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이미지도 다 잡은 ‘멀티플레이’
▲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2003년 5월.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2002월드컵을 통해 뜬 박지성을 놓고 뜨거운 장외 신경전을 벌였다. 아디다스와 재계약을 앞둔 박지성에게 나이키가 뜨거운 ‘러브콜’을 보냈고 박지성의 움직임이 포착되자 아디다스가 이런저런 당근책을 제시하며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아디다스보단 나이키의 움직임이 적극적이었다. 워낙 금액 차이가 크자 박지성 측에선 아디다스가 나이키에 비해 협상 의지가 약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박지성은 나이키와 4년 계약에 이르게 된다.
2007년 4월. 오는 5월 9일이면 계약 기간이 끝나는 나이키는 박지성의 상품성을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돼 아디다스가 잃어버렸던 ‘애인’을 되찾기 위해 협공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무리 연락을 취해도 만나거나 나타나지 않는 박지성 측 관계자들에게 제 3의 인물을 통해 아디다스의 조건을 제시했고 박지성 측에선 아디다스의 조건을 전해 들으면서도 나이키와의 협상을 위해 조금의 미동도 없이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나이키와 재계약 협상에 들어갔는데 여기서 박지성 측은 아디다스에서 제시한 조건들이 나이키와 많은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아디다스의 조건이 금액면에선 훨씬 좋았던 것.
박지성의 에이전트사인 JS리미티드의 한 관계자는 “계약금 액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박지성이란 선수를 축구 선수로서 어떻게 평가하고 가치를 인정해주느냐를 봤다. 계약할 때마다 스폰서가 바뀌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우선권을 나이키에 줬기 때문에 그들과 마지막까지 협상을 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지성 측에서 요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종신 계약. 지금까지 한국 스포츠 스타들 중에선 단 한 명도 종신 계약을 맺지 못했다. 몸이 재산인 운동 선수가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종신 계약을 맺는다는 건 기업 입장에선 엄청난 모험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키에선 박지성 측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였고 은퇴 이후 박지성이 추진하고 있는 유소년 축구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문서상의 계약 합의를 마쳤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계약 금액에 대해 나이키에선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JS리미티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항간에 알려진 연간 6억 원보다는 훨씬 상회하는, 10억 원 이상의 금액이란 걸 알 수 있다. 관계자는 “돈만 따진다면 손실을 감수하고 진행한 계약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더 많은 액수를 제시하며 계약을 희망했지만 박지성과 나이키, 그리고 나이키가 맨유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만약 박지성이 아디다스와 계약할 경우 박지성은 나이키와 스폰서 계약 관계인 맨유 측과 모든 면에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즉 축구화는 물론 향후 아디다스 광고를 찍을 때도 맨유 측과 세부적인 부분까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 현재 맨유에는 반데르사르를 포함해 3명의 선수가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 부분은 금융권 광고를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AIG생명이 주 스폰서인 맨유는 선수들이 다른 금융권 광고를 찍을 때는 구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걸 명시해 놓았다고 한다. 얼마 전 국내 모 금융권에서 박지성을 모델로 광고를 찍으려고 맨유 관계자들을 만나 세부적인 부분까지 체크를 받은 뒤에야 구단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일도 있었다.
JS리미티드 관계자는 “박지성 선수가 돈 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움직이려고 하질 않는다. 이왕이면 기존의 후원사와 계속 인연을 이어가길 바랐다”면서 “김남일 등 친한 선수들이 많은 아디다스에 많은 매력을 느꼈지만 한 번 맺은 관계는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는 게 박지성의 신념이다”라고 설명했다.
항간에선 지난해 에이전트를 교체하며 많은 잡음이 불거졌던 박지성이 후원사까지 바꿀 경우 또 다른 구설수에 오를 것을 우려한 측면도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