 최근 후배가 한 명 들어왔다고 한다) 빙속(스피드스케이팅)에서 무시 못할 파워도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인간 관계의 폭이 꽤 넓고 깊다. 스포츠 스타들과의 친분을 파헤쳐가다가(?) 스키의 허승욱, 농구의 서장훈 김승현 등과는 호형호제하며 지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중 골퍼 박지은과의 남다른 우정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박)지은이랑은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얼마 전에도 만났는데 볼 때마다 하는 농담이 있어요. 지은이한테 ‘네가 스케이트 탔으면 세계적인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말하면 지은이는 저더러 ‘골프했으면 타이거 우즈 부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죠. 성격이 깔끔하고 운동을 잘해서 서로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오해하지 마세요. 진짜 친구 사이니까.”
어느덧 나이가 ‘계란 한 판’이 되고 보니 여기저기서 결혼 얘기를 물어본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결혼이 먼 미래의 일인 것 같아 당분간은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단다.
“누군가 ‘언제가 전성기였냐’고 물어보시면 전 지금이 전성기라고 말할 거예요. 많은 목표와 꿈들이 하나 둘씩 이뤄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당분간 은퇴 생각은 하지 않을 겁니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을 포기할 수 없잖아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금메달을 목표로 하지 않을 거예요. 5회 연속 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는 사실 자체를 즐길 겁니다. 운동을 즐기면서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데 22년이 걸렸어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