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하와이의 두 대회(SBS오픈, 필즈오픈) 기간 중 오랜만에 미LPGA의 유일한 한국계 직원인 심규민 씨(28)를 만났다. 같은 미국이라고 해도 시차만 3시간이 나는, 대륙의 동쪽과 서쪽에 사는 탓에 비시즌 중엔 좀처럼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벌써 4년째 미LPGA 투어에서 만나다 보니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
심 씨는 한국 미디어에도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는데 미LPGA의 한국 선수들 사이에서는 ‘짱가 오빠’로 통하는 유명한 인물이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이라는 로봇 만화 영화 주제가처럼 많은 한국 선수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해결사 노릇을 한다. 심 씨의 공식 직함은 미LPGA 홍보실의 시니어 코디네이터로 선수들의 자선행사 참여나 선수들의 스폰서 문제, 대회기간 중 행사 등이 주요 업무다. 하지만 2004년 거센 한류(韓流) 바람이 불자 미LPGA 사무국이 의도적으로 뽑은 유일한 한국 직원인 탓에 한국 선수들의 매니저 노릇까지 겸하고 있다.
심 씨는 정말 심성이 곱고 성실한 젊은 친구다. 영어가 서투른 한국 선수가 자동차로 이동 중 식중독 증세를 보였을 때 3시간이 넘도록 통화한 끝에 병원까지 안내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통역은 기본이고, 이메일 번역, 각종 서류작성 도우미에 통장 개설과 숙소 예약, 심지어는 운전 기사 역할까지 한 바 있다. 또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미국 사람들에게는 미LPGA 최강 군단인 한국 선수들의 세계가 왜곡되지 않고 좋은 모습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창’ 노릇도 한다.
심규민 씨는 올시즌 더 바빠졌다. 한국인 풀시드권자가 36명이나 되고, 조건부시드까지 합치면 대회마다 거의 40명의 한국 선수가 출전하기 때문이다. 선수뿐 아니라 가족까지 합치면 대회기간 내내 한국 선수의 도움 요청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사무국 업무까지 소홀히 할 정도라고 걱정이 태산이다.
박봉에다가 과다한 업무, 여기에 한국 선수들의 일까지 챙기는 심 씨는 지난해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유명 스포츠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흔들린 것이다. 하지만 미LPGA 최초의 한국계 직원이라는 자부심과 선수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남기로 결정했다.
그런 심 씨가 시즌 초부터 힘겨워하는 걸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실 제3자의 처지에서 보더라도 한국 선수들은 심규민 씨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너무 많이 한다. 조금만 신경 쓰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미국 생활에 빨리 적응하는 지름길인데도 심규민 씨를 찾는 것이다.
어쨌든 미LPGA ‘짱가 오빠’ 로봇이 과부하에 걸린 것은 사실이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좋은 사람인 만큼 이제 ‘짱가 오빠’를 부르는 횟수를 좀 줄이면 어떨까 싶다. 그것이 이 좋은 ‘로봇’을 더 가치있게 활용하는 방법인 것 같다.
다이아몬드바(CA)에서, 송영군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