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만 부글부글 이번에도 ‘헛발질’?
이천수(26·울산 현대)가 최근 지인들에게 털어놓은 한탄이다.
이천수가 답답해한다. 곧 성사될 줄 알았던 잉글랜드 프리미어십 풀럼 입단이 무산될 분위기가 되자 초조해한다. 에이전트를 단일화하고 구단의 지원을 약속받은 만큼 이번에는 뜻을 이룰 줄 알았는데 상황이 점점 꼬여만 가는 탓에 머리를 감싸 쥔다. 급기야 삼성전자의 후원 아래 첼시행이 추진되고 있다는 모 스포츠 신문의 보도는 이천수의 상황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외 이적과 관련해서 ‘실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장밋빛 전망은 사라지고
5월 중순만 해도 이천수의 풀럼 입단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였다. 울산은 풀럼으로부터 받은 영입 제안 공문에 대한 답신을 보냈고 이천수의 에이전트인 IFA와, 울산과 풀럼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지쎈은 “풀럼이 곧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풍악을 울렸다. 풀럼의 프리미어십 잔류와 LG전자와 풀럼의 유니폼 스폰서 계약 발표는 이런 장밋빛 분위기를 더욱 달콤하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좋았던 분위기에 먹구름이 꼈다. 곧 답을 보낸다던 풀럼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저 “기다려 달라”는 이상한 말만 반복한다. 게다가 풀럼의 로리 산체스 감독은 “구단이 한국 선수를 영입한다는 건 아직 소문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천수는 누구냐”며 가슴 철렁한 말을 거리낌없이 한다.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면서 이천수 풀럼행을 추진하는 IFA와 지쎈의 공조 관계에 금이 갔다. 선수 에이전트와 구단 에이전트로 역할 분담을 했던 두 회사는 6월 초부터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지쎈은 IFA가 이천수 이적과 관련한 말을 할 때마다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고, IFA는 “(지쎈이) 한 게 뭐있냐. 이제 우리가 이천수 이적을 주도하겠다”고 얼굴을 붉혔다. 지쎈의 김동국 사장은 지난 4월 “이천수 이적은 울산의 대리인인 우리가 전면에 나서 담당해야 한다. IFA는 이천수 이적이 확정된 뒤 연봉 같은 세부사항을 조율할 때 움직여야지 그 전에 함부로 나서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쪽은 ‘감감무소식’
울산 김형룡 부단장은 이천수 이적에 대한 질문을 받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답해줄 게 없다며 난처해했다. 5월 2일 풀럼에 구단의 요구 조건을 담은 공문을 보낼 때만 해도 되든 안 되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줄 알았는데 그 뒤 이적협상이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저희(울산)는 풀럼에서 아무런 통보도 못 받았습니다. 선수 에이전트는 받았다고 하던데… 들어보니 대수롭지 않은 말이더군요. ‘미안하지만 기다려 달라. 선수 영입에 대해 더 검토해보고 답을 주겠다. 영입대상 폭이 넓어져 시간이 필요하다’ 뭐 이런 정도였습니다.”
김 부단장은 이천수의 풀럼 입단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이천수의 해외진출을 적극 돕는다는 구단 방침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지난주까지가 (풀럼 감독과 구단 수뇌부의) 휴가 기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업무에 복귀했으니 뭔가 결정을 내리겠죠.”
풀럼 외의 구단도 있다
IFA 김민재 대표는 이천수가 풀럼 입단에 목매고 있다는 보도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풀럼은 이천수가 협상하고 있는 구단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울산의 요구에 대한 풀럼의 답변이 늦어지면서 이천수 이적이 꼬여가는 듯 보이지만 다른 구단과의 물밑접촉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이천수 올 여름 이적’이란 큰 틀에는 변화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한 프리미어십 구단이 있으며 풀럼이 이천수 영입협상에서 완전히 발을 빼면 이 구단과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에이전트사 ASI(Athole Still International)와의 공조작업을 통해 풀럼 외 프리미어십 3개 구단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중 울산이 만족할 만한 조건을 제시한 구단도 있다. 풀럼이 이천수의 영입의사 철회를 공식적으로 밝히면 그 구단과의 협상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구단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린다. 요즘 매일 야근을 한다. 그쪽(매력적인 제안을 한 프리미어십 구단) 공문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상하긴 이상하죠”
한 달 보름 전 “풀럼이 곧 답을 보낼 것”이라며 장담했던 지쎈. 하지만 지쎈은 이제 말을 아낀다. 이천수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원래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이천수의 풀럼행에 올인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답한다. 하지만 풀럼과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다. 풀럼에서 빨리 답을 안 주는 게 이상하긴 이상하다며 곤혹스러워한다.
지쎈의 류택형 부장은 김동국 사장이 18일 유럽으로 떠났다고 알린 뒤 “지금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긍정적인 상태에서 풀럼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류 부장은 김 사장의 출국이 이천수와 관련된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영표(토트넘 홋스퍼)의 거취와 ‘약간’ 관련이 있다고만 전했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