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바지사장서 실세 대표로…비대위 친정체제 구축 등 당권 접수 시동
2000년 총선(16대)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을 열었지만 더민주는 정치적 성지라고 할 수 있는 호남에서 참패했다. 그래서 불안하다. 위태롭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불가피하다. 제1당 위에 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관계 설정을 놓고 정치권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일요신문 DB
둘은 총선 기간 초반 역할 분담을 고리로 한 연합작전을 짰다가 막판 문 전 대표의 호남 지원 유세를 둘러싸고 정면충돌했다. 문 전 대표는 당 안팎 만류에도 선거 막바지, 호남행에 몸을 실었다. 이들의 갈등은 총선이란 비상상황 탓에 ‘어정쩡한 봉합’으로 마무리됐다. 선거 결과는 호남 참패. 갈등의 제2라운드가 임박한 셈이다. 변곡점은 ‘총선 발 정계개편’이다.
총선 발 정계개편의 관전 포인트는 투톱 체제의 ‘불안한 동거’다. 그간 당내 주류와 비주류가 사실상의 단일대오를 형성한 것은 ‘총선 승리’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는 그 목표가 사라졌다. 예상 밖 선전으로 압승했다. 2017년 대선의 전초전인 4·13 총선에서 의회권력 탈환에 성공한 것이다.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당 내부가 결속해 구심점 확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20대 총선 결과는 묘하다. 공천 과정에서 ‘으름장 정치’로 당을 발칵 뒤집어 놓은 김 대표의 위상은 한층 견고해졌다. 목표로 내세운 107석을 훌쩍 뛰어넘었다. 창조적 파괴 이외에는 길이 없었던 더민주의 구원투수를 자청, ‘김종인 파워’를 보여줬다. 바지사장에서 벗어나 실세 대표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실제로 4·13 총선은 ‘식스센스’급 반전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말 시작된 호남발 탈당으로 ‘문재인 체제’는 한없이 흔들렸다. 당 원심력이 야권발 정계개편을 이끌자 문 전 대표는 두 번째 죽을 고비를 넘지 못하고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지난해 1·15 전국대의원회에서 “당 대표가 안 돼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그 다음 제 역할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문 전 대표가 선택한 카드는 ‘김종인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 지지율은 요지부동이었고, 경쟁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호남 발 태풍의 수도권 북상을 앞세워 파상공세를 폈다. 호남에서의 ‘반문’ 기류가 갈수록 확산되며 문재인 필패론은 힘을 얻어갔다.
두 번째 고비 앞에 무릎 꿇은 문 전 대표는 세 번째 죽을 고비에서도 흔들렸다. 대선 레이스 이탈이 불가피했다. 그러자 문 전 대표는 승부수를 던졌다. 김 대표 만류에도 호남을 전격 방문,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라며 배수진을 친 것이다. 호남에 뿌리박힌 반문(반문재인) 정서를 정면돌파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 호남 전체 의석 28곳 중 25곳을 국민의당에 내줬다. ‘호남 없이 이길 수 없다’는 야권의 대선 승리 방정식 앞에 사실상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문 전 대표의 호남행이 당내 갈등의 진원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장 김 대표는 당근과 채찍을 통해 문 전 대표를 견제했다. 김 대표는 총선 다음 날인 4월 14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고군분투 수고하셨다. 수도권에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줬다”면서도 앞서 출연한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그거(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 자체가 호남 민심을 달래는 데는 별로 효과가 없다고 봤다”고 잘라 말했다.
김 대표의 각 세우기는 ‘포스트 문재인’ 구도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는 같은 날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계은퇴 여부에 대해 “호남 민심이 저를 버린 것인지는 더 겸허하게 노력하며 기다리겠다”면서도 “야권을 대표하는 대선주자가 호남의 지지 없이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말에 변함은 없다”고 말했다. 이는 곧바로 정계은퇴를 선언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호남 정서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어떤 식으로든 향후 전개될 총선 발 정계개편 과정에서 양측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이는 대목이다.
총선 발 정계개편의 1차 변곡점은 ‘차기 당권 경쟁’이다. 더민주는 오는 6월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김 대표는 4월 15일 이종걸 원내대표와 양승조 정성호 진영 의원 등을 포함한 비대위 2기를 구축했다. 친노·운동권을 배제하고 실무형 비대위로 인선, 사실상 친정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당 일각에선 김 대표가 당 대표 ‘합의 추대’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김 대표가 대권의 가능성을 닫지 않아, 어떤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다. 앞서 김 대표는 비대위 체제에서 “더이상 ‘킹메이커’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권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종인 대망론’이 급물살을 탄 것도 이때부터다.
김 대표는 총선 승리 이후 ‘당권-대권’ 도전 여부를 묻자, “확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총선 이후 정치적 보폭을 줄인 문 전 대표가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를 앞두고 세 결집에 나설 경우 김 대표가 견제 측면에서 당권 도전을 전격 선언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눈여겨볼 대목은 6월 전당대회의 특징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19대 대선을 준비하는 ‘관리형 지도부’를 뽑는 경선이다. 경우에 따라 김 대표가 ‘당권-대권’ 분리를 고리로 문 전 대표 등 당 주류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더민주를 탈당한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2015년 1·14 전대에서 들고 나온 주류와 비주류의 상생 전략이다.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차르’(러시아 절대군주) 리더십으로 당 장악력을 높였던 김 대표가 강력한 ‘리더십론=정권교체’ 도식을 앞세워 정권교체의 파수꾼을 자처할 수도 있다. 김 대표에게 ‘당권-대권’ 역할분담은 일종의 꽃놀이패라는 얘기다. 다만 총선 과정에서 야권통합 대상인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와 갈등을 벌인 것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친노계 움직임도 관전 포인트다. 문 전 대표는 당장 정치적 보폭을 넓히기 어렵다. 수도권 압승과 영남권 선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야권 텃밭인 호남에서 참패, 당분간 반성과 성찰을 통해 ‘호남 달래기’에 나설 공산이 크다. 범친노계에 2인자가 없는 만큼, 친노 직계에서 차기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도 낮다. 대신 범주류로 통하는 정세균 의원과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의 이인영·우상호 의원 등을 측면 지원하는 형태로 친김종인계와 긴장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점의 화약고는 친노계 좌장인 이해찬 의원의 복당이다. 7선 고지에 오른 이 의원은 당선 직후 “(자신을 공천에서 배제한) 김종인 대표의 정무적 판단보다는 세종시민의 정무적 판단이 훨씬 더 옳았다”며 “(복당 뒤) 당의 중심을 바로 잡아서 내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실제 이 의원이 복당한다면 더민주 계파구도는 문 전 대표와 이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계·정세균계·86그룹과 김 대표가 이끄는 김종인 키즈·비노계로 양분될 것으로 전망된다. 차기 전당대회 전까지 실권을 쥔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당의 운동권 체질 개선 작업에 착수할 경우 양측 간 알력이 ‘야권 발 정계개편’의 후속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바야흐로 총선 발 탈당 사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총선 발 정계개편의 2차 변곡점은 ‘차기 대권 경쟁’이다. 문 전 대표는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 1순위다. 김 대표 역시 대권의 문을 열어놓은 만큼, 양자의 벼랑 끝 승부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 경우 ‘불안한 동거 체제’가 되돌릴 수 없는 루비콘 강으로 변할 수도 있다.
또한 김 대표가 ‘킹메이커’를 자처해 후방 지원하는 역할론을 들고 정국의 전면에 설 수도 있다. 이 경우 전남 강진에 칩거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구원 등판론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공천 과정에서 당의 갈등의 요인이 됐던 정체성 논란의 불씨는 남은 상황”이라며 “총선에서 친노계가 대거 생환함에 따라 향후 이념·노선 투쟁이 불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총선 발 정계개편의 1차 승부의 결과는 40여 일 후면 판가름 난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