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오픈이 열리고 있는 하와이 터틀베이리조트는 마치 코리아타운 같다. 먼데이 퀄리파잉(월요예선) 통과자까지 포함해서 무려 45명의 한국 선수가 대회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선수를 동반한 가족, 대회 스폰서인 SBS 방송사 관계자, 그리고 취재진 등 장소만 미국이고 대회는 미LPGA가 아닌 KLPGA인 것처럼 느껴진다.
시즌 개막전인 SBS오픈의 최대 화제는 무엇일까. 난데없는 ‘패스트 플레이(fast play)’가 등장, 한층 거세진 ‘한류 열풍’까지 누르고 있다.
미LPGA 사무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즉 이번 시즌부터 선수들의 늑장 플레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새로운 룰을 발표했다. 이른바 ‘2007시즌 Pace of Play(라운드 속도 조절)’라는 것이다. 대회 본부, 선수 라커룸, 미디어센터 등 곳곳에 이와 관련된 공문을 붙여놓고 선수들에 대한 교육이 한창이다. 워낙에 한국 선수들이 많은 까닭에 아예 한국어로 번역된 공문까지 나눠주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이전 미LPGA 대회에서는 자원 봉사자들이 그린에서 플레이어가 몇 분 만에 홀을 마쳤는지를 체크, 이를 무전으로 경기위원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제는 ‘Time Par Chart(시간 테이블)’라는 것을 새로 만들었다. 이는 해당 플레이어의 그룹이 언제 어느 홀에 있어야 하는지 아예 미리 규정하고 있다. 예전에는 시간을 체크해서 지연 플레이라고 판단되면 경고를 주고 심할 경우 징계를 했지만 이제는 아예 미리 정해진 시간 안에 각 홀의 플레이를 마쳐야 하는 것이다.
해당 그룹이 정해진 시간에 있어야 할 위치를 벗어나 있으면 경기위원장이 와서 시간을 잰다. 예컨대 앞 그룹이 홀아웃했는데 해당 그룹의 선수들이 파4홀에서 모두 티오프하지 않거나 또 파5홀에서 앞 그룹이 홀아웃했는데 뒷 그룹의 모든 선수가 2번째 샷 장소에 오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물론 룰링(룰 적용 여부)이나 경기구 분실 등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앞 그룹을 따라 잡을 수 있도록 1홀의 여유를 준다. 이 경우도 다시 따라잡지 못하면 시간을 재게 된다. 시간 측정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플레이하지 않으면 벌타가 주어진다.
패스트 플레이 원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선수가 한 시즌에 10번 이상 시간 측정을 기록하면 벌금 2500달러를 내야 한다. 이후 11번째부터는 한 번에 1000달러씩 추가된다. 또 한 그룹이 시간 측정을 받게 되면 모든 선수에게 1회씩 시간 측정이 기록된다. 자신은 빨리 플레이하더라도 동반자가 느리면 함께 피해를 보는 것이다. 자연스레 늑장 플레이어에 대한 동반자의 압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시간 측정은 하루에 2회 이상, 그리고 모든 라운드에 적용된다. 한마디로 미LPGA ‘시간 측정’이라는 괴물이 등장한 것이다.
미LPGA는 공문을 통해 “우리 목표는 골프를 치는데 쓸 데 없는 시간을 없애는 것이다. 이 바뀐 룰들은 서로 도와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미LPGA가 ‘시간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는 ‘인기 회복’ 때문이다. 미LPGA는 최근 몇 년간 미PGA에 비해 플레이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흥미도와 갤러리가 감소하고 가장 중요한 중계 방송사가 싫어했다. 플레이 속도를 높여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고 이를 통해 흥행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패스트 플레이 룰’은 선수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플레이가 느린 선수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한 부담감에 시달릴 것이다. 또 자신은 문제가 없더라도 늑장 플레이어를 만나면 심리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마인드 컨트롤이 한층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선수들은 대개 플레이가 느리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시간 측정 몬스터’가 가져올 변화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터틀베이리조트(하와이)에서, 송영군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